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핵심 열쇠는 ‘진경락 노트북’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4.0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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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관실 정보 총괄한 제2인자…기록 담긴 컴퓨터 빼돌리고 잠적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KBS 새노조)는 3월30일 “이명박 정부가 언론을 장악·통제하기 위해 언론사들을 사찰했다. KBS를 망가뜨린 장본인 김인규 사장은 퇴진하라”라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 작은 사진은 진경락 전 과장. ⓒ 뉴시스

민간인 불법 사찰의 핵심 열쇠는 진경락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45)이 쥐고 있다. 그는 지원관실 내부 점검 요원들의 복무 관리와 문서 관리 등을 맡는 등 실질적인 제2인자였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사찰 내용을 종합해 보고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각 점검팀에서 특정인을 사찰하면 그 내용이 고스란히 진경락 전 과장에게 올라왔다. 그는 이를 다시 정리해서 이인규 전 지원관에게 보고했다. 그러니까 지원관실의 모든 사찰 정보를 진 전 과장이 틀어쥐고 있었던 셈이다.

민간인 불법 사찰 당시 지원관실에는 총 42여 명의 직원이 있었다. 경찰청, 국세청 등에서 차출된 사람들이다. 책임자인 이인규 전 지원관(이사관) 휘하에 기획총괄과가 있고, 그 아래에 6~7개의 팀이 있었다. 이들은 정부 각 부처와 산하 공공 기관을 분담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진 전 과장은 지원관실에서 진행했던 사찰 정보 전부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장진수 전 주무관은 “지원관실 직원들은 거의 다 USB 메모리를 사용했다”라고 말했었다. 사찰 자료를 직원 개개인이 USB나 외장 하드디스크 등에 따로 보관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사찰 정보를 개인이 소유하거나 외부 유출이 쉬웠다는 것을 뜻한다.

지원관실에서 민간인을 집중 사찰했던 점검1팀에는 애초에 총 10대의 컴퓨터가 있었다. 이 가운데 장진수 전 주무관이 9대의 하드디스크를 삭제했고, 나머지 한 대는 진경락 전 과장이 빼돌렸다. 장 전 주무관은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진경락 전 과장이 재작년 검찰 1차 수사팀의 압수수색 뒤 불법 사찰 증거가 담긴 노트북 컴퓨터를 담당 직원으로부터 빼앗았다”라고 말했다.

문제의 노트북은 기획총괄과 직원이 사용하던 것이다. 그 안에는 각 점검팀의 사찰 내용이 사안별로 분류되어 저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사찰 내용들이 보고서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가 어느 정도의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도 가늠해볼 수 있다. 대검이 지원관실 직원 ‘정영운’의 삭제된 컴퓨터를 복구해보니 하드디스크에서만 4백30개 이상의 파일이 들어 있었다. 지원관실의 전체 직원 수를 감안하면 단순하게 계산할 때 약 1만8천60여 개가 있었다는 계산이 된다. 진 전 과장이 빼돌린 노트북에도 상당한 자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이런 것을 보면 민간인 사찰의 진짜 판도라 상자는 진경락 전 과장이 쥐고 있는 셈이다. 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진경락 전 과장은 자신의 승용차에 많은 양의 사찰 자료를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양심선언을 하고 자료를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진 전 과장은 검찰 소환에 불응한 채 소식을 끊고 잠적한 상태이다. 검찰은 지난 3월28일 그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지만, 노트북 등 중요 자료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다면 진 전 과장은 왜 검찰의 소환에도 불응한 채 잠적했을까. 여기에는 노림수가 있다.

사찰 윗선에 대한 압박 카드로 쓸 수도

진 전 과장은 2010년 9월 증거 인멸 혐의로 구속 기소된 후 같은 해 11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4월 2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이다. 만약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공무원 규정상 면직 처리된다.

때문에 진 전 과장은 빼돌린 사찰 자료를 자신의 신상과 관련한 ‘창과 방패’로 쓰려고 할 것이다. 자신에게 닥친 지금의 상황을 뒤집으려는 속셈이다. 장진수 전 주무관은 언론을 통해 ‘폭로’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진 전 과장은 다른 방법을 모색하려 들 것이다. ‘무조건 폭로’하는 데에는 신중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소환에 불응하는 것도 사찰 윗선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볼 수 있다.

