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골’ 공방전에 끝물 흐린 총선
  • 감명국·김회권 기자·이철희│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 (kham@sisapress.com)
  • 승인 2012.04.10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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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총선 막바지 레이스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새누리당은 부산 사하 갑에 출마한 문대성 후보의 논문 표절 시비로, 민주통합당은 서울 노원 갑에 출마한 김용민 후보의 과거 막말 파문으로 발등을 찍혔다. 이번 후보 자질 논란은 이번 총선 국면뿐만 아니라 앞으로 있을 대통령 선거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어 그 파장이 주목된다.

4월6일 서울 월계동의 한 경로당을 찾아 큰절을 하는 김용민 민주통합당 노원 갑 후보. ⓒ 연합뉴스

“이 자리에 서 있으면서 양쪽을 끊임없이 자극해 쇄신의 노력을 다하게 만든다는 것이 진심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 3월27일 서울대 강연에서 한 발언이다. 안원장이 끊임없이 자극해 쇄신의 노력을 다하게 만들 대상인 ‘양쪽’은 바로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말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이번 총선을 통해 쇄신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많은 정치 전문가가 “이번 총선의 최대 수혜자는 총선과 거리를 둔 안철수 원장이다”라는 평가를 내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대 선거가 늘 그래왔듯이 이번 총선 역시 여야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몇 차례 롤러코스터를 탔다. 물론 여당의 지지율이 오를 때는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당이 잘못해서였고, 반대로 야당의 지지율이 오를 때도 여당이 실수한 탓에 뒤집기를 하곤 했다. 한마디로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잘못해서’ 덕을 보는 한심한 정치 현실이 이번에도 극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여야의 ‘자살골’ 선거의 극치는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잇따라 불거졌다. 첫 자살골은 새누리당이 넣었다.

지난 3월26일 부산 사하 갑에 출마한 문대성 후보의 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졌다(15쪽 상자 기사 참조). 부산 사상에 출마한 손수조 후보의 ‘전세금 선거 비용’ 거짓말 논란에 이은 악재였다. 새누리당과 문후보는 “정치 공작·흑색선전이다”라며 야권의 구태 정치로 몰아붙였다. 학술단체협의회가 “명백한 표절이 맞다”라고 발표했음에도, 심지어는 “논문 표절이 후보 사퇴까지 가야 되는 중요한 사안으로 보지 않는다”라는 새누리당 중진 간부의 입장까지 알려지면서 도덕성 논란은 더 가열되었다.

민간인 불법 사찰 파문에 이어 새누리당의 자살골까지 더해지며 민주당의 총선 승리가 눈앞에 다가오는 듯했다.

“오는 12월 대선이 더 큰 걱정”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지 못한 채 눈물 흘리는 모습. ⓒ 연합뉴스
그러나 이번에는 민주당에서 결정적 순간에 자살골을 넣었다. 서울 노원 갑에 출마한 김용민 후보의 막말 동영상이 4월3일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었다. 2004~05년 한 인터넷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김후보의 “(연쇄 살인범) 유영철을 풀어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을 XX해 죽이자” “저출산 대책을 위해 밤마다 방송 3사가 섹스비디오, 포르노비디오를 틀어야 한다”라는 등의 막말이 알려지면서 격론이 일었다. 코너에 몰렸던 새누리당 등 보수 진영에서는 때아닌 ‘호재’를 만난 셈이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민주당 일각에서 김후보를 조기 사퇴시켜 파문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여론의 눈치만 살피며 어물쩍 넘기려 했다. 오히려 김후보측은 “사퇴는 새누리당을 도와주는 꼴” “사퇴는 조·중·동(조선·동아·중앙일보) 프레임에 당하는 꼴”이라는 식의 변명을 대며 사퇴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결국 문제를 조기에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말았다.

김후보 문제에 대응하는 민주당의 모습에 대해 “당장 총선이 문제가 아니라, 오는 12월의 대선이 더 큰 걱정이다”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공천을 통해 ‘큰일’을 망쳐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돌이켜 보면, 연말 연초에 민주당은 최고의 상승세를 구가했다. 통합 효과로 지지율 1등의 옥좌에 등극했다. 당시로서는 총선 성패는 문자 그대로 ‘대승’(大勝), 아니 어쩌면 이기지 않기도 힘든 선거였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공천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정당 지지율은 다시 2등으로 내려앉았다. 당내 분위기도 뒤숭숭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10년 지방선거 후 민심은 여권에는 분노를, 야권에는 불만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것도 민심의 분노 때문이었다. 이 선거를 통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통해 형성된 보수 우위 구도는 허물어졌다.

3월21일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으로부터 공천장을 받는 문대성 후보(왼쪽). 3월25일 자신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와 포즈를 취한 김용민 후보(오른쪽). ⓒ 시사저널 유장훈·연합뉴스

“당이 책임지고 입장 밝혀야 하는데…”

이때부터 민심은 민주당에게 변화를 강하게 주문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좋아서 표를 주었다는 여론이 단 2%에 불과했다는 한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민주당에 대한 신뢰는 다시 바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역할을 할 정도로 회생시켜주었으니 이제 조금 바꾸어라’라는 요구가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흐름 때문이었을까. 2010년 10월3일에 있었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한나라당 출신의 중도 성향 손학규 후보가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 여세를 몰아 손대표가 2011년 4월의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불리는 경기 성남 분당 을에 직접 출마해 당선한 것까지가 절정이었다. 그러나 이 시점부터 민주당의 혁신은 실종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비등하다. 변화는 사라지고 현실에 안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가 그 극명한 예이다. 당초 오세훈 시장의 사퇴로 서울을 재탈환할 기회라고 반색하던 민주당에 곧 엄청난 악재가 다가왔다.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출마설에 움찔하던 민주당은 9월부터 ‘안철수 태풍’이 불기 시작하자 거의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시민 후보’에게 서울시장 후보직마저 내주었다.

