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물 튼 고졸 채용 “학벌보다 능력 먼저”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4.10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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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고졸 채용 바람이 불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꺼져가던 고졸 채용의 불씨가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살아나고 있다. 정부와 사회의 성화에 못 이겨 기업이 화답하는 모양새이기는 해도 고졸 채용이 늘어나는 현상은 반길 일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준비된 인재’가 없다고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인터넷에 흩어진 정보를 자신의 지식인 양 포장은 잘하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약하다는 평가이다. <시사저널>이 만난, 고졸 출신 대기업 사원들은 ‘절실함이 생각하는 힘을 키웠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기업과 업무에 대해 처절하게 고민하고 공부했다는 것이다. 기업의 고졸 채용 트렌드와 고졸 취업자의 성공 취업 비결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경기상고 3학년 학생들과 교사가 금융권 취업에 필요한 자기소개서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한화그룹이 고졸 사원 5백명을 모집하겠다는 공고를 내자 1만4천명이 몰렸다. 경쟁률이 28 대 1을 기록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경기 불황 등의 이유로 중소기업의 채용 규모가 줄어들면서 고졸 취업자들의 설 자리도 점점 줄어들었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고졸 채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하자 대기업들은 올해 고졸 채용 규모를 늘렸다. 올해 30대 그룹의 고졸 채용 규모는 약 3만7천명으로 추산된다. 지난해보다 7%가량 늘어났고, 전체 신입사원 12만명의 4분의 1이 넘는 수치이다.

채용 규모는 삼성그룹이 9천명, 롯데그룹은 6천명, LG그룹은 5천7백명 등이다. 전체 신규 채용 인원의 절반 정도를 고졸자로 충당하는 기업도 있다. 전체 신입 직원(6천7백명)의 절반에 해당하는 3천100명의 고졸자를 채용하는 포스코 관계자는 “인력을 조기에 확보함으로써 정년퇴직에 따른 업무 공백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기술직은 노하우 전수가 쉬운 점도 고졸자 채용의 장점이다”라고 고졸 채용을 늘린 배경을 설명했다.

대기업들, 고졸자 채용으로 ‘일석삼조’ 노려

KT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 취업할 예정인 고졸 학생들. ⓒ KT 제공
또 비정규직을 줄이라는 여론에 몰려 인건비 압박을 받는 기업들 입장에서 고졸 채용은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는 수단이다. 고졸 신입 직원 연봉은 2천만~3천만원으로 대졸자 연봉의 65~85% 선이다. 정부의 정책, 기업의 조기 인력 확보, 인건비 절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올해 대기업의 고졸 채용 규모는 늘어났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고졸자들은 대학으로 몰렸다. 외환위기 이후 고졸 채용 감소와 고졸 취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이 그 배경이 되었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까지 고졸자의 대학 진학률이 83%까지 치솟았다. 그 결과 현실적으로 대졸 인력은 남고, 고졸 출신의 전문 인력은 부족하다. 수출에 기반을 둔 한국 경제를 고려할 때, 앞으로 기술 전문직을 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조짐이 보인다”라며 고졸 인력 채용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마이스터고 학생들이 현대차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 현대자동차 제공
이런 분위기를 타고 대기업 채용에 고졸자들이 몰리자 일선 학교도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다. 배재역 경기상고 취업특성화 담당 교사는 “과거에는 상고 출신자들은 은행이 알아서 모셔갈 정도였지만 지금은 정반대이다. 교사가 금융권을 돌며 학생들의 우수함을 알려야 한 명이라도 더 취업시킬 수 있다. 아무튼 최근 대기업과 금융권에 고졸 채용 붐이 일면서, 졸업생 중에서 취업하는 학생 비율이 예전의 35%에서 올해 60%로 높아질 전망이다. 이런 추세에 맞춰 은행원·유통관리사·무역사 등 직군별로 특화된 교육을 하고,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교육의 질도 높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기업에서는 쓸 만한 인재를 찾기 어렵다는 소식이 들린다. 기업들은 채용과 동시에 실무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롯데그룹 인사담당자는 “지원 분야에 대한 이해나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단순하게 지원하는 고졸자가 많다. 스스로 자질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인력을 뽑지 않을 수는 없다. 기업들은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검증된 인재를 찾기 시작했다. 포털 사이트 네이트를 운영하는 SK커뮤니케이션즈는 2010년 SK텔레콤 주최로 열린 스마트폰 앱 공모전에서 수상한 고졸자를 뽑았다. 이 회사 홍보팀의 나국남 매니저는 “그 직원은 10대가 애용하는 각종 서비스를 또래 눈높이에 맞춰 개발하는 데에 한몫을 한다”라고 평가했다.

