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가 이 시대의 입이 된 까닭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2.04.0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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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직설화법으로 프로그램 인기 견인 토크 예능의 대표 주자로 ‘우뚝’

ⓒ 전성환 제공
최근까지 강호동과 유재석은 방송 예능 프로그램의 투톱이었다. 적절한 경쟁 구도가 있고, 스타일도 대척점에 있기 때문에 둘은 서로 상생할 수 있었다. 실제로 강호동과 유재석의 이원 체제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와 토크쇼의 시대를 이끌었다. 유재석의 <무한도전>과 강호동의 <1박2일>이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예능의 한 흐름으로 굳혔고, 강호동의 <무릎 팍 도사> 같은 토크쇼와 유재석의 <놀러와> 같은 토크쇼가 나란히 예능 토크쇼의 주류를 형성했다.

‘게스트쇼’가 되어버린 토크쇼 흐름 거부

최근 들어 이런 흐름은 변화를 겪고 있다. 이른바 오디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리얼리티쇼가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했다. 그럼에도 과거의 트렌드가 좀체 바뀌지 않았던 것은 이 강호동·유재석의 이원 체제가 예능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호동이 잠정 은퇴 선언을 하며 빠져나가자 유재석의 아성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침 파업으로 <무한도전>이 장기 결방되게 되자 유재석의 입지는 토크쇼에 매달리는 형국이 되었다. 그런데 <놀러와>의 최근 시청률이 한 자릿수로까지 급락했다.

이것은 <놀러와>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의 토크쇼 거의 대부분이 시청률에서 고전하고 있다. 토크쇼 대부분이 유재석식의 ‘편안하고 배려하는 방식’을 추구하면서 일종의 홍보쇼 같은 성격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토크쇼가 ‘게스트쇼’가 되었다. 게스트로 누가 나오느냐에 따라 재미의 편차도 크고, 시청률의 등락 폭도 커졌다. <힐링캠프>는 박근혜, 문재인이 나왔을 때는 시청률이 급상승했지만 다른 게스트가 나왔을 때는 시청률이 뚝 떨어졌다. <승승장구>도 마찬가지다. <승승장구>는 MC 스페셜로 ‘이수근편’을 했을 때의 주목도와 다른 게스트의 주목도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MBC ⓒ MBC
결국 ‘섭외’가 토크쇼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 되어버렸다. 이 와중에 게스트에 따른 편차가 없는 유일한 토크쇼가 바로 <라디오 스타>이다.

<라디오스타>는 이제 누가 나와도 ‘재미있는’ 토크쇼로 자리매김했다. 그 비결은 게스트가 아니라 호스트, 즉 MC들에 있다. 그리고 그 MC의 중심에 김구라가 있다.

<라디오스타>를 보는 재미는 게스트의 인생 역정이나 특이한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MC가 게스트로부터 어떻게 토크 어장(?)을 발견하고 그것을 콕콕 찍어서 끄집어내는가 하는 그 과정에서 나온다. 김진아, 임성민, BMK처럼 그다지 핫(hot)하게 여겨지지 않는 게스트가 나왔을 때 김구라가 던진 첫마디는 “홍보할 것이 없는 분들이기 때문에 사심 없는 방송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여타의 토크쇼와 비교해보면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홍보 포인트가 없는 이들에게서 더 과감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다분히 김구라식의 화법을 프로그램이 최적화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윤종신은 한 토크쇼에 나와서 “처음에 <라디오스타>를 할 때는 모두들 김구라의 독설을 뜨악하게 바라보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김구라의 직설 어법이 그들로서도 적응하기 힘들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지금은 <라디오스타>에 마치 김구라가 다섯 명이나 되는 듯한 인상이다. 김구라가 앞에서 굵직한 미끼(?)를 던지면, 그것을 문 게스트의 이야기를 윤종신이 받아서 애먼 방향으로 키우고, 유세윤은 연기로 과장시키면서 깐족대고, 규현은 막내라는 위치에서도 제법 독한 질문을 툭툭 던진다. 김국진은 이렇게 사방팔방으로 튀는 이야기를 다시 하나의 방향으로 되돌리는 역할을 한다.

김구라는 여타의 토크쇼와는 달리 게스트의 이야기만으로 흘러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추임새를 붙이고 엉뚱한 해석을 하고 이야기에 상상력을 덧붙이는 식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 ‘삼천포 토크(?)’가 갖는 매력은 토크의 내용이 아니라 애먼 방향으로 흘러가는 토크 속에서 드러나는 게스트의 반응에서 나온다. 심지어 사실과 다른 이야기로 비화되고 과장되지만, 그것을 웃음으로 받아주고 농담으로 받아치는 과정에서 몰랐던 게스트의 매력이 끄집어내진다는 얘기이다.

