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막을 대항마는 누구인가
  • 감명국·안성모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2.04.1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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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명의 국민 대표를 고르는 유권자들의 선택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대선 정국이다. 선거를 진두지휘하며 과반 의석 달성까지 일궈낸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대선 가도도 크게 열렸다. 그에 반해 야권 대권 주자들의 입지는 더욱 복잡해졌다. 전문가들은 민주통합당 잠룡들의 총선 성적표가 고만고만하다고 평가한다. 과연 누가 날개를 단 박근혜 위원장에게 맞설 수 있을까.

안철수(ⓒ 시사저널 유장훈), 문재인(문재인 제공), 김두관(ⓒ 시사저널 이종현), 손학규(ⓒ 시사저널 이종현), 정세균(ⓒ 시사저널 유장훈).

정치권 전체가 넋이 빠진 모습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4·11 총선 결과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소름이 돋을 만큼, 표심(票心)은 무서웠다. ‘다수의 침묵’은 결국 마지막에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당명까지 바꾼 새누리당의 쇄신 노력은 일정 부분 평가를 받은 반면, ‘MB 정권 심판론’에만 기댄 채 정작 자신들의 변화 의지는 보여주지 못했던 민주통합당은 “아직 멀었다”라는 따끔한 질책을 들어야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졌던 여론조사도, SNS 분석도, 심지어는 선거 당일 출구조사까지도 ‘침묵’이 형성한 부동층의 민심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선거 직후 정치 전문가들은 향후 정국을 예측해달라는 질문에 “말하기가 두렵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총선을 넘어 대선 정국으로 넘어가는 지금, 여야 대권 주자들은 소리 없이 묵묵히 지켜보는 민심의 위력 앞에 숨죽이고 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대선 정국이다.       

일단 여권의 판세는 한결 간결해졌다. 역시 ‘선거의 여왕’이라는 닉네임이 무색치 않았다. 이론의 여지 없이 이번 4·11 총선의 최대 수혜자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다. 그의 대권 가도도 탄탄대로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 결과가 반드시 박위원장에게 성배(聖杯)만은 아닐 것이라는 분석이 주목된다. ‘독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총선은 의석 수만 따지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 전국 정당 득표율을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박위원장은 매우 위험하다. 특히 수도권에서의 득표력에는 여전히 명확한 한계를 드러냈다. 수도권에서 지금의 지지율로는 대권을 얻기 어렵다”라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야권이다. 민주당은 당분간 총선 패배의 후유증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당이 좀 더 발 빠르게 대선 캠프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1997년 대선 때 등장했던 ‘여권 9룡’이니, 2002년 대선 때 등장했던 ‘여권 7룡’이니 하는 식의 ‘잠룡’들의 어지러운 쟁투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벌써부터 ‘야권 5룡’ 또는 ‘야권 6룡’이라는 말이 나온다.

‘야권 5룡’ ‘야권 6룡’ 용어 벌써 나돌아

사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주목받은 ‘잠룡’은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이었다. ‘적진’인 부산 사상에서 살아남는다면, 향후 민주당은 급속히 문재인 대선 후보 체제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아울러 문고문은 야권 전체의 유력 대권 주자로 입지를 굳히면서 ‘박근혜-문재인 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결과적으로 문고문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상처투성이의 영광이었다. 황인상 P&C정책개발원 대표는 “야권 내 갈등을 풀어나가는 해결사로서 정치력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후보로 각인되지는 못했다”라고 평가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새누리당의 절묘한 전략에 문고문이 말려들었다. 20대 신인 손수조 후보를 사상에 전략 공천하면서 문고문을 포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고문은 전략적 마인드의 한계를 드러냈고, PK(부산·울산·경남) 맹주로서의 입지 구축에도 실패했다”라고 밝혔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민주당으로서는 ‘문풍(文風)’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실제 선거 판세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문고문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민주당 잠룡들의 총선 성적표는 모두 고만고만하다. 하지만 문고문은 이번 총선이 자신의 ‘대세론’을 굳힐 수 있는 기회였는데,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서 다른 잠룡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이제 민주당의 대권 경쟁은 다시 ‘제로베이스’까지 갔다고 볼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실제 <시사저널>이 지난 1월17일부터 4월10일까지 가진 문재인 고문의 지원 유세를 분석한 결과, PK 지역에만 일정이 한정되었다(14쪽 그림 참조). 전체 28차례 지원 유세 가운데 부산 18회, 울산 2회, 경남 8회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부산 사하 갑과 부산진 갑, 북·강서 을에서 두 차례씩 지원 유세를 가졌고, 경남의 경우 김해 을이 여섯 차례였다. PK에서도 특정 지역에서만 유세 지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문고문은 당분간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후 “이번에 출마한 것은 우선 부산의 정치를 바꾸고 싶었고, 나아가 연말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아주 강한 절실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정권 교체에 가장 잘 기여하는 길이 될 것인지는 차분하고 신중하게 고민해 판단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등 야권은 수도권에서 선전했다. 대선이 사실상 ‘수도권 싸움’으로 펼쳐진다는 측면에서 민주당에게는 그나마 의미 있는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도권에 지지 기반을 둔 손학규 전 대표가 다시 한번 부상할 기회를 가질 것이라는 관측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손 전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수도권 지원 유세에 매달렸다.

