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대사를 바꾼 언론 거물의 발자취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2.04.16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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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진보 언론의 영웅’이라 불리는 이지 스톤 평전

모든 정부는거짓말을 한다 마이라 맥피어슨 지음 문학동네 펴냄 888쪽│3만6천원
‘1953년 11월6일 워싱턴 D.C. 표적 거주지 인근에서 오후 7시50분 감시 시작.’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미국의 한 재야 언론인을 사찰한 내용을 그대로 기록한 수천 페이지 분량의 파일 가운데 한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수천건의 다른 문건과 마찬가지로 이 보고서도 미국 시민을 연좌제까지 적용해 밤낮으로 따라다니며 뒷조사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거의 40년 동안 FBI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이 언론인을 추적했다. 심지어 그가 내버린 쓰레기까지 뒤졌다. ‘쓰레기 줍기’라는 제목이 붙은 사찰 보고서를 보면 당시 미국 정부가 시민권을 얼마나 침해했는지 그야말로 역겨워진다. 그렇게 주운 쓰레기 쪼가리에는 발신인이나 각종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 언론인은 20세기 미국의 진보 저널리스트로 활약했던 I. F. 스톤이다. 이지 스톤이라고도 불렸던 그의 삶을 기록한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는 권언유착의 유혹을 뿌리친 언론인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새삼 깨우치게 한다. 기자 출신 작가 마이라 맥피어슨이 15년간의 자료 조사와 연구, 각종 인터뷰를 토대로 쓴 이 평전은 전설적인 언론인인 스톤의 파란만장한 삶과 더불어 그가 언론인으로 활동한 20세기 격동의 현대사를 비판적으로 담아냈다. 또한 스톤이 저널리즘에 미친 깊은 영향을 찬찬히 짚으면서 언론이 우리 사회와 문화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돌아보았다. 저자가 입수한 FBI 사찰 파일과 옛 소련 기밀 문서 같은 자료도 흥미롭다.

당시 기자들은 정치판에서 취재원을 잡기 위해 공정성을 팔아먹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스톤은 정부측의 감언이설과 협박에 초연했고, 열정적으로 진실을 추적하면서 거침없이 발언했다. 그는 업계에서 왕따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1인 독립 주간 신문 <I. F. 스톤 위클리>를 통해 다른 기자들이 정부의 대변인 노릇을 할 때 냉전 정책에 반대했고, 대다수 언론이 침묵할 때 조지프매카시와 싸웠으며, 다른 언론인들이 정부 발표에 속아넘어갈 때 베트남 전쟁참전의 빌미가 된 통킹 만 사건은 날조라고 비판했다. 이지 스톤의 활약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이 통킹 만 사건 특종 보도이다. 1964년 8월 미국 정부는 베트남 통킹 만에서 미국 군함이 북베트남군의 어뢰정 공격에 침몰했다고 발표하면서 베트남전 확전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당시 대다수 언론은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 발표하는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톤은 의문점을 조목조목 제기하고 정부 발표가 날조되었다고 주장했다. 7년 뒤인 1971년 국방부 기밀 문서가 언론에 폭로됨으로써 통킹 만 사건은 거짓이었음이 공식 확인되었다.

“워싱턴에서는 정조대를 차야 언론으로서의 처녀성을 지킬 수 있다. 국무장관이 당신을 오찬에 초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물어보는 수준이 되면 당신은 이미 끝장난 것이다.” 이지 스톤이 미국 정부의 미디어 조작을 비판하면서 기고 했던 칼럼에서 한 말이다.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왜 위험천만하고 장래도 불투명한 ‘1인 미디어’를 만들었을까?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렇다. “억압받는 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려고, 직접 본 그대로의 진실을 쓰려고, 무능력에 따른 한계를 빼놓고는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으려고, 내 욕망 이외의 그 어떤 주인도 따르지 않을 자유를 누리려고, 진정한 언론인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나름대로의 이상을 실천해보려고,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고…. 이것 말고 뭘 더 바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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