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음악 판매, ‘종량제’로 갈까
  • 최연진│한국일보 산업부 기자 ()
  • 승인 2012.04.03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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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들 뭉쳐 징수 방식 개정 요구…음원 서비스업체들은 주로 정액제로 이용자 끌어들여

ⓒ 시사저널 유장훈

스마트폰이나 MP3플레이어, 컴퓨터(PC) 등으로 소비되는 디지털 음악 시장에 일대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디지털 음악을 만드는 저작권자들이 제값을 받기 위해 판매 방식을 바꾸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금 디지털 음악은 내려받을(다운로드) 경우 곡당 6백원을 받는 체제이지만 6백원을 다 내고 음악을 듣는 사람은 없다. 멜론·소리바다·벅스뮤직 같은 음원 서비스업체들이 제공하는 정액제를 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정액제는 월 일정액을 내면 수십 곡에서 수백 곡을 내려받을 수 있다.  그만큼 이용자는 좋지만 음악을 만드는 저작권자들은 사실 골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제도가 정액제이다.

“정액제는 서비스업체만 돈을 버는 구조”

정액제의 경우 이용자가 해당 곡을 들은 횟수만큼 n분의 1로 나눠서 저작권료를 받는다. 즉, 이용자가 월 100곡을 들으면 저작권료는 100분의 1이 되고, 1천곡을 들으면 1천분의 1이 된다.

실제로 디지털 음원은 한 곡당 내려받는 가격이 6백원이다. 그러나 40곡에 5천원을 받는 정액제를 이용하면 곡당 가격은 1백25원으로 떨어진다. 1백50곡을 들을 수 있는 9천원 정액제를 이용하면 곡당 단가는 60원으로 내려간다. 내려받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듣기만 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정액제로 이용하면 곡당 단가는 10원 미만으로 급락한다. 이를 음악저작권 관련 3개 협회와 서비스업체 등이 나눠 갖는다. 한마디로 이용자들은 곡을 많이 듣는데 정작 저작권자들은 돈을 벌지 못하는 기형적 구조인 셈이다. 음원제작자협회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경우 건당 수익이 1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음원 서비스업체들은 이용자가 많이 몰리는 만큼 정액제를 많이 할수록 더 많은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다. 한마디로 서비스업체만 돈을 버는 구조인 셈이다.

음원 서비스업체들도 불합리한 가격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한 음원 서비스업체의 관계자는 “지금처럼 저가로 형성된 디지털 음악 시장에서는 아무리 곡을 많이 판매해도 돈을 벌기 힘들다. 하지만 가격을 올리면 이용자들이 이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박리다매로 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저작권자들이 음원 저작권료 징수 방식을 개정하기 위해 뭉쳤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음악제작자협회,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가 문화체육관광부에 새로운 저작권료 징수 규정안을 제출했다. 저작권법 시행령 제49조에 따르면 저작권 위탁 관리업자가 수수료와 사용료의 요율 및 금액을 새로 만들거나 바꾸려면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무조건 곡당 일정액 이상의 저작권료를 받는 방식으로 징수 규정을 바꾸자는 것이다. 즉, 정액제를 없애고 무조건 종량제로 가자는 주장이다. 이들은 스트리밍 1곡당 20원, 내려받기 1곡당 6백원의 저작권료를 받는 구조로 바꾸겠다는 입장이다. 저작권료가 올라간다고 해서 음원 서비스업체들의 수익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나눠먹는 이익 배분률이 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익 배분률은 음원 서비스업체마다 조금씩 다르다. 저작권자가 수익의 60%를 가져가는 곳도 있고, 저작권자가 70%를 가져가는 곳도 있다. 따라서 저작권료가 올라가도 배분율이 달라지지 않는 한 사업자가 크게 손해 볼 일은 없다. 저작권료가 올라가면 거기에 따라 가격을 올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원 서비스업체들이 우려하는 것이 시장 축소이다. 갑자기 곡당 저작권료가 올라가고, 정액제가 사라지면 그동안 디지털 음원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비싼 가격 때문에 서비스를 외면할 수 있다는 우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법 다운로드가 늘어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음원 서비스업체 관계자는 “자체 분석한 결과 저작권자들이 주장한 대로 곡당 6백원의 저작권료를 지불하면 내려받기 가격이 종전 6백원에서 1천50원으로 75% 이상 오른다”라고 말했다.

아이튠스 상륙 앞둬 음원 시장 변화 불가피

물론 여기에도 맹점은 있다. 1천50원으로 오른다는 주장은 음원 서비스업체의 몫인 40%를 고스란히 챙기겠다는 의도이다. 정말 가격이 올라서 이용자들의 이탈이 우려된다면 음원 서비스업체의 이익 배분율을 40%로 고집할 것이 아니라 줄이면 된다. 10%만 포기해도 가격은 1천원 이하로 떨어진다. 결국 음원 서비스업체들이 자기 몫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셈이다.

또 한 가지 맹점은 저작권료 징수 규정은 법이 아니라 가이드라인이라는 점이다. 즉, 강제성이 없다. 이를 기준으로 저작권자와 사업자가 협의를 해서 정하면 된다. 일부 사업자들은 마치 법으로 강제해서 모든 음원 서비스업체가 이를 지키지 않으면 사업을 못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저작권자들이 곡당 6백원의 저작권료를 고집하는 만큼 저작권료가 올라가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사업자가 이를 강제로 적용하는 것은 아닌 만큼 조정의 여지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저작권자들이나 음원 서비스업체 모두 디지털 음악 시장을 죽이자는 것이 아닌 만큼 조정의 여지는 있을 것이다”라고 보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애플 아이튠스의 상륙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애플은 국내에서 아이튠스를 통해 음악 판매를 하고 있지 않다. 불법 복제 때문에 저작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국내 디지털 음원 시장의 저작권료가 너무 적어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워너, EMI 등 해외 유수의 디지털 음원업체들도 국내 음원 서비스업체에게는 정액제 때문에 헐값에 음악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정액제가 사라지고 곡당 저작권료가 올라가면 애플이 아이튠스를 통해 국내에서 음원 서비스를 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애플이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 국내 음원 저작권자들이 기존 국내 음원사업자보다 애플을 선호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애플 아이튠스가 넘을 수 없었던 국내 음원 서비스업체들의 정액제 장벽을 쉽게 넘게 된다.

무엇보다 애플 아이튠스를 이용하면 국내 음원 저작권자들의 해외 진출이 쉬워진다는 장점이 있다. 아이튠스가 전세계에 서비스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한류 콘텐츠가 해외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음원 저작권자들은 애플 아이튠스를 통한 서비스를 더 반길 수 있다. 이미 애플은 일부 음원 저작권업체들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4백만명에 이르는 국내 아이폰 이용자와 2백만명에 이르는 아이패드·아이팟 이용자를 감안하면 애플로서도 아이튠스 서비스로 국내에 도전장을 던져 볼 만하다.

이처럼 여러 가지 상황이 얽혀 있어 디지털 음악 시장은 일대 변화를 맞을 전망이다. 가격이 올라갈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오르는 가격만큼 디지털 음악 시장이 활성화되면 과거 음반 시장이 붐을 이루면서 좋은 음악들이 쏟아져 나왔듯이 새로운 음악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음원 서비스업체들도 당장 오르는 가격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강력하게 저작권료 인상을 반대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한 음원 서비스업체 관계자는 “가격이 오르면 오르는 만큼 뮤직비디오를 끼워주든가, 다양한 서비스를 얹어서 제공하는 것도 해법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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