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발 연금 공포, 한국의 현 주소는?
  • 전영수│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 ()
  • 승인 2012.04.1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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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쌓아도 힘들다니 ‘1층’에 머문 자 눈떠라

일본 열도에 연금 불안이 화두로 떠올랐다. 연금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에 생채기를 낸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 운용대행사(AIJ투자고문)가 위탁 연금 2천억 엔 중 대다수를 날려버린 사건이다. 뜯어보니 사기에 가까운 도덕 불감증이 원인이었다. 낙하산 인사와의 뇌물·접대가 얽히면서 자랑했던 고수익이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 피해자는 노후 자금을 맡겼던 기업 연금 가입자들이다. 가입·수급자  88만명이 피해를 보았는데 중소기업 일부(84개사)만 해당되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제는 후폭풍이다. 불똥이 전체 연금으로 튀면서 염려가 구체화되고 있다. “리스크는 알았지만 이만큼 마이너스인지 몰랐다”라는 표현처럼 손실 사례도 봇물처럼 터졌다. 이제 일본에서 ‘연금=안전’이라는 등식은 유명무실해졌다.   

4층 구조로 잘 짜여진 일본의 연금 시스템

일본은 아시아에서는 비교할 잣대가 없을 정도로 연금 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는 나라이다. 노후 생활 만족도가 비교적 높은 근거도 바로 연금에 있다. 일본의 연금 시스템은 4층 구조이다. 원래는 1층(국민연금)과 2층(후생·공제 연금)의 공적 연금을 토대로 3층(기업연금)에서 끝났지만 최근 1~3층조차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4층(개인연금)이 새롭게 정착되었다. 1층과 2층은 강제 가입·정부 통제의 공적 연금이다. 국민연금은 월 1만5천20엔(4월11일 기준 1엔은 1천4백30원)을 내고 65세 때 6만5천7백41엔을 받는다(2011년 기준). 누구든 균일 부담, 균일 급여가 기본 원칙이다. 학생·자영업자까지 포함된다. 샐러리맨, 공무원이 받는 2층은 연금의 허리답게 공적 연금의 기둥이다. 각각 후생 연금과 공제연금으로 불린다. 공무원(공제 연금)의 경우 직역 가산(2만 엔)이 플러스되어 민간 월급쟁이보다 급부 금액이 많았는데 이를 시정하고자 2005년 후생·공제 연금이 통합되었다. 균등 급부와 재정 압박의 노림수이다. 이렇듯 1~2층을 합하면(모델 연금) 월 23만3천 엔을 받는다. 근속 남편(40년)과 전업주부가 모델로서 꽤 우량한 소득 대체 비율(현역 시절 대비)을 자랑한다. 여기까지가 한국의 국민연금(1층)에 해당되는 공적 연금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3층과 4층이다. 각각 기업연금과 개인연금으로 분류된다. 공적 연금(1~2층)을 보완하는 형태로 이때부터 ‘여유로운 노후 생활’의 준비 단계이다. 1~2층만으로 여유를 부리기에는 일본도 만만찮은 까닭에서다. 평균 생활비로 쓰기에 빠듯하거나 약간의 적자가 불가피해서다. 3층은 퇴직금과 개인적립금을 운용·배분한다. 기업(퇴직)연금이다. 과거 퇴직금으로 일괄 수령하던 것을 노후 보장 차원에서 연금 형태로 전환한 개념이다. 1962년 출발했으니 역사가 굉장히 길다. 한국은 고작 2005년에야 시작했다.

3층은 회사 규모, 재직 기간 등에 따라 달라진다. 대기업·정규직의 경우 평균 월 15만 엔대 수령이 가능하다. 1~2층(23만 엔)에 3층(15만 엔)까지 더하면 월 38만 엔이다. 유유자적하며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근거이다. 물론 실제는 이보다 적다. 만액 조건(40년)의 대기업·정규직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다. 다만 대략적으로 1~3층까지 월 30만 엔은 가능하다는 분석이 많다. 3층까지 누적수혜자는 1천4백만명이다. 층별 가입 인원은 1층 6천8백만명, 2층 3천만명, 3층 1천4백만명으로 줄어든다.

