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문재인 앞으로 “헤쳐 모여”
  • 조진범│영남일보 정치부 기자·구혜영│경향신문 정& ()
  • 승인 2012.04.10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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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후 여야, 각각 박근혜와 문재인 중심으로 급속 재편될 가능성…여타 ‘잠룡’들 입지는 약해질 듯

오는 12월에 치러질 18대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띠는 이번 19대 총선은 향후 여야 대선 구도에도 상당한 변화를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새누리당은 본격적인 ‘박근혜당’으로 급속히 체제를 정비할 전망이다. 민주통합당은 현재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로 떠오른 문재인 상임고문의 역할과 비중이 매우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당과 제1 야당이 총선을 계기로 사실상 대권 체제로 돌입하는 셈이다.  

3월31일 서울 창동역 앞에서 유세 중인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 ⓒ 시사저널 유장훈

▒ 새누리당과 박근혜 비대위원장

총선을 계기로 이제 새누리당에서는 더 이상 ‘친박계’니 ‘친이계’니 하는 용어는 등장하지 않을 전망이다. 여권의 골칫거리였던 계파 갈등이 불거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정확히 말하면 친이계가 정권 재창출이라는 ‘용광로’에 들어가 형체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야말로 ‘박근혜 세상’이 열리게 된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 체제 구축이다.

친이계의 좌장 격인 이재오 의원이나 잠재적 대권 주자인 정몽준 의원이 총선에서 살아 돌아오더라도 당분간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이의원과 정의원도 결국 박근혜 위원장에게 공천을 받은 꼴이다. 이번 총선은 MB 정권의 민간인 불법 사찰 파문으로 사실상 여권이 ‘대참패’를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뭐라고 박위원장을 공격할 수 있겠나. 총선도 총선이지만, 보수와 진보가 벌이는 건곤일척의 승부인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잘못 ‘삐딱선’을 탔다가는 보수층으로부터 몰매를 맞을 수 있다.” 여권 소식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의 분석이다. 이른바 ‘반박(反朴) 세력’의 규합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잠재적 대권 주자인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동력을 잃은 상태라 ‘박근혜 체제’를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원로 그룹이 박근혜 체제 떠받칠 전망

한 친박계 인사는 “이른바 친이계 인사들은 대선 때까지 잠잠하거나, (박근혜 위원장에게) 협조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작은 싸움’에 연연할 형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건 큰 승부를 이겨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이제 친이계는 없다고 보면 된다. 한번 두고 보아라. 공천 탈락에 반발해 탈당과 함께 무소속으로 출마한 친이계 의원들도 결국 다시 새누리당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다. 정권 재창출이라는 과제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MB 정부와 분명히 선을 긋는 모습도 친이계의 설 자리를 없게 만드는 배경이다. 이미 정책 기조에서 차별화를 선언한 새누리당은 민간인 불법 사찰 파문을 계기로 MB 정부와 결별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박위원장조차 “나도 피해자이다. 특검을 통해 전·현 정권의 불법 사찰을 조사하자”라며 노무현 정부와 MB 정부를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정권 심판론’이 최대 이슈로 부각되지 못한 것도 새누리당 역시 과거와의 단절을 표방하며 MB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이상돈 비상대책위원은 민간인 불법 사찰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의 ‘하야’까지 거론했다. 선거를 앞둔 지난 4월5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사전에 인지한 바는 없었나, 혹시 이런 부분에 대해 책임질 만한 일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부분까지 밝혀질 것 같으면 그것은 사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이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오면 하야까지 요구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는 지적에는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예전 같았으면 당이 발칵 뒤집혔을 법한 초강경 수위의 ‘대통령 하야’ 발언까지 나왔음에도 새누리당은 조용하다. 반박하는 목소리가 전혀 없다. MB 정부를 털고 가겠다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물론 ‘박근혜 체제’의 순항 여부는 총선 성적표에 달려 있다. 선거 전 친박계 핵심인 유승민 의원은 “어쨌든 총선 성적표가 좋아야 박근혜 체제가 안정되고, 대선 전망도 밝아진다”라고 말했다. 최경환 의원은 “당초 100석도 건지기 어렵다고 했는데, 이만큼 끌고 온 것은 박위원장의 힘이다. 1백30석만 건지면 대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총선 이후 박근혜 체제를 안착시키기 위한 포석 깔기였다.

