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에 팝송만 넘쳐 흐를라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2.04.1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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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음저협의 음악 저작권료 징수 규정 개정안 승인…상영 단계에서도 추가 징수할 수 있게 해

영화 에 사용된 노래 이 수록된 전람회 1집.

“국내 음악 안 쓰면 되잖아.” 지난 3월15일 한  술자리에서 유명 감독이 불콰한 얼굴로 던진 말이다. 이날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의 음악 저작권료 징수 규정 개정안을 승인한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었다.

지난 4월3일 오후에는 격앙된 표정의 영화인이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문화부를 찾았다. 음악 저작권료 징수 규정 개정안을 승인한 것을 항의하는 방문이었다. 이 자리에는 차승재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과 심재명 명필름 대표 등 영화계 주요 인사가 함께했다. “문화부가 음저협의 편을 들었다”라는 노골적인 비판이 흘러나왔다.  “영세한 영화 산업이 이러다 다 무너진다”라는 한숨도 터져나왔다. 도대체 한국 영화와 음악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음저협 “극장 상영에 따른 이익도 나눠라”

사태는 2010년 12월 시작되었다. 음저협이 ‘음악의 복제권과 공연권을 분리해 징수하겠다’는 입장이 담긴 공문을 영화진흥위원회에 보낸 것이다. 음저협은 국내 유일의 음악 저작권 신탁 관리 단체로, 음악인의 저작권 보호와 저작권료 징수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복제권은 영화를 만들 때 돈을 받게 되는 권리이고, 공연권은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할 때 따로 징수하는 권리이다. 책이 많이 팔리면 인세 계약을 한 작가도 덩달아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와 같은 논리가 공연권에 적용된다.

영화계는 그동안 영화 제작 단계에서만 음악 저작권 소유자와 계약을 한 뒤 상영 과정까지의 영화음악과 관련한 모든 이용 권한을 넘겨받았다. 이른바 ‘통계약’으로 영화에 음악을 사용해왔던 것이다. 음저협은 이런 영화계 관행이 잘못되었다며 복제권과 공연권의 분리를 요구하고 있다. 음저협이야 ‘정당한 권리 찾기’라고 주장하지만 충무로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상황인 셈이다.

음저협은 당초 공연권에 해당하는 저작권료로 극장 매출의 1%를 요구했다. 국내 연간 영화 시장 규모가 1조2천억원가량이고, 한국 영화 점유율이 50% 정도이니 60억원가량이 공연권 명목으로 해마다 새롭게 걷히는 셈이다. 국내 중급 영화 한 편의 제작비가 보통 30억원이니 충무로로서는 만만치 않은 출혈인 셈이다.

양쪽의 협상은 진통이 계속되며 소송전까지 벌어지는 가운데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러자 지난해 말 문화부가 중재안을 제시했다. 문화부 징수 개정안을 살펴보면 당초 음저협의 요구안보다 많이 누그러졌다. 문제는 영화계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근본적인 주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충무로의 불만은 매출을 기준으로 극장 상영에 따른 저작권료를 징수하겠다는 항목에 쏠려 있다.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해 투자배급사나 제작사가 수익을 남길 수 없는 상황에서 음악인만 주머니를 채우는 왜곡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출이 아닌 수익을 기준으로 해야 영화인과 음악인 모두 흑자 상황에서 서로 돈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 영화계의 주장이다.

음저협과 협상을 진행했던 영화제작가협회의 한 관계자는 “영화 산업이 잘 돌아가야 음저협도 장기적으로 많은 저작권료를 기대할 수 있다. 1년 동안의 영화계 전체 수익을 기반으로 영화계의 영세한 상황을 감안한 공연 저작권료 징수가 가장 합리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영화계, 국내 음악 보이콧할 태세…법정 다툼 가능성도

영화 에서 출연 배우가 1980년대 유행가를 부르고 있다.
불만은 음저협에도 쌓여 있다. 음저협은 문화부가 음저협의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징수 개정안을 승인한 점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소송까지 불사하며 2010년부터 문제 제기를 했는데 문화부가 승인한 개정안대로라면 눈에 띄는 실익이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부가 공연권 납부 주체를 영화제작자로 명시한 점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영세한 제작자에게 불필요한 오해만 불러일으켜 음저협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는 것이다. 음저협은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극장 사업주를 공연권 징수 대상으로 상정해왔다.

음저협은 문화부의 개정안에 개의치 않고 ‘법대로’ 하겠다는 방침이다. 공연권 징수를 법원으로 가져가면 충분히 승산이 있고, 문화부 개정안이나 영화계 제안보다 더 많은 돈을 극장에서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음저협은 노래방 손님이 노래 한 곡을 부를 때마다 저작권료를 받게 하는 판결을 1995년 대법원에서 이끌어낸 적이 있다. 음저협의 한 관계자는 “영화의 제작과 상영은 노래방과 아주 흡사한 구조이다. 법정에서 이길 확률이 높고 소급 적용도 가능하다”라고 주장했다. 영화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충무로의 주장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는 저작권 보호가 더 중요하다”라고 맞서고 있다.

음저협의 공세에 충무로는 여차하면 국내 음악 보이콧으로 맞설 태세이다. 충무로의 한 중견 감독은 “넉넉지 않은 살림에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면 어쩔 수 없이 국내 음악을 제외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문화부는 지난 4월4일 보도자료를 내고 4월 안에 영화음악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그러나 충무로와 음저협 사이에 파인 골을 메우기에는 너무나 깊어 보인다. 어쩌면 조만간 한국 관객은 한국 영화에서 가요를 들을 수 없는 상황을 맞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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