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리스크’ 한 방에 쫓겨나는 기업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4.17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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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에서 상장 폐지되는 업체들의 실상 추적 / 경영진의 방만 경영·횡령·배임 등이 원인 제공

ⓒ 일러스트 권오환

기업도 사람처럼 병에 걸린다.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병이 심각하면 기업은 파산한다. 개인 기업은 혼자 사라지면 그만이지만 주식시장에 진출한 회사(상장 기업)는 사정이 다르다. 기업을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준다. 이 때문에 주식시장에는 감시 기관이 있다.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은 주식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을 심사하고, 기존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거래하는 기업을 감시한다. 기업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병원과 같아서 기업이 비실거리면 주식 거래를 중지하고 정밀 검사를 한다. 회복할 수 없거나, 회복하더라도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중병에 걸린 기업은 주식시장에서 퇴출(상장 폐지)한다.

시장에서 쫓겨날 정도의 중병은 대체로 기업 경영진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경영인이 의도적으로 투자금을 빼돌리거나 개인 돈인 양 유용하는 것이다. 반대로, 경영을 잘했음에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 인해 부실해지는 기업도 있다. 한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쫓겨났다고 해서 당장 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장 폐지는 부실 기업이라는 주홍글씨나 다름없다. 흔히 휴지 조각이라고 표현하듯이 회사의 주식 가치는 사라진다. 회사의 거래가 끊어지고 투자도 생기지 않는다.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파산하고 만다.

전기자동차 전문 업체인 CT&T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저속 전기차(시속 60km 미만)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며 시가총액 3천5백억원을 넘긴 중소기업이었다. 그러나 현재 상장 폐지 직전에 몰려 있다. 벤처기업 열풍이 불던 1997년 설립한 이 회사는 1999년 벤처기업으로 선정되었다. 할인 쿠폰, 인터넷 광고 사업으로 시작했지만 2005년부터 골프장에서 쓰는 전기 카트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일본산 일색이던 골프 카트를 국산화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면서 연간 수천 대씩 팔았다. 필리핀과 중국 등지로 수출 길도 열었다. 이 노하우를 기반으로 2007년부터는 전기차를 생산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1만대 생산 규모의 공장을 합작으로 건립하는 사업도 추진할 정도로 번창했다. 당시 녹색 정책을 펴던 정부의 관심도 받았다.

청와대도 홍보했던 업체, 지금은 파산 직전

전기자동차는 녹색 정책을 펴온 정부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 ⓒ 연합뉴스
청와대는 2009년 7월 정책 홍보 사례로 삼기 위해 이 회사의 전기차 세 대를 무상 임대했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전기차에 탑승해 언론의 조명을 받았고, CT&T는 이를 홍보했다. 미국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 전기차를 지원했고, 2010년에는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가한 각국 영부인이 탑승하는 공식 전기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여세를 몰아 이존(e-zone)이라는 전기차를 일반인을 대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신문에 전면 광고까지 내면서 판매에 열을 올렸다. 2011년에는 전기 버스까지 생산할 계획도 세웠다. 2010년 8월 이 회사는 한 코스닥 업체를 인수하면서 주식시장에 진출했다. 소액 투자자들이 몰렸고, 회사 지분의 80%가 개미 투자자들의 몫이었다. 당시 투자했던 한 투자자는 “대통령 내외가 청와대 경내에서 그 회사 차를 타고 다니기에 정부가 책임지고 육성하는 회사인 줄 알았다”라고 투자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전기차는 기대만큼 팔리지 않았다. 관공서와 지자체가 시범 사업용으로 몇백 대를 사준 것이 전부였다. 외형은 커졌지만 속으로는 곪고 있었던 것이다. 2010년과 2011년 연속으로 각각 7백억원, 3백억원의 적자를 냈다. 한때 10만원을 넘긴 주가는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 11월28일 2백75원까지 곤두박질쳤고, 12월1일 3백37원을 마지막으로 주식 거래가 중단되었다.

이 회사는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했으나, 올해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회생 절차 폐지를 결정했다. 건강을 회복할 기력이 없다고 판정한 셈이다. 자본금의 50% 이상을 잠식하는 사업 손실이 발생하고, 회생의 기회마저 사라지자 한국거래소는 지난 3월24일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 CT&T는 4월2일 이의를 제기했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최근 감시 범위 제한에 의한 의견 거절, 회생 절차 폐지 결정 등 상장 폐지 사유를 회사측에 통보했다. CT&T는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라고 공시했다. 상장 폐지 대상 기업이 이의를 신청하면 한국거래소는 15일 이내에 위원회를 소집해 상장 폐지 여부를 심의하고, 심의일로부터 3일 이내에 상장 폐지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이의 신청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CT&T 관계자는 “사실상 상장 폐지가 유보되거나 취소될 가능성은 없다. 그럼에도 이의 신청을 한 이유는 소액 투자자들의 요구 때문이다. 회사가 새로운 투자자를 찾을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상장 폐지를 늦추자는 것이다. 사장은 투자자들을 찾기 위해 1년 동안 외국에 나가 있다. 그러나 투자를 받기는 불가능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외형에 치중하는 등 경영 미숙으로 사업 실패