이미 인적 구성은 해놓았다. 총선 이후 새누리당에는 친박계가 넘쳐난다. 온통 ‘박근혜의 사람’이다. TK(대구·경북) 지역 친이계인 이병석 의원이나 주호영 의원도 ‘박근혜 집권’을 위해 사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 

총선 이후 박근혜 체제에서 충성 경쟁은 불을 보듯 뻔하다. 새로운 인물이 대거 편입되기 때문이다. 측근 세력이 기존 그룹과 새로운 그룹으로 재편되면서 충성 경쟁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신경전도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우선 박근혜 체제를 안정감 있게 가져갈 원로 그룹으로, 서울 종로에서 민주당 정세균 의원과 맞붙은 홍사덕 의원과 대전에 출마한 강창희 전 의원 그리고 원외의 서청원 전 미래희망연대 대표, 김무성 의원 등이 주목받는다. 특히 홍의원과 강 전 의원이 총선 승리 여부와 상관없이 향후 박근혜 체제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서 전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에도 상당히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체제의 ‘좌장’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의원은 이성헌 의원과 함께 대선 조직을 담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역별로는 충청권에서는 송광호 의원이, 부산에서는 서병수 의원이, 대구와 경북에서는 유승민 의원과 최경환 의원이 중심에 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 강남 갑과 강남 을에 각각 출마한 심윤조 전 주오스트리아 대사와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외교 측근으로 분류될 수 있다. 국정원 2차장을 지낸 서초 갑 김회선 후보와 성신여대 교수 출신의 서초 을 강석훈 후보도 ‘범박계’ 인사로 눈길을 끈다. 적지인 광주 서 을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친 이정현 의원은 다시 한번 ‘박근혜의 입’과 같은 최측근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정책 분야는 원외 인사들의 몫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박위원장 주변에는 이른바 ‘폴리페서’가 많이 몰려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친박계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박위원장의 용인술로 볼 때 특정인이나 특정 그룹에 힘을 실어주지 않을 것이다. 박위원장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서는 각자 충성하고 생색을 내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포럼 형태의 조직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공천에서 떨어진 친박계 의원들이 포럼을 만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위원장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주성영 의원과 이혜훈 의원이 이미 의견을 나눈 상태이다. 주의원은 “이의원 등과 함께 포럼을 만들어 국가 정책을 연구하겠다. 사법 개혁이나 경제 등 국정 전 분야를 다룰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호박넷 등 박위원장의 팬클럽은 ‘친정 체제’로 알려졌다. 박위원장의 측근이 직접 팬클럽을 관리한다는 전언이다.

4월5일 부산 덕천동에서 민주당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 문재인 후보 제공

▒ 민주당과 문재인 상임고문

4·11 총선이 대선 전초전이라는 의미를 갖는 무대라면 야권에서는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이 한가운데에 서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역사에 남기를 바랐던 문고문의 ‘운명’은 4·11 총선 이후로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총선 때문에 부산에 주로 머물렀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짐을 꾸려서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이자 민주당의 실질적 ‘당권’ 주자가 되는 것이다.

문고문은 ‘친노’ 세력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번 총선의 공천 당시 문고문이 진두지휘하는 친노 세력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당초 문고문의 총선 후 입지를 전망할 때, PK(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야권이 두 자릿수 의석을 확보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런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정치적 입지나 경험이 취약한 문고문이 대선 정국에서 역풍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아무튼 이번 총선을 계기로 민주당의 주류 세력으로 떠오른 친노계의 ‘보스’가 문고문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총선 이후 다양한 원 내외 친노 인사들이 ‘문재인 대망론’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PK파가 최일선에 있다.