1~3층의 연금 시스템은 100세 시대에 웃음을 안겨줄 둘도 없는 사회 안전망이다. 풍족하고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가능케 해주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는 허점과 함정이 많다. 탄탄하다고 하지만 연금 그물에서 빠져버리는 경우가 급증해서다. 요컨대 ‘연금 배신’이다. 모델 연금(23만 엔)조차 필요 생활비(27만 엔)에 못 미치는 연금 부족 사태가 그것을 반증한다(총무성 발표). 4만 엔 적자이다. 3층이 없다면 여유 생활은 그림의 떡이다. 게다가 모델 연금은 수혜 인원이 제한된다. 대부분은 턱없이 부족한 연금 소득을 받는다. 공적 연금의 사각지대이다. 1층 수급자(9백만) 중 절반이 그렇다. 미수급자만 1백20만명이다. 미가입 및 25년 미충족인 경우이다. 40년을 못 채운 저연금자도 많다. 유족 연금의 까다로운 수급 조건을 보면 고령 여성의 불안감도 크다. 비정규직까지 있다. 주당 30시간 이하이면 후생 연금 가입에서 제외된다. 게다가 현역 세대 중 미납자(3백30만)가 많아 무·저연금 사례가 느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정부의 관리 미흡으로 연금 기록이 상실되는 사례까지 속출한다. 보험료를 냈는데도 못 받을 개연성이 커진다. 납부자 확인이 불가한 것만 5천만건 이상이다. 피해자는 주로 전직 경험자, 결혼 여성, 학생 납부자 등이다. 복잡해진 연금번호로 일괄 관리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역 세대가 연금을 불신하는 이유이다.

더 큰 문제는 지속 가능성의 불안이다. 부모 세대의 연금 급부를 지탱해주는 자녀 세대의 비용 부담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적 박탈감에 기인한 노소 갈등의 대표 사례이다. 원인은 수급이 역전된 데 있다. 보험료와 수급액의 상황 역전이다. 납부 대상자(청년 세대)는 줄어드는데 연금 수령자(고령 세대)는 늘어나니 재원이 부족한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대로라면 고부담·저급여로 가뜩이나 박탈감이 심각한 청년 세대의 미래 수급은 불투명하거나 불가능해진다. 

공적 연금 벌충할 사적 연금의 필요성 커져

그래서 나온 것이 4층(개인연금)이다. 50년 역사를 지닌 공적  연금을 벌충할 사적 연금의 필요성이 커졌다. 고령화가 빨랐던 탓에 개인연금도 한국보다 역사가 길다. 1980년대부터 그 필요성이 반복해서 강조되었다. 덕분에 40대의 경우 노후 자금 준비 방법으로 개인연금을 꼽는 이가 절반을 넘는다. 종류도 많고 내용도 다양하다. 일본의 개인연금 종류는 크게 두 가지이다. 가입 제한이 있는 국민연금기금(자영업자와 제1호 피보험자만 가입 대상)과 기업연금(샐러리맨·공무원) 및 무제한의 개인연금이 그렇다. 후자는 생명보험사가 파는 개인연금보험이 대표적이다. 보험 파워가 큰 일본의 경우 개인연금의 주종도 보험권이다. 생보 기능 추가 등 옵션 선택과 자유 설계가 가능한 상품이 많다. 개인연금은 장수 증가와 공적 연금 재정 불안이 부각되면서 급부상했다. 2002년 은행 창구에서 개인연금을 판매하게 된 것도 확산된 계기이다. 인기 상품은 변액형·일시불 보험으로 신규 계약의 60%를 차지한다. 가입 추세는 연령대와 비례한다. 퇴직금과 노후 자금을 사용해 거치식 개인연금보험에 가입하려는 수요의 증가이다. 1985년부터 계속된 공적 연금의 액수 삭감도 개인연금 시장의 파이를 키웠다. 최근에는 청년 가입자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공적 연금이 흔들리고 기업연금조차 운용 악화로 미래를 기약하기가 힘들어져서다. 4층까지 준비될 때 비로소 종합·포괄적인 연금 생활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인식에서다. 4층 가입 건수는 1천8백만건에 달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갈 길이 멀다. 연금 시스템이 불안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도 낮다. 국민연금이 유일한 연금 소득이다. 1층뿐이라는 얘기이다. 한국인 중 3분의 1은 국민연금에만 가입해 있다. 그나마 구멍이 수두룩하다. 자영업자는 둘째 치고 비정규직 등 대기업 정규직이 아니면 연금 소득의 노후 의존도(소득 대체율)가 극히 낮다. 그래서 최근 등장한 것이 한국적 3층 연금 구조 캠페인이다. 이는 국민연금(1층), 퇴직연금(2층), 개인연금(3층)을 말한다. 은퇴 이후 자금줄이 될 3층의 소득 보장 장치이다. 3층까지 준비하지 못할 경우 노후 난민으로 떨어질 개연성이 극히 크다는 것이 통설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1층은 금액이 적고 2층은 초보 단계이며 3층은 가입 여유가 없다. 이론적으로는 3층까지 중복해 안전망을 갖추는 것이 최선이지만 현실은 ‘불안한 1층’에만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기는 나빠지고 비정규직은 늘어나면서 3층의 누적 수혜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최근의 변액보험 수익률 논쟁에서 목격되듯 민심 이반도 상당한 장벽이다. 1~4층을 갖춘 일본조차 연금 한계와 노후 불안이 불거지는 마당에 3층마저도 구축되지 않은 한국의 앞날은 한층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의 연금 제도에도 위기 징후 찾아와