삼성은 전국기능경시대회와 국제기능올림픽 메달리스트 채용에 관심을 두고 있다. 조성인 삼성중공업 기술연수원 부장은 “고졸 입상자들은 입사 후 업무를 습득하는 속도가 일반 대졸 사원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빠르다. 고졸이라는 학력 수준이 전혀 결함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삼성과 현대 등 15개 기업은 2006년 말 한국산업인력공단과 기능경기대회 입상자 채용을 지원하는 ‘기능 장려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지난 5년 동안 삼성전자와 현대중공업은 각각 1백66명과 1백14명을 채용했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입상한 고졸자의 취업률은 더 높다. 최근 3회 동안의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메달을 받은 85명 중 대학 진학자 9명을 제외하고 72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특히 지난해 대회 입상 후 취업한 19명 가운데 대기업 입사자는 16명이다. 손종배 한국산업인력공단 기능경기팀 차장은 “협약을 맺은 첫해인 2007년에 대기업에 입사한 대회 수상자는 87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백92명이었다. 수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기업이 검증된 인력을 찾으려는 분위기이다”라고 설명했다.

고교 때부터 ‘대기업 맞춤형 인재’ 육성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학교와 기업의 교육 내용이 달라서 입사 후 직무에 대한 교육을 새로 해야 하는 비효율성을 줄일 수 있다. 기업은 고등학교와 협약을 맺고 면접 등을 통해 2학년 학생을 미리 뽑는다. 이들에게는 각 기업이 마련한 교재와 강의로 교육한다. 이른바 ‘맞춤형 인재’를 학생 때부터 육성하는 것이다. LG전자는 지난해 구미전자공고와, 두산중공업은 창원기계공고 등 3개 학교와, 한화케미칼은 울산과 광주에 있는 마이스터고와 협약을 맺었다. 김상운 울산마이스터고 진로 상담 교사는 “3학년에 한화반·삼성반 등 기업의 이름을 딴 학급이 있다. 이미 각 기업 채용이 내정된 학생들이 기업 맞춤형 교육을 받는다. 학생은 소속감을 가지고 실습에 임하고, 기업은 맞춤형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중학교 성적 상위 40% 학생들이 마이스터고에 진학했지만, 올해는 상위 20% 학생들이 들어왔다. 그만큼 고졸자 취업에 대한 사회적 시각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최근의 고졸 채용에는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 생산직에 한정되었던 고졸 직원의 업무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학력보다 능력으로 평가하려는 기업의 분위기가 확산되는 추세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소프트웨어 개발, 사무직, 엔지니어직 등 다양한 직무에 고졸 사원들이 투입된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룹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고졸 사원을 선발해서 계열사에 배치하던 흐름도 바뀌고 있다. 각 계열사가 특정 업무에 맞춰 ‘맞춤형’ 인력을 뽑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또 대졸자와의 급여 및 승진 차별을 줄이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롯데는 고졸 직원이 취업한 지 2~4년 후에는 대졸자와 차별받지 않고 능력으로 연봉과 승진을 평가받을 수 있도록 인사 제도를 고쳤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수석 계장’이라는 직급을 만들었다. 전문성을 갖춘 기능직 고졸 사원도 전문가, 전문위원, 임원 등으로 승진할 기회가 생긴 셈이다.

“고졸 출신 임원 등 성공 모델 많이 나와야”

취업 준비생들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취업 후 학업을 할 수 있느냐’이다. 취업과 진학 사이에서 갈등하는 학생들은 취업 후 진학할 수 있다면 취업부터 하겠다고 말한다. 여전히 한국 사회가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분위기에 젖어 있는 만큼 취직을 하고서라도 ‘대학은 가겠다’는 심리가 학생들 사이에 강하다. 최금암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장은 “근무 평가 우수자에게는 야간 대학 및 방송통신대학 학비도 지원한다. 사내 기술 훈련 과정도 개설한다. 5년 근무한 뒤에는 성과에 따라 특별 승격 자격을 주어 대졸자와 학력으로 인한 연봉 및 승진 차별을 없앨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일선 학교에서는 기업의 고졸자 채용이 확대되는 것을 반기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정작 취업 예비생들은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금융권 취업을 준비 중인 진혜리양(경기상고 3학년)은 “정부의 압력에 기업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고,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불안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불안감에 대해 전문가들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고졸자를 채용하는 분위기가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도 범용 인력보다는 전문 인재를 선발해 적소에 배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고졸 출신자 임원과 같은 성공 모델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고졸 취업 예비생들도 안심하고 능력 개발에 더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기업 취업 성공 키워드는 ‘사색하는 열정’ 

인터뷰에 응한 고졸 직원들은 당당했다. 형식적으로 준비한 말보다 자신의 생각을 풀어냈다. 여러 기업에 지원한 것이 아니라 한 기업을 정하고 취업을 준비한 것도 공통점이다. 이런 절실함이 대기업 문을 열어젖힌 열쇠였다. 취업 후에는 일에 미쳤다. 미치면 열정이 드러난다. 기자가 만난 다섯 명의 고졸 취업자들은 ‘사색하는 열정’ 그 자체였다.


