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지주는 그림자 경영 중?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4.0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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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주총에서 라응찬 전 회장 측근들 대거 부상…라 전 회장의 ‘배후설’ 여전히 나돌아

2010년 10월30일 사퇴를 표명하고 본사를 나서는 라응찬 당시 신한금융지주 회장. ⓒ 시사저널 유장훈

신한금융지주(이하 신한지주)에 라응찬 전 회장의 그림자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라 전 회장은 지난 2010년 말 신한은행 내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장직을 내려놓았다. 신한의 최고경영자(CEO)로 생활한 지 20년여 만이었다. 한동우 신한지주 회장이 후임 회장에 취임했다. 한회장은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진 내분의 후유증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언론과 인터뷰할 때마다 “인간 중심에서 시스템 중심의 경영으로 전환해 내부 줄서기와 파벌을 없애겠다”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3월29일 서울 중구 태평로 본점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가졌다. 그동안 낙하산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상근 감사직을 폐지하고, 감사위원회를 신설하기로 주총에서 의견을 모았다.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가 감사 역할을 대신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뒷말이 여전한 상태이다. 사외이사나 감사위원으로 선임된 인사들의 면면 때문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신한지주의 한 관계자는 “사외이사에 재선임되거나 감사위원으로 선출된 인사 대부분이 라 전 회장과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 라 전 회장이 여전히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라는 내부 시각이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번 주총에서 사외이사에 재선임된 윤계섭 서울대 명예교수가 대표적인 예이다. 라 전 회장은 최근 20억원 규모의 스톡옵션을 행사해 논란을 빚었다. 은행 내부에서는 찬성과 반대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일각에서는 라 전 회장의 스톡옵션 행사를 지지했다. 한편에서는 재판을 지켜본 후에 스톡옵션 행사 여부를 결정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결국 표 대결이 벌어졌고, 라 전 회장의 스톡옵션 행사를 찬성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윤교수는 당시 라 전 회장을 지지한 이사회의 일원이었다. 1년 기간이지만 사외이사에 연임되었을 뿐 아니라, 새로 출범한 감사위원으로도 선출되면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사외이사나 감사위원에 연임된 이정일·하라카와 라루키 평천상사 공동대표나 권태은 ㈜남부햄 대표 역시 라 전 회장을 지지했던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2011년 3월 한동우 회장이 취임하면서 사외이사를 대폭 물갈이했다. 8명 중 6명이 사외이사 등에서 물러났지만, 이들은 자리를 유지했다. 이번 주총에서 또 이들이 사외이사·감사위원으로 선임되면서 라 전 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불거진 것이다. 이수정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원은 “연임된 인사들은 대부분 신한은행 분쟁 당시 라 전 회장을 지지한 재일교포 주주를 대표하고 있다. 경영진을 견제하거나 감시하는 역할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신한지주측 “인사는 공정하게 진행되었다”

서울 중구 태평로2가에 있는 신한은행 본점. ⓒ 시사저널 이종현
신한지주측은 “사외이사나 감사위원 선임에 문제가 없다”라는 입장이다. 신한지주의 한 관계자는 “재일교포 주주를 달래는 차원에서 일부 인사를 사외이사에 선임했을 수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라 전 회장을 의식한 인사는 없었다”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외부에서 ‘친라응찬파’나 ‘친신상훈파’ 등으로 분류하는 것에 “뒷배경이 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인사에서 배제된 일부 사람들이 불만을 품으면서 안 좋은 얘기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 인사는 어떤 때보다 공정하게 진행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신한지주 안팎에서는 여전히 뒷말이 나오고 있다. 라 전 회장의 ‘배후설’ 역시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한동우 회장은 라 전 회장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한회장이 구원 투수로 등판한 배경에 라 전 회장의 입김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취임 초기만 해도 편파 인사 논란이 적지 않았다. 라 전 회장측 인사는 중용하면서 신상훈 전 사장의 측근들을 상대적으로 소외시켰기 때문이다. 박중헌 전 SBJ(신한일본법인) 부사장이 인사에 불이익을 받은 대표적인 인사로 꼽힌다. 박부사장은 지난해 초 귀국해 대기발령 상태로 지냈다.

국외 근무가 통상적으로 3년 정도의 임기가 보장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신 전 사장의 비서실장 출신인 이창구 전 중국법인장과 송왕섭 부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대기발령 상태에서 연수를 받으면서 지냈다. 때문에 신 전 사장은 적지 않게 화를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올 2월 정기인사에서 모두 보직을 받았지만, 뒷말은 여전한 상태이다. 신한지주 상황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대기발령 상태로 교육을 받은 지가 1년 가까이 되었다. 일련의 인사가 외부 시선을 의식한 결과가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올해 주총 때의 사외이사 선임 역시 마찬가지로 풀이되고 있다. 이 인사는 “일반인의 경우 라 전 회장이 신한은행의 오너라고 생각할 정도로 영향력이 막대하다. 그만큼 라 전 회장에게 영향을 받은 인사가 많다. 회장직에서 물러났다고 해도 단기간에 영향력을 떨쳐버리기는 힘들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불거진 라 전 회장의 비자금, 이번에도 ‘무혐의’ 처분받을까

라 전 회장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사실이 있다. 지난 2011년에 물러난 라 전 회장은 외부 활동을 극도로 자제해왔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한사코 고사했다. 하지만 최근 차남이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라 전 회장의 존재감 역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불똥이 또다시 신한지주로 튈 수 있어 내부적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말 사기 등의 혐의로 라 전 회장의 아들 라 아무개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 2005년부터 서울 종로구 공평 15·16지구의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익성을 부풀린 혐의였다. 검찰은 그동안 라씨가 투자금을 어디에 썼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계좌 추적을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라 전 회장의 차명 계좌로 의심되는 계좌를 여러 개 발견했다. 검찰은 재개발 사업 당시 투자된 20억원이 이 차명 계좌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라 전 회장측은 “(차남이) 투자금 때문에 지인들에게 돈을 빌린 것은 맞다. 하지만 수익률을 부풀린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서도 이같은 사실을 충분히 해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은 수상한 차명 계좌에서 나온 돈이 라 전 회장의 비자금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눈치이다. 

검찰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검찰은 라 전 회장의 비자금에 대한 수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사실상 라 전 회장에 무게를 둔 이번 수사의 결과가 주목된다”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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