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에 웃고 우는 한국 영화
  • 이지강│영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2.04.03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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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 문단에 혜택받은 것과 대조적…<화차> <하울링> 개봉 이어 <완전한 사랑> 등 제작 중

일본 추리소설을 각색해 만든 영화 . ⓒ 마운틴픽쳐스 제공

“좋은 시나리오에서 나쁜 영화가 나올 수는 있지만, 나쁜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가 나올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영화 제작자들은 소재가 참신하며 이야기가 짜임새 있고 인물 묘사에 충실한 시나리오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좋은 시나리오가 갖춰야 할 점을 두루 갖춘 소설은 이들에게 단비와 같은 존재이다. 좋은 소설은 좋은 시나리오의 토대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이 계속해서 제작되는 이유이다.

2011년은 한국 영화계가 한국 문단에 수혜를 입은 한 해로 기억된다. 국내 베스트셀러 소설들이 영화로 제작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김탁환의 소설 <열녀문의 비밀>을 원작으로 하는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이하 <조선명탐정>)을 시작으로 공지영의 소설을 영화화한 <도가니>, 김려령의 소설이 원작인 <완득이>. 이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대거 투입되지도, 스타급 배우가 출연하지도 않아 개봉 전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경쟁작을 제치고 흥행에 성공했다. 그 배경에는, 팩션 역사극에서 실화 소설까지 장르는 다르지만 완성도 있는 원작의 힘이 있었다.

지난해의 성공으로 올 한국 영화계 라인업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들이 더 늘어났다. 일본 작가인 노나미 아사의 소설 <얼어붙은 송곳니>를 영화화한 <하울링>,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화차>, 김탁환의 <노서아 가비>를 원작으로 하는 <가비>가 개봉했다. 박범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은교>가 4월26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것을 비롯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을 원작으로 하는 <완전한 사랑>과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남쪽으로 튀어>가 제작 중에 있다.

영화로 만들어지는 대다수 원작 소설은 베스트셀러이다. 소설의 성공 기준인 1만부 판매를 훌쩍 넘긴 작품들이다. 대중의 입맛을 한 번 만족시킨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성공이 반드시 영화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원작 탄탄해도 각색에서 성패 갈려…<화차>와 <하울링>이 본보기

올해만 해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 사이에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2월16일 개봉한 <하울링>은 1백59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인 1백50만명을 살짝 넘었다. 송강호와 이나영이 주연으로 나섰고 스토리텔링의 귀재 유하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3월15일 개봉한 <가비>는 참담한 수준이다.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4위에 그쳤던 <가비>는 3월28일 현재 26만 관객을 겨우 넘기며 실패작의 길을 걷고 있다. 반면 변영주 감독의 <화차>는 2백20만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하고 있다. <발레교습소> <밀애> 등으로 극영화에서 잇단 실패를 경험한 변영주 감독은 이 작품의 성공으로 재도약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영화의 성공에는 원작 소설의 화제성과 판매량보다는 영화 자체의 매력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영화가 원작이 가진 매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을 경우에는 오히려 더욱 참담한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각색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는 이유이다. 원작이 사회성 짙은 일본 추리소설이자 오랫동안 꾸준히 읽혀왔던 스테디셀러라는 공통점이 있는 <하울링>과 <화차>의 성패도 각색에서 갈렸다.

<하울링>의 원작 <얼어붙은 송곳니>는 미스터리 수사극이라는 외피만큼이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들의 심리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형사인 여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만큼이나 마초 집단인 강력반에서 적응하면서 겪는 심리적 갈등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유하 감독은 비교적 원작에 충실했다. 하지만 핵심적 요소인 여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을 살려내지 못했다. 충분한 분량과 수려한 문체로 표현되었던 인물의 감정선이 한정된 시간과 대사 안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화차>는 남자 주인공을 바꾸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원작에서 거의 비중이 없는 약혼자가 영화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반면 원작에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중심 인물인 형사는 영화에서 비중이 줄어들었다. 결과적으로 사회성 짙은 미스터리  추리극에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관객은 멜로를 통해 등장인물들의 심적 갈등을 극대화시킨 변영주 감독의 손을 들어주었다. 변감독은 “원작에서는 제3자인 형사가 사건을 해설하는 형식인데 이것이 영화화되었을 때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이 되었다”라며 각색 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일본 추리소설은 한국 스릴러 영화에 자양분 될 수도…할리우드는 영-어덜트 소설에 열광

<화차>가 성공하면서 일본 추리소설이 주목받고 있다. 일본은 추리소설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추리소설이 발달되어 있다. 소재가 참신하고 이야기가 짜임새 있다. 국내에도 여러 작품이 소개되어 있어 거부감도 적다. 일본의 거품 경제 붕괴라는 원작의 시대적 배경을 IMF 시절로 무리 없이 변경했던 <화차>에서 보듯 각색도 비교적 수월하다. <추격자> 이후 찾아온 스릴러 붐이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부족한 작품들로 인해 금세 시들었던 경험에 비춰보았을 때, 일본 추리소설은 한국 스릴러 영화에 자양분이 될 수 있다. 20만부가 팔려나간 메가 히트작 <용의자 X의 헌신>을 원작으로 하는 <완전한 사랑>이 흥행에 성공을 거둔다면 일본 추리소설의 영화화 작업은 더욱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 롯데엔터 제공
할리우드는 젊은 독자를 타깃으로 하는 영-어덜트 소설에 열광하고 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신드롬을 일으키며 예상 밖의 대성공을 거둔 이후 판타지와 호러를 가미한 영-어덜트 소설은 할리우드의 주요 타깃이 되었다. 4월5일 국내 개봉하는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이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이어나갈 강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2천만부 이상 팔린 수전 콜린스의 3부작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소설 3부작을 총 4편의 영화로 완성한다. 이 중 첫 번째 결과물인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은 개봉 첫 주말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1억5천5백만 달러 수익을 기록했다.

영화 흥행 성적과 원작 소설 판매량

●박스오피스 국내(영화진흥위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북미(박스오피스 모조) 3월28일자 기준

●도서 판매량 - 출판사별 집계 기준

제목 박스오피스 도서 판매량
도가니 4,662,829명 82만부
완득이 5,310,510명 95만부
조선명탐정 4,786,259명  2만부
가비 266,134명 5만부
화차 2,211,634명 7만5천부
하울링 1,591,242명 2만5천부
용의자 X의 헌신 93,080명 20만부
백야행 949,896명 출판사 부도로 집계 불가
헝거게임 $181,759,438(북미) 총 15만부(전세계 2천만부)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미) 441,187명 $102,515,793(북미) 총 30만부(전세계 6천만부)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 <다크나이트>에 이어 역대 3위의 오프닝 성적이다. 주연을 맡은 <윈터스 본>의 제니퍼 로렌스는 외모와 연기를 겸비한 할리우드의 신성이다. 영화에는 그녀 외에도 조쉬 허처슨, 리암 헴스워스 등 꽃미남 배우들과 스탠리 투치, 우디 해럴슨, 도널드 서덜랜드 등 명조연들이 출연한다. <헝거게임> 시리즈를 국내에서 발간한 북폴리오 관계자는 “영-어덜트 소설 가운데서 이야기의 완성도가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입소문만으로 국내에서 권당 5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영화가 개봉되면서 판매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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