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 M&A 폭풍이 몰려온다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금융부 기자 ()
  • 승인 2012.04.10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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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생명·ING생명 등 4~5개 회사 인수·합병 시장에 나와…보험사 간 합종연횡 바람 불 조짐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요즘 두 가지 일로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외형을 확대하기 위해 다른 보험사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이냐, 2대 주주와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가지고 갈 것이냐를 놓고서다. 두 가지 다 교보생명의 미래를 결정짓는 메가톤급 이슈이다. 2000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후 자생적 성장(organic growth)에 주력해온 신회장이 M&A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경쟁사 동향 때문이다. 삼성생명이나 대한생명이 다른 생보사를 인수할 경우 3위 교보생명과 큰 격차를 벌이게 된다.

보험업계가 초봄인 4월부터 크게 술렁이고 있다. 4월은 보험회사들이 새 회계 연도를 시작하는 달이다. 새해를 맞아 일부 생명·손해보험사들이 한꺼번에 매물로 나오면서 보험사 간 합종연횡 바람이 불 조짐이다.

‘2위’ 굳히려는 대한생명, 적극적 움직임 보여

현재 공식·비공식적으로 매물로 나온 보험회사는 4~5개에 달하고 있다. 전체 보험사의 10% 이상이다. 가장 먼저 새 주인이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회사는 동양생명이다.

지난 3월23일 본 입찰 마감 결과 대한생명과 미국 푸르덴셜생명 본사가 참여했다. 동양생명의 매각 대상 지분은 66.14%이다. 지분 인수자가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현재 주가에다 경영권 프리미엄(30~50%)을 감안할 때 매각 대금은 1조5천억원 안팎에 달할 전망이다.

현재 동양생명의 최대 주주는 보고펀드이다.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 만든 토종 사모 펀드이다. 펀드의 속성상 환매 시기가 다가오고 있어 지분 매각이 필수이다. 문제는 매각 가격이다. 보고펀드는 주당 2만5천원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래 매입 단가가 주당 평균 1만6천8백20원인데, 2006년부터 단계적으로 9천9백55억원을 투자한 만큼 그 밑으로 팔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고펀드는 가격 조정 및 세부 인수 조건 협상 등을 거쳐 오는 7월 전까지 매각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대한생명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총자산이나 수입보험료 측면에서 업계 7위인 동양생명을 인수하는 데에 성공하면, 호시탐탐 2위 자리를 넘보고 있는 교보생명을 멀찌감치 따돌릴 수 있게 된다. 대한생명과 교보생명은 시장 점유율 차이가 1%포인트도 나지 않을 정도로 박빙의 승부를 벌여왔다. 동양생명의 점유율은 4% 정도이다. 만약 미국 푸르덴셜생명이 동양생명을 인수하면, 푸르덴셜생명의 한국 내 점유율이 당장 업계 5위권으로 뛰어오를 수 있다.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대한생명이나 푸르덴셜생명 모두 가격을 무리하게 쓰지는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금융그룹이나 현대자동차그룹이 변수로 등장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하나HSBC생명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하나금융그룹은 생보사 인수를 통한 외형 성장을 추진해왔다. 현대차그룹 역시 녹십자생명 인수를 통해 현대라이프를 출범시켰지만 추가 도약을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빅3’ 생명보험회사 비교

 

삼성생명

대한생명

교보생명

총자산

157조728억원

67조9,344억원

61조5,467억원

설계사

4만2,070명

2만3,943명

2만2,361명

임직원 수

6,269명

4,336명

3,919명

당기 순익

5,244억원

3,723억원

4,672억원

지난해 4월~올 1월 기준│자료 : 생명보험협회

ING생명 아태법인은 초대형 매물

요즘 보험업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ING생명 아시아·태평양 법인이다. ING생명 아태법인은 한국과 일본, 말레이시아, 홍콩, 중국, 태국, 인도 등 7개국에서 영업하고 있다. 한국 시장 점유율은 5% 안팎으로, 업계 5위이다. 아시아 7개국의 이익 중 절반가량이 한국법인에서 나온다. ING그룹은 60억~70억 달러에 아태법인을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ING그룹이 아태법인 매각에 나선 것은 대주주인 네덜란드 정부 때문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ING생명 아태법인을 늦어도 내년 말까지 매각해 공적 자금을 회수한다는 전략이다.

ING생명 아태법인은 꽤 매력적인 매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법인만 해도 설계사 수가 6천6백86명으로, 삼성생명(4만2천70명)의 6분의 1에 미치지 못하지만 순익이 삼성생명의 40% 수준에 육박한다. 생산성이 이처럼 높은 것은 2000년대 초부터 대졸 남성 중심의 설계사 조직을 구축해 차별화에 성공한 덕분이다. 아시아 지역 여러 곳에서 영업하고 있어, 동시에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효과도 낼 수 있다.

가장 먼저 인수 추진을 선언한 곳은 역시 대한생명이었다. 대한생명은 동양생명과의 딜이 깨질 경우 ING생명 아태법인 인수에 ‘올인’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삼성생명에 이어 생보업계 2위 자리를 확고하게 다지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대한생명의 인수 의지가 비교적 강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자금 동원력이 관건이다.

삼성생명은 한국법인을 제외한 나머지 법인을 인수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법인 인수에만 뜻을 두고 있는 KB금융지주와 전략적 제휴를 추진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오는 배경이다. 삼성생명은 최근 미국 계리 법인인 밀리먼에 ING생명 아태법인의 가치 평가를 의뢰했다. 밀리먼은 2009년 삼성생명 상장 때 내재 가치 평가를 맡았던 회사이다. 박근희 삼성생명 사장은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영업을 확대해 해외 매출액을 8년 후 27조원까지 끌어올리겠다”라고 말했다. 박사장의 해외 전략에는 M&A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시장 점유율만 놓고 보았을 때 2위보다도 두 배 앞서는 삼성생명은 다소 느긋한 상황이다. 다만 ING생명을 대한생명이나 교보생명에 뺏길 경우 곧바로 2위권의 본격적인 추격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점에서 ING생명 한국법인까지 욕심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교보생명도 ING생명 아태법인 인수 추진을 공식화했다. 삼성생명과 대한생명이 ING생명 인수에 뛰어든 상황이라 자칫 ‘빅3’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산 규모 4위권인 농협생명이 지난 3월 공식 출범하면서 대형사들의 아성을 흔들고 있는 상황이다. 농협생명은 현재 35조원 선인 총자산을 2015년까지 80조원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교보생명의 경우 신회장이 목표로 잡은 ‘2015년 총자산 100조원 달성’을 위해서는 M&A가 꼭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ING생명 아태법인과 같은 좋은 매물이 자주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KB금융은 ING생명 한국법인을 인수하기 위해 매수 자문사로 HSBC를 선정하고 매각 자문사인 골드만삭스, JP모건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계열사인 KB생명의 경우 보험업계 중·하위권이어서 성장 동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은 “ING생명에 관심이 많다”라고 확인했다. 일각에서는 IBK연금보험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기업은행도 ING생명 아태법인 인수를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국내 금융사 간 컨소시엄 구성 얘기도 흘러나온다.

다만 AIA생명과 푸르덴셜생명, 메트라이프생명 등 해외 대형 보험사들도 ING생명 아태법인 인수를 검토하고 있어 누가 새 주인이 될지는 끝까지 지켜보아야 한다. 특히 푸르덴셜생명은 BoA메릴린치를 매수 자문사로 선정해 동양생명에 이어 또 한 번 대한생명과 부딪히게 되었다. AIA생명은 매수 자문사로 모건스탠리와 도이치 은행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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