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생명 내건 ‘오바마의 도박’
  • 한면택│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2.04.10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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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산 석유 수입국에 대해 금융 거래 차단 조치…재선 위해 핵무기 저지·유가 안정 두 토끼 잡아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석유를 가진 이란이 핵무기까지 손에 넣을 경우 이스라엘의 생존이나 미국의 중동 패권과 수퍼파워 자리마저 흔들릴 것이라는 판단 아래 이란 석유 제재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이란 석유 제재 카드는 여러 가지 위험성을 포함한 ‘위험한 도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산 석유를 수입하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미국과의 금융 거래를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것은 역으로 한 해 1천억 달러에 달하는 이란의 석유 수출 자금줄을 틀어막아 핵무기 개발을 저지해보겠다는 의도이다. 이란 석유에 대한 미국의 제재 조치는 6월28일부터 적용된다. 따라서 한국, 중국, 인도 등이 6월28일부터 이란산 석유를 수입하면 미국과 금융 거래를 하지 못하는 제재를 받는다는 뜻이다. 한국 등 이란산 석유 수입국들은 전량을 일시에 수입 중단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15~20%의 석유 수입을 줄이고 다른 나라로 수입선을 바꾸도록 요구받고 있다. 실제로 그 정도의 이란산 석유 수입을 줄인 일본과 유럽연합 10개국 등 모두 11개국은 미국으로부터 앞으로 이란산 원유를 수입해도 제재받지 않는 예외를 적용받게 된다. 한국은 6월28일 이전에 이란산 석유 수입량을 15~20% 정도 줄이고 미국으로부터 예외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 3월6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이란 등 중동 문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The New York Times

유가 급등시켜 경제 회복에 ‘찬물’ 예상

하지만 오바마의 이란 석유 제재 카드는 상당히 위험한 도박이라는 경고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이란의 석유 수출을 반감시킴으로써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국제 유가와 휘발유값을 더 급등시켜 오일쇼크에 버금가는 충격파를 불러올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럴 경우 미국을 포함한 지구촌 경제가 회복되는 데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이 이란 석유 제재 조치를 6월28일부터 시행할 경우 이란의 석유 수출은 반감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란은 하루에 4백25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고(세계 5위), 하루에 2백40만 배럴을 수출하고 있다(세계 3위). 미국의 제재 조치가 시행되면 이란의 석유 수출량은 적어도 80만 배럴이 급감해 하루 100만 배럴 안팎으로 반감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란의 석유 수출량은 하루에 최대 2백40만 배럴에서 적을 때는 1백80만 배럴이다. 이란산 원유 공급이 하루 80만 배럴만 줄어들어도 유가 급등을 부채질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다수 에너지 분석가는 텍사스산 중질유 기준으로 현재 100달러 초반인 국제 유가가 1백20달러대로 치솟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럴 경우 미국 내 휘발유값은 현재 전국 평균이 4달러에서 4달러25센트로 더 오르고 대도시 지역에서는 5달러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 급등은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민들의 씀씀이를 줄이게 하고 고용도 둔화시켜 경제 성장을 냉각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에너지난, 유가 급등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하루 80만 배럴의 이란산 원유의 수출이 줄어든다고 해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석유수출국기구) 국가, 캐나다 등지의 원유 공급을 늘려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와 캐나다 등으로부터 원유 생산과 수출을 늘리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와 함께 석유 수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영국·프랑스 등 유럽 동맹국들과 전략 비축유를 줄이기로 합의해놓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관리들은 이러한 대비책을 가동하면 국제 유가나 미국 내 휘발유값이 폭등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반대로 국제 유가와 미국 내 휘발유값이 올 여름에는 다시 하락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란이 만약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등의 맞대응 카드를 구사한다면 오일쇼크를 피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적색 경보도 나와 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땐 사태 심각

최근 미국의 한 주유소에 붙어 있는 가격표. 프리미엄급 휘발유값이 갤런당 5달러를 넘어섰다. ⓒ AP연합
이란은 전세계 원유 물동량의 20%인 하루 1천7백만 배럴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는 위협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만한 해군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으나 기뢰만 뿌려놓아도 봉쇄 효과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뿌려놓는다면 미국 등 동맹국들이 이를 제거하는 데 3개월이 걸리고 그 기간 중에 심각한 석유 수급 차질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이다. 그런 사태가 현실화되면 국제 유가는 현재보다 두 배 이상인 2백40달러, 미국 내 휘발유값은 8달러 시대를 맞음으로써 다시 오일쇼크를 당하고 경기가 다시 침체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경보이다.

이와 함께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 인도로부터 이란 석유 제재 조치를 일축당하는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하지만 이란산 석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중국과  두 번째 수입국인 인도는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줄이지 않고 물물 교환으로 미국의 제재를 피하려 하고 있어 오바마 행정부를 당혹시키고 있다. 중국은 이란의 석유를 수입하면서 달러가 아닌 위안화 등 양국 화폐로 결제하고, 이란은 다시 이 돈으로 중국산 전자제품이나 농산품을 수입하는 바터(물물 교환) 시스템을 활용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이란 석유를 2백17억 달러어치 수입한 반면 이란에 1백48억 달러 어치의 자국 제품을 수출했다.

인도도 같은 물물 교환 방식을 구사하려 하고 있다. 인도는 지난해 이란 석유를 97억 달러어치를 수입한 반면, 이란에 27억 달러 어치의 상품을 수출했다.

중국과 인도가 물물 교환 방식을 동원하고, 이런 추세가 각국으로 번진다면 미국의 이란 석유 제재카드에는 구멍이 뚫리고 미국의 채찍만 우스워지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과연 6월28일 이후 다른 경제 거래가 걸려 있는 중국과 인도에 대해 제재 조치를 취해 경제 전쟁까지 감수할 것인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란 문제는 오래된 딜레마이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이스라엘의 생존과 미국의 중동 패권이 걸린 이란의 핵무장을 저지해야 하는 다급한 사명을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란과 정면 대치해 유가 급등과 오일쇼크, 경기 재침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는 데도 부심하고 있다.

이 두 가지는 11월6일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향방을 판가름할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을 걸고 위험한 줄타기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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