먼저 1층부터 보자. 국민연금은 요즘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국민연금의 8대 비밀’이라는 문구가 인터넷을 달궜던 2000년대 중반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기타 자산 수익률이 떨어지고 안전성이 부각되면서 국민연금은 인기 자산으로까지 떠올랐다. 임의 가입이 증가하는 추세가 그 증거이다. 금액은 적어도 물가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를 중심으로 임의 가입자가 늘어나서다(2009년 3만6천3백68명→2011년 17만1천1백34만명). 다만 결론적으로 국민연금의 태생 한계는 여전하다. 재정 파탄 문제이다. 더 내고 덜 받는다는 기본 한계가 그것이다. <비즈니스 위크>가 “한국의 연금 제도는 아시아에서 가장 취약한데도 와해될 여지에 대해서는 모두 입을 다물었다. 빨리 손보지 않으면 재앙이 다가올 수 있다”라는 진단(2005년)은 현재 진행형이다. 기금 고갈은 갈수록 심화될 전망이다. 반대로 부담액은 증가세이다. 지금은 2017년까지 12.9% 인상할 방침이지만 기금 고갈 우려가 확대되면 더 올릴 수밖에 없다. 반면 연금 지급률은 2029년까지 50%를 유지한 후 40%로 낮출 계획이다. 특히 빈곤층의 경우 소득 증가보다 세금·연금 증가 속도가 더 빨라 체감 부담이 크다. 월급쟁이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국민연금은 최소한의 연금 장치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역으로 노후 준비는 한층 치밀해질 필요가 있다.

대안은 2층과 3층이다. 2층(퇴직연금)은 국민연금의 보릿고개를 넘기기에 좋다. 30대라면 국민연금 수급 연령이 65세이다. 그런데 퇴직연금은 55세부터 받을 수 있다. ‘마의 10년’에 대비할 수 있다. 65세 국민연금 수급 연령은 추후 더 늦춰질 개연성이 충분하다. 때문에 2층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이고 시급하게 가입을 확산하는 것이 필수이다. 시간이 없다는 점에서 3층은 2층과의 동시 진행 과제이다. 3층은 연금 구조의 마침표. 2층의 급여 생활자가 아니라면 개인연금은 꼭 필요하다. 기대 효과는 좋다. 3층 구조라면 예상 수급액이 1백52만6천원대이다(피델리티). 1~2층보다 꽤 짭짤하다.

개인연금은 크게 세 가지이다. 판매 기관별로 연금저축신탁(은행), 연금저축펀드(증권), 연금저축보험(보험) 등이 있다. 내용은 비슷하다. 은행은 사업비가 감안되는 보험보다 수익률이 좋고 최저 이율을 보장해줘 안정성이 크다. 연간 4백만원 한도에서 납입액 전체를 소득공제해준다. 다만 10년 이상이 가입 조건이다. 보험은 종신·일시 선택 등 수령 방법이 다양한 것이 장점이다. 변액연금은 운용 성과에 따라 보험금이 오락가락하는 형태이다. 손실될 가능성이 있지만 확정 금리보다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 주의할 것은 리스크이다. 50대 이후라면 즉시연금이 고려 대상이다. 개념이 조금 다르지만 주택연금(역모기지)도 개인연금이다. 3층에 대한 공통적인 추천사는 조기 가입이다. 일찍 가입해 늦게 받으면 복리 효과를 누려서다.

한국도 엄연히 100세 시대에 접어들었다. 오히려 늙어가는 속도와 범위는 일본보다 더 심각하다. 준비 상태가 열악한 것은 불문가지다. 4층 연금 구조를 갖춘 일본조차 ‘노후 불안’은 중대 문제로 부각된 지 오래다. 사실상 1층만이 기능하는 한국으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이슈이다. 그래서 일본의 연금 뉴스는 한국에게 가십거리일 뿐이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없다고 바다 건너에서 웃을 일이 아니라 없기에 더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현명하다. 일본을 웃도는 위기 징후는 지금 성큼성큼 다가선다. 고무적인 것은 2층과 3층을 둘러싼 인식 개선이다. 서둘러서 미약하게나마 3층 연금 시스템이 안착할 때 비로소 일본 노인처럼 스포츠카를 타고 골프장도 다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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