다른 토크쇼에도 여러 번 나왔던 이준이 유독 <라디오스타>에 나와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삼천포 토크’ 속에서 그만의 엉뚱한 매력이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기존의 ‘게스트 중심 토크쇼’는 게스트의 삶과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으로 동력을 얻는 반면, <라디오스타>는 오히려 그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생산하는 것으로 동력을 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대중이 원하는 것은 새로움이라고 볼 때, 진정으로 게스트를 배려하는 방식이란 홍보성 토크가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 ‘재발견’시켜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김구라의 ‘구라’가 빛을 발하는 것이다. 

토크쇼는 시대의 화법을 대변한다. 즉, 과거 연예인 홍보쇼에 머물렀던 토크쇼가 어느 순간 리얼하고도 불편한 질문을 담기 시작한 것은 그것이 달라진 우리 시대의 화법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생기면서 ‘직설 화법’은 더는 독설이 아니라 진실에 접근하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인식되었고, 기승전결식의 화법 대신 위아래도 앞뒤도 없이 짧게짧게 분절되며 상황에 따라 반응하는 화법이 먹히고 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원하는 화법이란 미려한 말로 그럴 듯하게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 어딘지 거친 듯 보여도 날것 그대로를 드러내주는 그런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다분히 그동안 우리의 귀를 현혹시켰던 ‘말’에 대한 불신감이 정서적으로 깔려 있다.

‘독설’이라는 불편한 토크 방식의 반전

김구라는 초기에 주목받을 때만 해도 ‘독설’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대중들은 그 독설이 사실은 직설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때로는 공감하기 어려운 친절한 말보다 공감할 수 있는 ‘불편한 진실’에 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마침 강호동의 부재로 <황금어장>에서 <무릎 팍 도사>가 사라지고 김구라의 <라디오스타>가 장악하게 된 것은 자못 상징적이다. 또 유재석의 편안한 토크 방식이 점점 쇠락하고, 그 정반대의 위치에 선 김구라의 불편한 토크 방식이 떠오른 것 역시 주목할 만한 일이다. 강호동이 잠정 은퇴를 선언한 상황에서, 이제 예능은 야외에서 진행하는 버라이어티 예능의 대표 주자인 유재석과 또 실내 스튜디오에서 하는 토크 예능의 대표 주자인 김구라로 양분되는 형국이다. 유재석이 몸과 땀으로 상징되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성을 대변하는 것처럼, 김구라는 이제 직설과 진실로 상징되는 이 시대의 화법을 대변하는 듯하다.   

ⓒ MBC
종종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김구라가 무르익었다”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사실상 김구라 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라디오스타>의 박정규 PD는 최근 김구라가 주목받는 상황을 이 단 한마디로 정리했다. <불후의 명곡2>의 고민구 PD는 김구라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불후의 명곡2>는 가수의 무대와 무대 뒤에서의 토크가 이원 체제로 가는데, 최근 들어서 무대 뒤 토크의 실시간 시청률이 점점 무대 시청률을 압도하고 있다. 김구라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김구라 스스로 진화를 거듭해온 덕분이기도 하지만, 최근 방송 환경이 그를 점점 부각시키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김구라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방송을 꽤 많이 한다.

방송만 8개이다. 행사는 안 한 지 오래되었다. 시간도 없는 데다가 행사에서 요구하는 인물이 나 같은 사람보다는 가수나 행사 진행 MC들이다. 어제 <코리아 갓 탤런트>를 처음으로 지방에서 촬영했는데, 전체 12번 방송에 10번 정도를 나가야 한다. 섭외를 받은 때가 지난해 12월이었다. 내가 하는 프로들은 대부분 오래된 것이다. <세바퀴>와 <라디오스타>는 4~5년 되었고 <붕어빵>이나 <화성인 바이러스>도 3년째이다. <불후의 명곡2>도 1년 가까이 되었고. 그 밖에 케이블이나 종편을 하나씩 하고 있는데 그중 몇 개는 없어질 수도 있다 싶어 <코리아 갓 탤런트>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없어지지는 않고 양만 늘어났다. 사실 오래된 프로그램들은 아무리 바빠도 예의상 그만둘 수가 없다.

<불후의 명곡2>는 초반에 비해 무대 뒤의 토크 비중이 꽤 높아졌다.

권재영 PD에게 처음 제의받았을 때는 이전 포맷을 신동엽과 함께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 들어가보니 파트가 무대와 무대 뒤로 나뉘어 있었다. 딱히 내가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대기실 토크는 초반에는 아이돌이 너무 긴장을 해서 잘 풀리지 않았다. 아침부터 일찍 나와서 계속 녹화를 했지만 방영 분량은 상당히 적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좀 편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곡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아이돌을 조금씩 놀려주기도 하면서 재미를 만들어냈다. 그때 마침 허각·알리·지오·규현 같은 토크가 되는 친구들이 들어왔고 내 추천으로 문희준도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좋아졌다.

