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단 카드들, 상표권 싸고 신경전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4.0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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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잇 카드’ 출시해 ‘국민카드 표절’ 논란 불러…성격 달라 문제 없다 해도 소비자는 혼란

현대카드 ‘잇 카드(it card)’

현대카드와 KB국민카드가 최근 상표 등록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발단은 ‘그것’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it’을 신용카드에 붙이면서였다. 현대카드는 지난 3월16일 ‘잇 카드(it card)’를 시장에 내놓았다. 또 이 카드에 대한 상표 등록을 신청하려고 했다. 그러자 KB국민카드가 발끈했다. 2008년 출시한 자사의 ‘잇 스타일(it style)’이나 ‘잇 플레이(it play)’ 등 it 시리즈 카드와 겹치기 때문이다. 당시에 국민카드가 상표 등록을 해놓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국민카드측은 현대카드에 상표 등록 신청을 취소해줄 것을 실무진 차원에서 요청했다.

그러나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국민카드 임원에게 “상표 등록 신청은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국민카드의 요청을 거부한 셈이다. 실제로 현대카드는 최근 ‘현대 잇 카드’에 대한 상표 등록을 신청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처음에 국민카드측이 오해한 것 같다. 국민카드는 기존에 잇 스타일 등 it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카드가 있는데, 우리가 it 카드를 출시하고 상표 등록을 하면 현대카드가 it을 넣은 카드를 판매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현대카드의 it 카드와 국민카드의 it 카드는 그 내용이 다르다는 점을 양사의 실무진이 확인하고 오해를 풀었다”라고 말했다.

양사 모두 상표 등록 신청해

국민카드의 ‘it’ 시리즈 카드
예전에 내놓은 국민카드의 it 시리즈 카드는 말 그대로 신용카드 상품이다. 그러나 이번에 현대카드가 출시한 it 카드는 플레이트를 말한다. 플레이트란 신용카드 상품이 아니라 아무런 정보가 없는 물리적인 카드 자체를 의미한다. 현대카드 소유자가 자신의 플라스틱 카드를 금속 재질의 it 카드로 바꿀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소비자가 it 카드로 바꾸면 재질과 색상을 선택할 수 있다. it 카드의 소재는 플라스틱이 아니라 항공기에 활용하는 첨단 금속(하이퍼 두랄루민)이고, 색상도 검은색, 보라색 등 다양하다.

국민카드측은 양사의 it 카드의 성격이 다른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현대카드가 상표 등록을 하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 양사의 카드 성격을 잘 모르는 소비자들은 it이라는 같은 단어가 들어간 신용카드가 두 카드사에서 발행되어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국민카드도 3월16일 자사의 it 시리즈 카드에 대한 상표 등록을 신청했다. 현대카드가 it 카드를 출시한 그날이다. 국민카드 관계자는 “it이라는 단어는 대명사이므로 그 자체만으로는 상표 등록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현대카드가 ‘현대 잇 카드’로 상표 등록을 신청했고, 국민카드도 ‘국민 잇 스타일 카드’ ‘국민 잇 플레이 카드’ 등 신용카드 5종에 대한 상표 등록을 신청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대법원은 2009년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한 우리은행의 상표 등록이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 단어가 일반인의 자유로운 사용을 방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처럼 it이라는 단어 자체로는 상표 등록이 어려우므로 양사 모두 ‘현대’나 ‘국민’이라는 단어를 넣어 상표 등록을 신청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민카드가 2008년 it이 들어간 신용카드 상품을 내놓은 상황에서 현대카드가 it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이런 일이 불거졌다. 현재 신한카드에 이어 업계 2위인 현대카드 내에는 자칫 2위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카드도 맹추격을 벌이고 있지만 특히 업계 3위인 삼성카드는 현대카드를 거의 따라잡았다”라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현대카드, 삼성카드와도 표절 논란 벌여

이런 위기감을 떨치기 위해 현대카드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데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지난해 11월 현대카드는 업계 최초로 ‘무조건 0.7% 할인’ 혜택을 주는 ‘현대카드 제로(0)’를 출시했다. 기존 신용카드를 쓰는 소비자가 더 많은 할인 혜택을 누리려면 전월 신용카드 사용액이 얼마 이상이라는 제한이 있었다. 이 고정 관념을 깬 상품을 출시하자 현대카드 제로는 소비자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올 3월13일 삼성카드도 ‘어디서나 무조건 알아서 0.7% 할인’을 앞세운 ‘삼성카드4’를 내놓았다. 삼성카드는 이번에 현대카드를 추월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게 작용했다. 실제로 미국계 대형 할인점 코스트코 코리아에 대한 수수료 특혜 논란, 삼성물산의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발파에 따른 삼성카드 해지 움직임 등의 이슈가 삼성카드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주당 4만4천9백50원까지 올랐던 삼성카드 주가는 최근 4만원 초반대까지 떨어졌다.

이번에도 현대카드가 발끈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삼성카드가 경쟁사 히트 상품을 무차별적으로 베꼈다. 비단 이번 한 상품의 사례뿐 아니라 그동안 누적된 삼성카드의 제품 베끼기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업계의 베끼기 관행에 제동을 걸고 지적재산권이 보호받는 풍토를 만들겠다”라고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여러 신용카드사가 새로운 상품을 내놓지만 사실 포인트 적립, 할인율 등 그 혜택은 모두 비슷하다. 따라서 뒤늦게 상품을 출시하면 모두 표절이냐고 삼성카드는 반박했다. 삼성카드측은 “업계 서비스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인데 상품의 일부 서비스가 비슷하다고 모방으로 몰아가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베끼기로 볼 수 없다”라고 맞섰다.

현대카드는 3월27일 ‘현대카드 제로’의 핵심 콘셉트를 삼성카드가 표절했다는 주장을 담은 내용증명 우편을 삼성카드측에 발송했다. 내용증명은 주고받은 당사자 간 증거로 활용되기 때문에 법적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의지이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삼성카드에 재발 방지책을 포함한 시정 조치를 정식으로 요구했으며 일주일 안으로 회신을 달라고 했다. 응답이 없거나 거부할 경우, 내부 검토를 통해 특허 소송에 돌입하겠다”라고 밝혔다.

양사의 표절 시비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4년부터 광고, 핵심 콘셉트 등 각종 비슷한 마케팅을 펼칠 때마다 갈등 조짐은 있었지만 다른 업종과 달리 카드사들의 서비스 내용은 법적 권리로 보호되지 않기 때문에 소송에 나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현대카드는 지난해부터 계속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등으로 업계 카드사들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는 등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에서 더는 베끼기 관행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이다. 이번 기회에 금융 당국이 나서서 카드사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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