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받을 때 떠나려면 10년차에 짐 싸라?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2.04.1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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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의 정년 / 35세를 은퇴 기준 삼아 “동체 시력과 배트 스피드 현저히 떨어져”

지난 4월5일 2012시즌을 앞두고 전격 은퇴를 선언한 KIA 이종범 선수가 은퇴 기자회견에서 눈물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바람이 멈추었다. 프로야구 최고 스타였던 KIA 타이거즈 이종범(42)이 은퇴를 선언했다. 4월5일 이종범은 기자회견에서 “20년간의 현역 생활을 오늘로서 마감한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팬들은 “몇 년 더 현역으로 뛸 수 있었는데, 구단이 강제로 슈퍼스타의 옷을 벗겼다”라며 분개하고 있다. 하지만 야구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이종범의 은퇴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한 생리학자는 “이미 이종범은 35세부터 내림세를 탔다. 야구 선수의 임계점인 35세의 벽을 이종범마저 넘지 못했다”라며 아쉬워했다.

SK 이만수 감독은 현역 시절 ‘헐크’로 불렸다. 그만큼 힘이 좋았다. 이감독과 삼성에서 함께 뛰었던 넥센 김시진 감독은 “얼마나 힘이 좋으면 빗맞은 타구도 담장을 넘어가기 일쑤였다”라고 회상했다. 이감독은 30세가 넘어서도 괴력을 발휘했다. 1980년대만 해도 30세가 넘으면 ‘노장’ 소리를 듣고, 은퇴를 고민하던 때라 이감독의 홈런 행진은 생경한 장면이었다. 이감독은 34세이던 1992년에도 타율 2할8푼9리, 22홈런, 70타점을 기록했다. 당시 이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내년에도 20홈런 이상을 치겠다”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듬해 그의 성적은 날개가 부러진 매처럼 수직 낙하했다. 타율 2할7리, 5홈런, 20타점은 누가 보아도 이만수의 성적이 아니었다. 이감독은 “35세가 넘으면서 기량이 저하된 것이 사실이다”라고 털어놓았다.

넥센 정민태 코치는 34세이던 2003년 17승2패, 평균 자책 3.31을 기록하며 다승왕과 승률왕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야구계 인사들은 정코치에게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다. 20대 투수보다 훨씬 구속이 빠르고 공끝이 좋다”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정코치도 35세가 되자 기량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2004년 7승14패 평균 자책 5.00을 기록하며 전해와 정반대의 성적을 냈다. 정코치는 “그해 어깨 부상을 당하기도 했지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갑자기 힘들어졌다”라고 밝혔다.

이종범도 예외는 아니었다. 34세이던 2005년 이종범은 타율 3할1푼2리, 28도루로 ‘역시 바람의 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6년에는 타율 2할4푼2리, 1홈런, 10도루를 기록하며 ‘예전 같지 않다’는 우려를 낳았다. 특히나 10도루를 성공하는 동안 도루 실패가 일곱 개나 되며 주력이 현저하게 떨어졌음을 알렸다. 이해를 기점으로 이종범의 성적과 존재감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연식론’ ‘주기론’에 ‘편견론’까지 가세

롯데 자이언츠 홍성흔 ⓒ 연합뉴스
야구계에서는 ‘35세가 은퇴 기준’이라는 말이 있다. 이만수, 정민태, 이종범을 비롯해 많은 선수가 35세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35세가 야구 선수의 임계점으로 통하는 것일까.

KBS 이용철 해설위원은 “대개 선수에게 35세는 프로야구 경력 10년차에 해당하는 나이이다”라고 말했다.

“대졸 선수는 23세에 프로에 입문한다. 이때 2년간의 공백이 있다. 군대이다. 군 복무 기간 2년을 빼면 35살까지 ‘딱’ 10년을 야구 선수로 뛰는 셈이다. 1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라운드에서 뛰다 보면 몸도 상하고, 운동 능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구단의 트레이너는 ‘주기론’을 들고 나왔다. “인간의 몸에는 주기가 있다. 5년마다 몸 상태가 바뀐다. 20세는 체력적으로 최고조기이고, 25세에는 모든 신체 구조가 절정의 상태이다. 시력이 가장 좋고, 피로 해소도 가장 빠를 때이다. 30세가 넘으면서 몸은 조금씩 퇴화하나 정신적 집중도는 최상의 상태이다. 그런데 35세에는 동체 시력과 배트 스피드가 현저히 떨어진다. 누적된 피로와 몸 상태 저하로 부상 확률도 높고, ‘여기서 더 떨어지면 안 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집중도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용철 위원의 ‘연식론’과 모 구단 트레이너의 ‘주기론’은 야구 관계자 대다수가 공감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편견론’을 더할 필요가 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할 때 6개 구단의 대표 선수는 20대 중·후반의 선수였다. 이 선수들은 30세가 지날 무렵 구단으로부터 은퇴 압력을 받았다. 당시 프로야구 프런트는 실업야구의 관행을 기준 삼아 ‘30세가 넘으면 은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선수도 그러한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1990년대 들어 미국 야구 이론이 유입되고, 전문 트레이너가 등장해 ‘몸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은퇴 기준은 35세로 5년 늘어났다. 35세가 은퇴 기준으로 된 것도 객관적 논거나 이론 없이 막연히 ‘35세가 되면 선수 생활도 끝이다’라는 낭설이 정설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미국·일본 야구에서 은퇴 시점이 없는 이유

한화 이글스 박찬호 ⓒ 연합뉴스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은퇴 시점이 없다. 성적이 좋으면 계속 현역으로 뛰고, 그 반대이면 유니폼을 벗는 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한국보다 은퇴 시점이 늦은 것은 사실이다. 이유는 뭘까. 선수들의 철저한 몸 관리와 구단의 보호 때문이다. 한화 박찬호는 후배 선수들에게 “미국 선수 가운데 아침을 거르는 베테랑은 아무도 없다”라고 조언했다. 그만큼 베테랑일수록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는 뜻이었다.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의 가네모토 도모아키는 ‘철인(鐵人)’으로 불린다. 1천4백92경기 동안 한 번도 교체되지 않고 풀타임 출장해 세계 기록을 세웠다. 42세의 나이에도 올 시즌 주전 선수로 뛸 예정이다. 가네모토의 탁월한 몸 관리가 롱런의 바탕이 되었지만, 소속팀 한신의 세심한 선수 보호도 빼놓을 수 없다. 한신은 가네모토의 몸 관리를 위해 10억원을 호가하는 치료용 욕조를 들여왔을 뿐만 아니라 전담 트레이너까지 두었다.

지난해 한신 관계자가 했던 말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몸이 퇴화하게 마련이다. 이때 구단이 해야 할 일은 베테랑의 퇴화를 최대한 늦추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 없이 ‘나이가 들었으니 은퇴하라’라고 하는 것은 구단의 직무유기이다. 그런 구단이라면 누가 그 구단에 애정을 갖고 최선을 다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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