<불후의 명곡2>는 <나는 가수다>와 달리 대놓고 직설적으로 가수들에게 못하면 못한다고 얘기를 하더라.

직접적으로 “노래 못한다”라고 한 것은 홍경민뿐이었다. 그것도 사실은 실수한 것이다. 예전에 심현섭에게 “너 안 웃긴다”라고 했다가 나중에 “개그맨한테 어떻게 안 웃긴다고 그러냐”라는 질책을 들은 적이 있다. 개그맨에게도 대놓고 못 웃긴다고 하면 안 되겠구나 했다. 물론 우회적으로 지금도 그렇게는 하고 있다. 나중에 홍경민에게 전화해서 “미안하다”라고 했더니 “괜찮아요”라고 하더라. 직설에도 어느 정도의 완급과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 프로그램 같은 데 들어가서도 연예인이냐 일반인이냐에 따라 수위가 달라진다. 또 처음부터 계속 까대는 방식은 하지 않는다.

독설의 완급 조절인가?

계속 직설적으로 까대는 것은 보는 이들에게도 짜증을 일으킨다. 어느 정도 템포 조절이 필요하다. 또 독설은 작정하고 나오면 안 된다. 감정선이 서서히 쌓여가다가 어느 순간 터져나와야 자연스럽다. 배우가 연기를 할 때 몰입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처음부터 “세게 해주세요” 막 그러는데 어떻게 처음 만나서 그렇게 하나. 그것은 의욕 과잉이다.

토크쇼에서 MC의 역할은 무엇인가?

예전에도 탁재훈이나 박명수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왜 굳이 자기가 웃기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MC는 진행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흐름을 보고 거기에 맞게 말이 안 되는 얘기를 하면 물어뜯고, 허점이 보이면 막 파고들고, 그렇게만 해도 되는데 굳이 웃기려고 개인기를 하거나 레퍼토리를 풀어놓는 것은 조금 과하다 싶다. 내가 웃음을 끌어내는 방식은 상대방과의 주고받음에 있다. 개인기가 없으니까. 개인기가 있는 사람은 자꾸 대화 중에 그것을 끼워넣으려고 한다. 또 요즘 MC로 서게 되면서 과거 독설하던 방식에서 조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즉 과거에는 박명수나 나나 MC라기보다는 이른바 ‘쩜오(0.5)’라고 할 수 있었다. 그때는 호통이나 독설 하나만으로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MC로서 그것만으로는 어렵다. 그래서 토크 방식도 다양하게 구사하려고 노력한다.

요즘 토크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향점이 어딘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미국이나 외국 토크쇼 같은 경우 좀 더 직접적이고 흥미진진한 얘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우리도 점점 그런 쪽으로 흘러가지 않겠나. 예전에는 나도 꽤 규제를 많이 받았던 상황인데, 이런 부분이 많이 풀렸으면 좋겠다. 요즘 토크쇼가 전체적으로 많이 빠진 것은 아마도 이런 흐름을 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마 그런 토크쇼들은 게스트들이 자신에게 들어올 질문들이 딱 보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긴장을 할 수가 없게 되고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라디오스타>가 김구라라는 캐릭터를 최적화하고 있다는데.

전반적으로 내가 얘기하기 좋은 구조로 세팅되어 있다. 다른 토크쇼와 확실히 다른 지점이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장난스럽게 놀려먹으려는 태도가 있다. 그래서 인지도가 있는 분이 나오면 그 자체로 주목을 받을 수 있고 편한 분이 나오면 막 놀 수 있어서 더 좋을 수 있다. <라디오스타>와 <세바퀴>를 둘 다 하고 있어서 그 차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는데, <라디오스타>에서 재밌다고 <세바퀴>에서 하면 100% 재미가 없다. 여기는 몇 명이 토크 하나를 가지고 물고 늘어지고 하는데 <세바퀴>는 인원이 너무 많아서 그것이 어렵다. 간만에 <놀러와>에 나가보았는데 거기에서도 자기 하고 싶은 얘기만 하게 되더라. 물론 <놀러와>는 아직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지만 <라디오스타>와는 달리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김구라쇼’에 대한 기대감도 있을 텐데.

그런 것은 아마 모든 MC의 꿈일 것이다. 분명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니 토크쇼 MC로 특화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어느 정도 위치가 되면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토크쇼를 해보고 싶다. 게스트가 내 캐릭터를 믿고 편안하게 하면서도 속에 있는 얘기를 공격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그런 토크쇼 말이다. 내 성격 중 하나인데, 처음 사람을 만나 혈액형을 물어본 적이 없다. 그것보다는 “어디 살아요?” 하고 묻는다. 좀 더 현실적인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토크도 현실적인 궁금증에서 출발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직설적으로 물어보게 된다. 만일 나만의 토크쇼를 하게 된다면 이런 성향이 묻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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