종편 갔던 인재들, 보따리 만지작
  • 원성윤│기자협회보 기자 ()
  • 승인 2012.03.2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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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 프로그램들 잇달아 폐지되는 등 분위기 뒤숭숭…출범 넉 달 만에 ‘탈출’ 모색

한 종편 방송의 오픈 스튜디오에서 생방송을 진행하는 모습. ⓒ 시사저널 박은숙

“보도국 사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청률이 안 나오니 프로그램은 폐지되고 있지, 예산은 자꾸 줄어들지, 경찰서 등 기자실 출입에서는 기존 언론사들과 계속 부딪히고 있고, 앞으로 전망도 뚜렷하지 않아 걱정이다.”

종편사 보도국의 한 기자는 종편 내부 분위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종편이 출범하기 전인 지난해 하반기 무렵만 해도 기존의 방송사와 신문사 인력들이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대거 종편으로 이직했지만, 출범한 지 불과 3개월여 만에 한숨과 함께 탈출하려는 분위기까지 엿보이고 있다.

출범 초기, 종편 보도국 간부들은 자사 보도 프로그램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신문사를 모기업으로 하고 있는 만큼 자신들이 제작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보도해 지상파 방송사와의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국한 지 넉 달도 채 안 되어 각 사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폐지 수순을 걷고 있다. TV조선의 <현장 추적 WHY>, JTBC의 <탐사코드 J>, 채널A의 <잠금해제 2020> 등은 폐지되어 메인 뉴스의 한 코너로 들어가게 되었다. 종편사의 한 관계자는 “예산이 넉넉지 않아 보도국 예산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프로그램을 폐지할 수밖에 없었다. 지명도 있는 외부 진행자를 영입하는 대신 기자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게 된 것도 예산 탓이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종편 기자와 기존 언론사 기자, 곳곳에서  충돌

취재 여건도 어렵다. 종편 출범을 전후로 영등포경찰서·강남경찰서·종로경찰서 등 경찰서에서 종편사 기자들과 기존 언론사 기자들의 다툼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출범 이전인 지난해 11월 중순에는 채널A·JTBC·TV조선 등 종편 3사가 경찰서 기자실 출입 자격을 놓고 기존 기자단과 몸싸움과 설전을 벌이는 등 정면으로 충돌한 적이 있었다. 종편사 기자들의 경찰서 출입이 잦아지자 시경 기자단이 이를 무단 출입으로 규정하고 저지 방침을 세우면서 발생한 것이다. 신생 매체인 종편사가 시경 기자단에 가입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 이에 대해 JTBC의 한 기자는 “JTBC는 중앙일보와 동질성을 갖고 신·방 겸영으로 허가가 났기 때문에 사실상 중앙일보 소속이다”라고 거칠게 항변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 종로경찰서에서는 종편사 기자들의 출입을 못마땅하게 여긴 한 방송사의 여기자가 한 종편사 여기자의 노트북을 기자실 밖에 내다 놓은 사건이 있었다. 때문에 노트북이 분실되었고 결국 두 여기자는 몸싸움을 벌였다. 분을 못 이긴 종편사 기자는 방송사 여기자를 상대로 종로서에 신고를 했고, 결국 두 명의 기자가 출입처인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노동 여건도 좋지 않다. YTN 출신인 한 기자가 종편에 입사했다가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병을 얻어 개국하기도 전에 퇴사한 경우도 있었다. 개국 초기 특종 압박에 시달리다 스트레스를 못 이겨 안면신경마비(구완와사)가 온 것이었다.

종편 기자들이 가지고 있는 불만 중의 하나로 연봉 문제도 있다. 경력 기자로 입사한 대다수 기자는 기존 언론사에서 받던 연봉의 10% 정도를 더 받는 수준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기자별로 연봉 액수가 들쭉날쭉한 것도 문제이지만 한 신문사 기자들의 연봉에 비해 1천만~2천만원가량 낮아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조선, 중앙, 동아의 본지 신문에서 종편으로 자리를 옮긴 기자들이 ‘파견’ 형식으로 방송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마저 다시 신문으로 복귀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경력 기자들도 출신별로 끼리끼리 모이다 보니 조직 융화도 잘 되지 않는 편이다.

종편으로 나갔다가 얼마 전 본지로 복귀한 한 기자는 “종편에 계속 있어달라는 요청이 있었으나, 몸만 힘들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돌아왔다. 다른 기자들도 탈출하고 싶어 한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종편으로 이직했다가 퇴사를 하거나 친정으로 복귀 의사를 타진한 경우도 적지 않게 목격되고 있다. OBS에서 종편으로 이직했던 기자들 가운데 일부가 다시 ‘컴백’을 문의했지만 OBS 보도국 내에서 “이를 받아줘야 하나”라는 반발 기류가 거세지자 본인들이 접은 일도 있었다. 의사를 타진했던 OBS PD 1명과 기획 파트 사원 1명은 재복귀했다.

간부들 혼쭐내도 뾰족한 수 안 보여

취재에 열중하고 있는 종편 방송 카메라 기자들. ⓒ 시사저널 우태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는 보도국뿐만의 현상이 아니다. 특히 드라마국은 더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편 드라마의 실패는 편성 전략 부재에 기인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MBC 드라마국의 한 PD는 “지상파 드라마는 1년간의 편성 계획을 세운 다음 연기자, 작가를 섭외하고 시청자들의 이야기 소비 행태를 살펴가며 편성을 한다. 그에 비해 종편들은 거대 제작비와 배우들의 스타성만 있으면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이 볼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 같다. 아마 시청률 부진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은 TV조선 드라마 <한반도>의 시청률 부진 등에 대해 “이대로 가면 방송을 접을 수밖에 없다”라며 위기감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역시 “왜 이렇게 시청률이 안 나오냐”라며 간부들을 질책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간부들이 발만 동동 굴렀다는 후문이다.

JTBC 기획·지원총괄 전무에 임명된 홍정도씨(홍석현 회장 아들)는 100만 달러 오디션 프로그램 <메이드 인 유> 첫 회를 보고 간부들에게 프로그램의 질이 낮다며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메이드 인 유>는 시청률 0.3%대를 기록하며 조기 종영 위기에 처해 있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종편으로 이적한 PD들은 시청률 부진 책임에 내몰리자 “종편의 보수 색채 때문에 시청자들의 거부감이 크다”라며 서로 책임 소재를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가운데서 가장 큰 피해는 외주제작사들이 보고 있다. 독립제작사협회에 따르면 종편사들이 개국 후 조기 종영한 외주제작사 프로그램은 20개에 달하고, 그중 채널A가 여덟 개로 가장 많다. 한 제작사는 5천만원짜리 버스를 세트로 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가 4회 만에 종영하는 바람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협회의 배대식 기획팀장은 “종편사들의 월권과 횡포를 까뒤집고 싶지만, 회원사들이 종편의 압력을 하소연하는 바람에 중간에서 힘들다. 영세한 외주제작사가 거대 신문을 등에 업은 종편사를 상대하기란 계란으로 바위 치기임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라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종편이 현 체제대로 방송을 한다면 실패로 갈 확률이 높다고 지적한다. 황용석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는 “프로그램 제작과 광고, 여기에 재판매의 선순환 구조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종편은 보도, 교양, 예능, 드라마를 모두 가져가려고 하다 보니 킬러 콘텐츠를 가져가지 못하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이 협소해 출구 전략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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