이 회사가 상장 폐지되면서 발생한 소액 투자자들의 피해는 약 2천8백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약 1년 전 1천주(5백만원)를 샀던 한 투자자는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다. 투자자를 발굴해 다시 회사를 일으켜 재상장한다고 해도 주식 가치가 회복될 것 같지 않다. 견실한 중소기업인 줄 알고 주식을 샀었다. 정부가 이 회사를 띄웠고, 회사는 그 점을 잘 이용했다. 스스로 상장할 힘도 없는 회사가 우회 상장이라는 일종의 편법으로 주식시장에 등장해서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꼴이다”라고 말했다.

우회 상장이란, 이미 주식시장에 있는 기업을 인수해서 상장 기업이 되는 것을 말한다. 주식시장에 진출하는 정상적인 방법은 상장 심사와 공모주 청약 같은 절차를 밟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량 기업으로 판단받아야 주식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CT&T는 2010년 8월 객관적인 평가를 받지 않고 주식시장에 편승한 것이다. 이 회사는 전기차 판매 부진이라는 병에 걸린 상태였다. 방만 경영이 병을 키웠다. CT&T 관계자는 “한마디로 경영 미숙이 상장 폐지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회사가 외형에 치중했다. 골프 카트를 팔아 번 돈이 아니라 주식 투자자들의 돈을 전기차 사업에 쏟아부었다. 전기차는 팔리지 않는데, 마케팅에 많은 돈을 썼다. 매출은 일어나지 않고 영업이익은 계속 추락했다. 해외 수출도 많은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MOU(양해각서) 수준에서 그쳤다”라고 말했다.

전기차 시장을 너무 낙관적으로 본 것도 사업 실패의 원인이다. 이 회사가 만든 저속 전기차는 속력에 한계가 있어서 시속 60km 미만의 도로에서만 달릴 수 있었다.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는 물론 웬만한 일반 도로에서도 다닐 수 없는 형편이었다. 차값도 경차보다 비싼 2천만원 선이어서 일반인들은 외면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저속 전기차에 개념이 없는 환경이었다. 저속 차량도 나름으로 용도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고속으로 달리는 차만 자동차로 대접받았다. 또 자동차는 배기량을 기준으로 등록할 수 있는데, 전기차는 배기량이 없으므로 자동차로 등록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설익은 자동차 환경 때문에 전기차 사업은 확대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알맹이 없이 포장만 거창하게 하는 경영은 시장에서 의혹을 샀다. 청와대의 특혜 논란과 주가 조작설까지 돌았다. 주식시장 관계자는 “공원이나 대형 산업 시설 관리용으로 적당한 전기차를 일반용으로 판매하겠다는 계획부터가 무리였다. 정부와 CT&T가 과대 포장해서 홍보했다”라고 말했다. CT&T 관계자는 “3백30명이던 직원이 30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월급도 5개월째 밀린 상태이다. 새로운 투자를 받지 못하면 청산 절차를 밟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식시장에는 CEO 리스크라는 말이 있다. 대표이사(CEO)나 최대주주와 같이 기업의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말썽을 일으켜 회사에 직·간접적인 타격을 주는 것을 말한다. SK그룹과 하이마트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런 대형 기업들은 경영의 투명성이나 사업 안전성을 인정받아 상장 폐지 위기는 모면한다. 그러나 코스닥시장에 있는 중소기업은 한 번의 횡령·배임 건으로 회사가 송두리째 흔들리기도 한다.