진 전 과장은 주도면밀한 사람이다. 지원관실에서 기획 총괄을 하면서 언론과 국회 대응도 총 지휘했다.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의 문건을 만들어서 조전혁 새누리당 의원을 통해 폭로하게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진 전 과장이 쓸 수 있는 카드에는 한계가 있다. 그가 사찰 자료를 가지고 거래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무죄 판결’ ‘돈’ ‘일자리’로 볼 수 있다. 하지만 1, 2심을 뒤집고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돈과 일자리 거래도 여의치가 않다. 불법 사찰이 이슈가 되어 있고, 청와대가 ‘윗선’으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대가를 제공하기도 쉽지 않다. 사찰 자료를 히든 카드로 쓰기에는 주변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이다.

윗선과의 접촉 포인트는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이다. 진 전 과장은 지원관실에 오기 전에는 이 전 비서관 밑에서 행정관으로 있었다. 같은 ‘영포(영일·포항) 라인’이다.

장진수 전 주무관과 같이 언론을 통해 ‘점차적 폭로’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후 폭로를 준비했었다고 알려졌다. 또, 2심 재판이 진행 중일 때는 “청와대 수석들을 재판정에 증인으로 세우겠다”라고 말하는 등 사건의 배후를 밝히려고도 했었다. 현재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과 언론에서는 진경락 전 과장과 접촉하기 위해 연결 통로를 찾고 있다.

최근 KBS 새노조가 입수한 사찰 문건 2천6백19건의 출처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새노조측은 “법원 증거 열람을 통해 확보했다”라고 밝혔다. 진 전 과장의 선택에 따라 정국에는 또 다른 핵폭풍이 몰아칠 수 있다. 

진경락, 총리실 복직 후 일 안 하고 7개월간 3천만원 받았다 

<시사저널>은 제1171호(2012년 3월27일자)에 원충연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50)이 고용노동부에 복직한 후 출근도 하지 않은 채 월급만 타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런데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도 총리실에 복직한 후 일은 하지 않은 채 월급만 받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무총리실은 지난해 7월 진 전 과장을 주한미군기지이전지원단 대외지원팀장으로 파견하면서 업무에 복귀시켰다. 그리고 9월1일자로 다시 총리실로 복귀시킨 후 9월8일에 직위 해제했다. 그러니까 진 전 과장은 총리실에 복귀한 후 실제로 일을 한 기간은 주한미군기지이전지원단에 파견된 약 한 달 동안이 전부이다. 현재는 출근하지 않은 채 본부 대기 상태로 있다. 문제는 지난 7개월 동안 출근도 하지 않고 일을 안 하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가 1996년에 공직 사회에 입문한 것을 감안하면 수당 등을 제외한 순수 봉급만 3백52만원(공무원 봉급표 기준)에 달한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약 3천만 원 정도를 수령한 것이 된다. 이에 대해 총리실 관계자는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일을 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당 등을 제외하고 월급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법원 판결문 “진경락, 모든 불법 행위의 책임을 부하 직원에게로 돌려”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은 실형을 면하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썼다. 기자가 입수한 진 전 과장의 1, 2심 판결문을 보면 1심에서는 두 곳의 로펌에서 변호인 네 명이 변론을 맡았다.

‘법무법인 바른’(변호사 3명)과 ‘법무법인 영포’(변호사 1명)가 그곳이다. 반면 장진수 전 주무관의 변호는 ‘법무법인 천우’가 맡았으며, 변호인은 1명이다. 2심에서는 ‘법무법인 우송’과 ‘법무법인 여산’이 변호인으로 참여했다. 1심과 마찬가지로 변호사 네 명이 진 전 과장을 변론했다. 진 전 과장의 변호인단 규모로 보면 ‘호화 변호인단’이라고 할 만하다.

진 전 과장의 변호사 비용은 이동걸 고용노동부장관 보좌관이 낸 것으로 알려졌으나, 돈의 출처는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진 전 과장은 재판 과정에서 범행을 극구 부인한 것으로 나와 있다. 또 모든 불법 행위를 부하 직원인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떠밀었다. 장 전 주무관의 ‘독자적인 행동’으로 미루거나 ‘보안 지침에 따른 정당 행위’라고 주장했다. 판결문에는 ‘자신의 범행에 대하여 반성의 빛을 찾기 어렵다’라고 적혀 있다. 그러면서 이인규 전 지원관 등에 대한 징계와 사법 처리는 적극적으로 막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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