위기의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민주통합당으로 재탄생했다. ‘혁신과 통합’이 가세한 것이다. 1월15일 지도부도 새롭게 선출되었다. ‘통합’에 여론은 박수를 보냈고, 다시 한번 ‘혁신’을 기대했다. 총선이 눈앞이니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이 공천을 통해 대대적인 혁신을 해낼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박사 학위 논문의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문대성 새누리당 후보. ⓒ 뉴시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공천 과정에서 오히려 지지율을 까먹고 말았다. 당 내부에서도 “당은 국민의 기대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어쩌면 짓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기득권을 철저하게 고수했고, 국민 경선이라는 절차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인명 사고까지 일어났다는 것이다.

막말 파문으로 당 안팎에서 눈총을 받는 처지가 된 김용민 후보는 민주당에 의해 전략 공천되었다. 그 흔한 모바일 경선도 거치지 않았다. “대중 동원과 이슈 제기에 능한

<나꼼수>의 도움을 받고자 억지로 밀어붙인 공천이다”라는 비판이 내부에서 제기되었으나, 결국 강행했다. 민주당의 한 핵심 전략가는 “김후보 공천은 선거인단이 뽑은 것이 아니라 당이 밀어붙인 것이니 당이 이 문제에 대해 책임지고 향후에도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아니면 대선 정국에까지 두고두고 악재가 될 수 있다. 민심은 김후보가 아니라 민주당의 조치를 지켜보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안철수 원장은 3월27일 서울대 강연에서 “진영 논리에 기대지 않겠다”라는 말을 했다. ‘진영’이 아니라 ‘진영 논리’라고 지칭한 것에 적잖은 함의가 있다는 평이다. 앞서 언급한 민주당의 전략가는 총선을 목전에 두고 고민에 빠진 민주당을 향해 “누구의 편이 되거나 진영에 가담하지 않을 수는 없다. 무소속도 진영이다. 따라서 그의 말은, 내 편이라고 해서 사실 관계나 가치 판단을 그르게 할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민주당은 진영 논리로 이 문제를 덮고 가면 안 된다. 사실 김후보 문제는 지엽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의 향후 리더십이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공천 파문이 좀체 가라앉을 조짐을 보이지 않으면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총선이 지난 후에도 한동안은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힘들 전망이다.


표절 논란에 발목 잡힌 ‘문도리코’, 총선 후에도 가시방석

태권도 선수 문대성은 스포츠 영웅이었다. 최소한 총선 전까지는 그랬다. 이번 4·11 총선에서 부산 사하 갑에 출마하면서 ‘후보’라는 명칭을 달게 된 뒤에도 그는 여전히 유명세를 타고 있기는 하다. 단, 구설이라는 불명예로 이름을 올렸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한 번 들으면 쉽게 까먹지 않을 ‘문도리코’라는 인상적인 별명까지 얻었다. ‘문도리코’는 문대성+신도리코(복사기 제조업체)의 합성어이다.

논문 표절 시비 때문이다. 35세의 정치 신인이자 대학 교수인 그는 박사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여 있다. 지난 4월5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문후보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민교협은 “문후보가 2007년 8월 국민대에서 받은 박사 학위 논문은 같은 해 2월 김 아무개씨가 명지대에서 받은 박사 학위 논문을 상당 부분 표절했다. 학위 논문 표절을 인정하고 총선 후보와 교수직에서 즉각 사퇴하라”라고 요구했다. 문후보의 논문에서 4백행 이상의 문장이 동일하거나 비슷하며 심지어는 5곳의 오·탈자까지 일치했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학술 논문 표절 기준에 따르면 인용에 대한 아무런 표시 없이 6개의 단어가 연속으로 나열되면 표절로 판정하고 있다.

문후보는 일단 버티고 있다. 정의화 새누리당 부산시당 선거대책위원장 역시 “후보 사퇴까지 가야 되는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하며 힘을 실어주었다. 반면 지역 사회에서 문후보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동아대 관계자는 “먼저 국민대에서 실시되는 논문 표절 조사 결과가 나와야 한다”라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지만, 동아대를 출입하는 부산 지역의 한 기자는 “교내에 ‘괜히 출마해서 곤란하게 만들었다’라는 비판적 분위기가 지배적이다”라고 전했다. 부산 지역 새누리당 후보 캠프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표절 문제가 전국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다른 후보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탓이다. 사하 갑과 인접한 새누리당 캠프 관계자는 “유권자들이 문후보의 표절에 관해 이야기하면 우리가 대신 ‘죄송하다’고 말하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김용민 민주당 후보와 마찬가지로 문대성 후보 역시 공천 실수에 해당된다. 후보직을 사퇴해야 할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부산시당의 한 관계자는 “전국적 프레임에서는 문후보의 사퇴 논란이 주요 이슈가 될지 몰라도 지역에서는 크게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선까지 고려하면 이런 버티기가 새누리당의 오만으로 비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우려했다.

이런 분위기에도 문후보는 4월6일 현재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문후보가 당선된다면? 설혹 당선되더라도 국회의원직을 제대로 수행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국민대의 표절 심사 결과, 그에 따른 동아대 인사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가슴 졸이며 기다려야 한다. 결과에 따라서는 국회의원직뿐만 아니라 IOC 선수위원직까지 내놓아야 하는 국제적 사건으로 번질 수도 있으리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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