기술력 갖춘 회사도 CEO 잘못 한 번에 휘청

1983년 정보 처리업체로 설립된 클라스타가 그런 사례이다. 이 회사는 1997년 병역 특례 업체, 1999년 벤처기업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바코드 판독기 특허를 출원했고, 2001년 우수 산업 디자인 상품과 한국 밀레니엄 상품으로 선정되었다. 2002년 1월 코스닥에 상장할 만큼 우량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8년에는 휴대전화 안테나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ISO 인증(국제 표준)을 받고, 특허도 낼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애플의 스마트폰 출시와 함께 국내에서도 스마트폰 열풍이 불었다. 이 회사의 제품과 기술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2008년 1백54억원이던 자산 규모는 2009년 2백51억원으로 불어났다. 자본금도 45억원에서 2백19억원으로 급증했다. 4백39억원 적자이던 당기순이익도 61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2010년에는 내장 안테나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할 정도가 되었다. 그 전까지는 미국 업체가 독점해온 기술이었다. 휴대전화 안테나는 돌출형이었지만 이 회사는 공간 절약형 내장 안테나를 개발했다. 이 안테나는 휴대전화 내부에 장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0여 명에 불과했던 생산 인력을 1백30여 명으로 늘려도 주문 물량을 댈 수 없을 만큼 사업은 커졌다. 그해 1월 60만개 수준이던 수요는 6월 5백만개를 넘을 정도였다. 지에스테크라는 업체를 인수해 인쇄 회로 기판(PCB) 시장에도 진출했다. 그러나 그해 8월 일이 터졌다. 대표이사가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되었다. 당시 클라스타는 공시를 통해 ‘대표이사 등의 횡령·배임 혐의에 관하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 접수된 사실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회사는, 사실이 아니므로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했다. 2011년 3월 이 회사는 세포 치료 재생 의학 분야로 사업 전환을 검토했다. 연구소를 설립하고 의사 출신 소장도 임명했다. 그러나 이미 회사는 기울고 있었다. 32억원까지 줄었던 부채는 2010년 1백35억원으로 급증했고, 당기순이익도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2백억원을 넘긴 자본금은 예전보다 더 낮은 40억원대로 주저앉았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5월 클라스타에 대해 ‘시가총액 40억원 미달 30일 연속’으로 관리 종목 지정 사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클라스타는 6월 조회 공시 답변에서 ‘대구지검에 전 경영진이 횡령 및 배임 혐의에 관해 피소된 것을 확인했지만, 구체적으로 확인된 사항은 없다’라며 재차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10월 이 회사의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 자본 잠식률 50% 이상으로 관리 종목 지정을 받은 후 최근 재무제표에 대한 감시인의 감사 의견 거절이 그 이유였다. 회사는 이의신청서를 제출했지만 10월26일 주식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이 회사는 현재 본사를 이전하고 전화 연락도 끊은 상태이다.

그렇다고 재무제표만 철석같이 믿어서는 안 된다. 재무 상태도 좋고 감사 의견에도 문제가 없는데, 부실 기업인 경우가 있다. 부실 기업은 몇 가지 징후를 보인다. 그 첫 번째가 경영진을 자주 바꾸는 행태이다. 금융감독원이 2008년 상장 폐지된 기업들을 분석했더니, 상장 폐지 직전 18개월 동안 대표이사를 변경한 기업이 전체의 86%를 차지했다. 최대 주주를 1회 이상 변경한 회사도 69%로 나타났다. 한 회사는 2009년 한 해 동안 다섯 번이나 최대 주주가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영진이 책임 있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수행하기가 어렵다.

주식시장에서 퇴출당한 기업의 55%는 횡령·배임 사건이 발생한 기업이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하는 자체만으로도 주식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 혐의 금액이 자본금의 5% 이상(대기업은 2.5%)이면 평가 대상이다. 이런 상항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주식 매매가 정지한다.

한 차량용 반도체 제조업체는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해 상장 폐지 실질 심사 대상이 되었다. 각자 대표 중 한 명이 개인 빚을 갚으려고 문방구에서 파는 약속어음 용지에 법인 인감을 찍어 90억원어치를 발생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공동 대표가 아닌 각자 대표이기 때문이다. 각자 대표는 대표이사 2명 이상이 합의를 통해 의사 결정을 하는 공동대표와 달리, 대표이사 2명 이상이 자기 분야에 대한 의사 결정권을 전적으로 갖고 있다. 부문별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회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각자 권한을 가진 만큼 대표이사 간에 견제가 이루어지지 않아 권한이 남용될 소지가 있다. 문제 기업 10곳 중 5곳은 각자 대표 제도로 운영하다가 탈이 난 기업이다.

빈번하게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영업으로 재무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고 유상 증자 등 외부로부터 자금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또 조달한 자금을 생산적인 용도로 쓰지 않고 다른 법인의 주식을 취득하거나 횡령·배임으로 생긴 자금 공백을 충당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 상장 폐지가 확정된 한 기업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단기 차입금이 네 배 정도 급증했고, 결국 이를 갚지 못해 기업 존속 능력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 의견 거절을 받았다.

또 상호가 자주 바뀌는 기업도 주의해야 한다. 계열사 통폐합, 기업 이미지 제고, 사업 다각화 등의 이유로 기업은 상호를 변경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업의 불안정을 의미하기도 한다.1983년 제일컴퓨터상사로 출발한 클라스타는 1992년 제일컴테크로, 2005년 남경컴테크로, 2006년 가드랜드로, 2007년 뉴월코프로, 2008년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다. 2000년 중반부터는 매년 상호를 바꾼 셈이다. 이 회사는 결국 지난해 상장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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