 

 ⓒ 시사저널 박은숙
시쳇말로 ‘체질’이라는 말은 곽동욱씨(27)를 두고 생긴 것 같다. 그는 오래전부터 공부보다 일에 재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굳이 돈이 필요하지도 않았는데, 16세 때부터 호텔 잡부일, 배달, 창문 닦기, 노점상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일할 때만큼은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신이 난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로 학업을 마무리할 정도로 공부는 재미가 없었다. 직업학교에 진학했지만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군에서 제대한 후인 2009년 무렵 패밀리레스토랑 빕스(VIPS)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 지금의 직업이 되었다. 일을 하면서 CJ그룹의 비전을 생각했고 자신이 일할 직장으로 삼았다. 정식 직원이 되기 위해 면접을 보던 날 그는 사고를 쳤다. “허위 보고를 한 일을 솔직히 고백했는데 오히려 경영진에게 신뢰를 받아 합격했다.”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은 자칫 무모한 경쟁심으로 표출된다. 그러나 곽씨는 그 성격을 일에 쏟았다. 무언가에 미치면 열정으로 나타난다. 그 열정은 누구에게 알리지 않아도 스스로 드러나서 경영진이 느끼게 마련이다. “동기보다 일을 더 배우고 싶어 휴일을 반납하고 일했다. 이런 점이 열정으로 나타났다. 보이기 위한 열정과 자발적인 열정은 분명히 다르다. (고졸 취업 준비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자신이 가는 길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끈기도 열정에서 나온다.”


 

정보고등학교를 졸업한 조은씨(20)는 지난해 11월 SK커뮤니케이션즈에 입사해서 프로그래머로 근무 중이다. 학창 시절에 배운 프로그래밍 취미가 직업이 된 셈이다. 사실 조씨는 법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유학을 준비했지만, 취업과 동시에 포기했다. “대학 등록금이 만만치 않고, 대학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유학을 포기했지만 이 회사에 입사한 것은 나에게 인생의 기회가 되었다.”

그는 입대를 앞두고 있다. 그 기간에 휴직할 예정이다. 그 후에는 가장 자신 있는 분야를 찾아 최고 전문가가 되는 꿈을 세웠다. 회사의 한 사업을 책임지는 임원이 되겠다는 것이다.

고졸 출신 취업 준비생에게 그는 할 말이 많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고집했다. 이 회사에 도전해서 안 되면 재수하더라도 또 도전했을 것이다. 일단 어디든 취업하고 보자는 행동은 어리석다. 또 학교에 너무 의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은 자신이 여는 것이다.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획일화된 글과 말보다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말한 것이 취업에 도움이 되었다.”


 

대한생명 입사 5개월 차인 조영은씨(19)는 말 그대로 병아리 사원이다. 하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취업을 결정했고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두었다. “일찍부터 취업을 목표로 삼고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집과 학교에서 나는 커리어우먼으로 통한다.”

그가 한화그룹에 입사할 수 있었던 힘은 ‘긍정’이었다. 실무에 대해 질문할 줄 알았던 면접관은 엉뚱하게도 야구 이야기를 꺼냈다. “한화 이글스 감독이라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야구의 ‘야’자도 몰랐다.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고객 응대를 했던 경험을 사례로 들면서 야구팀 홍보를 잘 해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모든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하면서 나의 경험을 솔직하게 섞었던 것이 진솔함으로 드러난 것 같다.”

상사가 자신을 칭찬하는 것보다 지적하는 것이 좋다. 칭찬받으면 안주하지만 지적받으면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의 가슴에 똬리를 틀고 있다. 스스로도 전문성을 갖추고 임원으로 승진할 꿈도 품었다. “나는 임원이 될 수 있다. 금융사에 입사한 만큼 대학에서 회계를 공부해서 전문성을 키울 생각이다. 단기적으로는 후배들이 보고 배우고 싶은 선배가 되도록 현 업무에 충실하고 싶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과 병역까지 마친 이혁씨(28)는 2007년 GS리테일에 입사해 현재 GS수퍼마켓 명일점에서 농산물 코너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집 근처 GS수퍼마켓에서 웃으며 친절하게 일하는 직원을 보고 그 회사에 입사하기로 결정했다.

