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일 대로 꼬인 독일-그리스 관계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2.04.03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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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위기 때문에 ‘내정 간섭’ 수준까지 치달아…아테네 많이 찾던 독일 여행자들도 급감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독일 정부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과 친유럽적 성향을 지닌 인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리스 신문들을 펼치면 쇼이블레 장관은 나치 복장을 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문제는 그리스 언론만이 아니라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그리스 대통령마저도 공개적으로 쇼이블레 장관에 대해서 “쇼이블레 씨는 어떤 사람이기에 그리스를 모욕하는 것인가?”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 2월20일자에 따르면 이러한 독일 재무장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문제는 누가 보아도 쇼이블레 장관의 실질적인 정책 입안과 실행 과정이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리스 재정 위기 초기에는 그리스 국가 재정 통제를 위해서 ‘재정 감시관(budget commissar)’ 자리를 만들자는 강한 입장을 보였다. 최근에는 그리스 총선을 연기해서 개혁 조치를 취하는 데 더 시간을 갖도록 하자는 제안까지 서슴지 않는 ‘내정 간섭’ 수준의 모욕감을 그리스 정부에 안겨주었다.

 이에 대해서 쇼이블레 장관이 의도적으로 그리스를 파산을 택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길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굳이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해도 되는 일을 왜 공개적으로 의도를 노출해서 그리스를 점령했던 나치 독일의 이미지를 되살아나게 만드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 납세자의 돈을 책임지고 있는 주무 장관으로서 쇼이블레는 독일의 국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유럽연합(EU) 회원국의 다른 재무장관들이 요청을 하든, 재정 위기에 처한 이웃 회원국들이 구걸을 하든 쇼이블레 장관은 자국의 재정을 동원한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안에 대해서 엄격한 조건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1월27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이 회의를 경청하고 있다. ⓒ AP연합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안은 미봉책”

<이코노미스트>는 독일과 그리스의 관계를 마치 부자 관계처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에 대한 긴축 정책과 개혁을 진행하도록 하는 어려움은 마치 숙제를 하기 싫어 하는 반항적인 10대 자녀를 둔 부모와 유사하다. 아버지가 소리치고 달래고 때론 위협하게 되면, 아이는 부모를 증오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가 공부하는 것을 거부한다 하더라도 굶겨 죽일 수는 없고 길로 쫓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부모는 무한정한 파워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을지 모르나, 권위는 많은 허풍을 수반하기도 한다’라고 마무리 짓는다. 그렇다면 필자는 <이코노미스트>의 그 필자에게 “도대체 어떤 근거로 독일과 그리스 양국 관계를 혈연관계라고 보고 있는 것인가?”라고 묻고 싶어진다. 

2월21일 유로존 국가 재무장관들이 그리스에 대한 1천3백억 유로의 2차 구제 금융을 지원하는 데에 합의했다. 덕분에 그리스는 당장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는 피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제 금융 조건으로 그리스에 강요된 긴축 정책이 경제 회생의 발목을 잡아 조만간 재정 위기가 재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차 구제책 발표로 그리스의 국채 문제가 일단 한 고비를 넘긴 듯하지만, 유로 위기는 끝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그 누구도 그렇다고 답하지는 못한다. 2차 구제 방안이 결정되었지만, 이를 두고 좋은 소식이라고 받아들이는 전문가들은 별로 없다. 독일의 하랄드 하우 경제학 교수는 3월9일자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구제 방안은 납세자들에게 부담을 줄 뿐 더 커다란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라고 비관적 입장을 보였다.

같은 화폐를 쓰고 있다고 해서, 같은 경제 공동체에 소속해 있다고 해서 다른 회원국의 재정 문제를 일일이 해결해줄 수는 없다. 국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는 그리스 같은 국가를 유로존에서 받아준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자국민의 가정 재정의 견실성은 정부가 책임질 수 없듯이, 타국 정부의 재정 적자 문제를 잘사는 회원국이 분담한다는 것은 이웃집 재정까지 도맡아야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스의 재정 위기가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3월15일자 AP통신의 전망은 유로존에 강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수개월 안에 실망스러운 예산 보고상의 숫자가 나올 것이며, 4월22일에 총선을 앞두고 있는 그리스에 EU에서 부과한 엄격한 긴축 정책을 반대하는 좌파 연립 정부가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두 정당인 공산당(KKE)과 급진좌파연합(Syriza)의 지지율은 합쳐서 거의 30%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다.

만약 이 두 정당이 공동 집권에 합의한다면, 가장 좌파적인 정부가 등장할 것이라고 EU 관계자들은 걱정한다. 하지만 이 두 당의 공조에는 문제가 있다. 공산당은 유로존, 더 나아가 EU에서 탈퇴하자는 견해인 데 반해 급진좌파연합은 EU 안에 머무르며 그 내부 민주화를 추진하자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상반되게 벤 버냉키 미국중앙은행(Fed) 의장이 유로존 재정 위기가 완화되었다고 진단하는 점이 흥미롭다. 버냉키 의장은 3월20일 미국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지난 몇 개월 사이에 유로존 재정 위기가 완화되었다.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도 줄어들었다”라고 평가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은행권 자금 조달 규제 완화, 그리스 정부와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민간 채권단의 자구 노력, EU 회원국들의 새로운 재정 긴축 협정 등에 힘입어 위기가 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뒤에 가진 기자회견 때만 하더라도 “유로존 재정 위기가 초래할 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라고 걱정했었다.

버냉키 의장은 “유로존 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유럽 금융 시스템이 좀 더 강화되어야 하고, 금융 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화벽도 증대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지난 2월 현재 미국 머니마켓 펀드(MMF)들이 보유하고 있는 유럽물(국채 등)은 약 35%에 달해 구조적으로 위험하다. 유로존 상황이 악화될 경우 미국 시장을 안정시킬 통화 정책 수단이 준비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유럽과 미국의 금융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결국 버냉키 의장은 유로존의 미래가 밝아야 미국 금융 시장도 안정을 찾는다는 바람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3월2일 그리스 데살로니키 시 아리스토틀 대학교에서 시민들에게 농산물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EAP연합

그리스 신문들까지 독일 정부 비판 나서

한편, 유로존의 위기감, 특히 그리스 아테네 거리에서의 시위 광경은 많은 독일인으로 하여금 종전에 인기 여행지였던 그리스를 피하고 모로코나 카타르를 찾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쇼이블레 재무장관뿐만 아니라 메르켈 총리의 모습을 나치 완장을 찬 합성 사진으로 도배하는 그리스 신문들을 본 독일인들의 심경은 그리스를 여행 예정지에서 지우도록 만들고 있다.

결국 가뜩이나 침체된 그리스 관광 산업에서 가장 많은 여행자 수를 차지했던 독일마저도 멀어져 그리스 관광지와 휴양지의 경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그리스 GDP에서 관광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나 된다. 이 때문에 지난 3월 초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 여행 전시회에서 그리스는 자국이 독일인들에 대해서 비우호적이라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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