이번 총선에서 경남 김해 을에 출마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인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 부산 사하 갑에 나선 최인호 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 부산 북·강서 갑에 도전했던 전재수 전 청와대 제2부속실장 등이 대표적이다. 최위원장은 참여정부의 청와대 부대변인 출신으로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전 전 실장은 문고문의 ‘PK 대표성’을 받쳐주는 인물이다. ‘PK파’는 아니지만 부산 북·강서 을에 출마한 문성근 최고위원도 우군이다. 문최고위원은 야권 대통합 운동을 위해 만든 ‘국민의 명령’에서 활동할 때부터 정치적 행보를 함께했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문고문의 최측근 참모이다. 1988년 노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영입된 부산 출신 핵심 인사이다. 문고문의 경남고 후배이기도 하다.

당 장악 못하면 ‘지원자’로 전락할 수도

청와대 출신 그룹도 탄탄하다.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이 맨 앞에 있다. 문고문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을 집필해 그가 정치권에 진입하는 데 기여했다. 노무현재단 초대 사무처장을 맡았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 중랑 을에 도전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패한 뒤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가 문고문을 도왔다. 윤건영 전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은 이번 총선에서 문고문의 수행을 맡았던 그림자로 통한다. 노무현재단 기획위원이다.

국회 입성을 앞두고 있는 19대 총선 비례대표군 중에도 ‘문재인 사단’이 포진해 있다. 후보 6번을 받은 김용익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과 17번에 확정된 김현 당 수석부대변인이 눈에 띈다. 김부대변인은 참여정부 때 청와대에서 춘추관장을 맡았다. 정수장학회 문제를 쟁점화하기 위해 끌어올린 배재정 전 부산여기자회 회장(비례후보 7번)도 문고문이 영입했다. 비례후보 16번을 받은 시인 도종환씨는 노무현재단 기획위원이다. 이들과 함께 현재 지역구 당선이 유력하게 점쳐지는 백원우 의원이 원내에서 문고문의 대권 전략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대여 투쟁 국면에서 문고문의 ‘정치 지수’를 높이는 역할을 맡게 된다.

친노 중진 그룹은 문고문의 오랜 동지들이다. 친노의 좌장 격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우선 꼽힌다. 문고문과 ‘혁신과 통합’을 발족해 민주당과 시민사회 세력이 통합하는 것을 주도했다. 두 사람은 참여정부 국정 파트너로서 호흡을 맞췄다. 야권 통합 이전부터 “통합 정당을 만들어 당권은 한명숙, 대권은 문재인으로 가야 한다”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세종시에서 ‘배지’를 달고 국회로 금의환향할 경우 ‘자력 대권 도전’에 나설 여지도 있다. 한명숙 대표도 빠뜨릴 수 없다. 문고문이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 비서실장이었을 때 한대표는 국무총리였다. 그런데 이번 공천 과정에서 당내 386그룹과 친노 간 갈등이 불거졌을 때 다소 불편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문고문은 정세균 상임고문과도 가깝다. 정고문도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문재인 지지’를 선언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문재인 고문의 당 장악력이다. 경쟁자들의 면면 또한 만만찮다. 특히 당내에서는 손학규 상임고문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친노 세력과 손고문은 섞일 수 없는 관계이다. 노 전 대통령이 손고문의 한나라당 탈당을 두고 ‘보따리장수’라고 비판할 정도로 앙금이 깊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이철희 대표는 “손고문이 수도권 총선에서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둔다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문고문과 손고문 두 사람의 대결로 치러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친노 세력 내부의 경쟁자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박왕규 대표는 “표심의 확장성, 대선 구도의 유연성 등을 고려하면 김지사가 오히려 운신 폭이 더 넓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대선 구도가 ‘노무현 대 박근혜’로 형성된다면 문재인 고문이 적임자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노풍(盧風)’이 오는 12월 대선까지 계속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회의론도 나온다. 문고문이 노풍에만 기대서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은 그래서 나온다. 그런 면에서 보면 김두관 지사는 ‘중앙 대 지방’, ‘귀족 대 서민’ 등 다양한 영역에서 움직일 수 있다. ‘안철수 변수’ 또한 여전히 살아 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동영 의원 등 각 계파의 대선 주자들이 당 전면에 등장할 수밖에 없다. 문고문은 이 무대에서 힘겨운 경쟁을 벌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대선 주자를 지원하는 처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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