면접에서 솔직함과 용기를 내세웠다. “입사 당시 내가 내세울 것이 없었다. 면접관이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나는 2년 정도 레크레이션 강사로 일한 경험을 살려 율동(춤)을 보여주었다. 다른 지원자들은 영어로 자신을 소개하는데, 참 엉뚱한 행동이었지만 나의 본래 모습을 보였다. 2차 면접에서도 같은 질문을 받았고, 나는 그저 웃었다. 웃음이 가장 자신 있다고 설명했다. 예전에 만났던 그 직원처럼, 서비스직에는 친절과 미소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는 입사 4년 만에 다른 동기보다 빨리 선임사원으로 승진했다. 앞으로 임원으로 승진하는 꿈을 꾸고 있다. “회사에 고졸 출신 상무가 있다. 나에게도 임원으로 승진할 기회가 있는 셈이다. 이를 위해 사내 교육도 받아 차근차근 자격을 갖출 생각이다.”


 
 
ⓒ 포스코 제공
포항제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0년 포스코에 입사한 백두산씨(24)는 현재 설비를 정비하는 일을 맡고 있다. 광양제철소를 보고 자란 그는 우연한 기회에 견학을 한 뒤 포스코를 첫 직장으로 점찍었다. “거대한 설비와 기계를 보고 내가 정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대학 대신 취업으로 진로를 정했다. 대학 진학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도 덜고, 기계 정비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다른 제조사보다 다양한 시설이 있는 포스코를 선택했다.”

진로가 정해지자 학교에서 할 일이 명확해졌다. 성적을 잘 관리했고, 필요한 자격증도 취득했고, 봉사 활동에도 충실했다. “포스코에 대해 알아가는 도중에 포스코는 인성을 중시한다는 말을 들었다. 인성 면접을 꾸준히 준비했는데, 면접관은 전혀 다른 질문을 해서 불안했다. 면접 말미에 더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해서 입사 후 포부를 자신 있게 말했다. 그것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그는 세계 곳곳을 누비는 정비사가 되는 꿈을 품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일이 힘들기보다 재미있다고 한다. “여러 나라에 있는 포스코 현장에서 정비감독관으로 일하고 싶다. 학창 시절처럼 목표를 세우니 현재 배우고 있는 일이 고되지 않고 재미있다.”


 

기업 문턱 넘은 고졸자, 그래도 남아 있는 장벽들 

고졸 채용 바람이 불고 있지만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 단기적으로는 남자 직원의 병역 문제가 있다. 일부 기업은 병역 기간을 휴직으로 처리하지만, 병역을 필한 자나 면제자를 선호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금융권에는 고졸 출신자를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 이는 고용 불안 문제로 이어진다.

고졸 출신자들의 취업의 질도 높일 필요가 있다. 이들의 첫 직장 업종은 도소매ㆍ음식ㆍ숙박업이 42.1%로 가장 많고, 광업ㆍ제조업 분야는 22.7%에 그쳤다. 첫 직장에서 수행하는 업무도 서비스ㆍ판매 종사자가 45.3%로 가장 많았고 기능ㆍ기계 조작, 단순 노무 종사자가 34.8%로 그 뒤를 이었다.

대학 과정에서의 비용을 고려하더라도 대졸ㆍ고졸 간 적정 수준의 임금 차이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최근에는 그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 고졸자의 지난해 월평균 임금은 1백45만5천원으로 대졸 이상보다 42만7천원, 전문대졸보다 12만7천원이 적었다. 특성화고를 졸업하더라도 대학 입학을 더 선호하는 이유이다.

취업만 되고 승진의 기회가 없다면 고졸 채용은 이 사회에 정착할 수 없다. 학력 때문에 승진할 수 없다는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대졸자에 대한 역차별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오규덕 인쿠르트 대표컨설턴트는 “기업들이 고졸자를 위한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고졸 채용을 늘리면 그만큼 대졸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대졸 취업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대졸자들이 일부러 고졸로 학력을 낮춰 지원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학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경쟁력이 낮은 대학은 퇴출하거나 특성화 대학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로 결정을 지금보다 더 이른 시기에 해야 한다는 주장은 취업 준비생의 입에서 나왔다. 그만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조영욱군(경기상고 3학년)은 “취업을 위해 자격증 취득, 실습, 인턴 교육을 2학년 때 갑작스레 시작하는 감이 있다. 조금 더 일찍 진로를 결정하고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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