<시사저널>은 3월28일부터 4월10일까지 손 전 대표의 지원 유세 일정도 분석했다(16쪽 그림 참조). 2주라는 짧은 기간에 많은 지역에서 지원 유세를 가졌는데, 전반적으로 수도권에 집중된 결과가 나왔다. 총 1백3회 지원 유세 중 경기 51회, 서울 21회, 인천 9회 등 수도권이 81회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 밖에 충청권 11회, 강원 5회, TK(대구·경북)와 호남 각 3회씩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경기 등 수도권에 ‘올인’하다시피 한 셈이다.

손학규·김두관의 선택은?

하지만 수도권에서의 선전을 손 전 대표 덕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자신의 현 지역구인 성남 분당 을에서 아침저녁으로 지원 유세에 나서며 상당한 공을 들였지만 새누리당에게 패한 점도 뼈아픈 대목이다. 강원에서 전패를 당한 것도 악재였다. 반면 ‘선거 책임론’에서도 한 발짝 떨어져 있다는 점은 향후 전개될 대권 경쟁에서 손 전 대표에게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윤희웅 실장은 “손 전 대표는 여전히 죽은 카드가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분당 재·보선 당선’ 수준의 위상을 찾을 만한 마땅한 계기 마련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평가했다. 손 전 대표는 선거 다음 날인 4월12일 트위터를 통해 “국민은 역시 무섭다. 겉은 뜨거워도 속은 차다. 국민의 속마음을 찾아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 시작이다”라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야권의 또 다른 잠룡 중 한 명인 김두관 경남도지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이번 총선에서 경남 지역 총선 성적표가 안 좋았기 때문에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문재인 고문의 한계가 어느 정도 드러나면서 그 대체 세력으로 향후 입지가 넓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홍형식 소장은 “김지사는 여전히 차차기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라고 평가한 반면, 신율 교수는 “문고문의 한계를 김지사가 커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지사가 대안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친노의 수장 격인 문고문이 킹메이커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지사는 이번 총선 결과와 관련해 “국민들은 새누리당을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 야당을 먼저 심판한 것이다. 민주당의 당원으로서 이같은 결과를 누구보다도 무겁게 받아들인다”라고 밝혔다.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야당 후보로서는 사실상 처음 당선되는 기염을 토한 정세균 민주당 전 대표의 행보도 주목된다. 종로는 소선거구제가 채택된 13대(1988년) 총선 이후 6차례의 총선에서 야당이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던 지역이다. 지난 1998년 보궐 선거 한 차례 승리가 유일했다. 김능구 이윈컴 대표는 “정 전 대표는 유능한 중진 정치인으로 평가받지만 대선 후보로서의 이미지를 심지 못하고 있다. 종로가 최대 승부처 중 한 곳으로 주목받은 데 반해, 정 전 대표의 메시지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라고 분석했다. 향후 정 전 대표의 당내 발언권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신이 대선 후보로 나서지 못할 경우, 어느 한 쪽에 힘을 몰아주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이다.

야권 최고 전략가 이해찬 전 총리 행보 주목

세종시에서 당선되어 국회 재입성에 성공한 이해찬 전 총리의 향후 역할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 전 총리는 킹메이커의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자신이 직접 대권에 도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야권의 최고 전략가이자, 친노 진영의 원로인 이 전 총리의 향후 역할에 따라서 민주당 대권 주자의 판도가 요동칠 가능성이 충분하다”라고 진단했다. 반면 지난 17대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상임고문의 입지는 상당히 위축될 것이라는 의견이 공통적이다.

안철수 원장의 선택에도 관심 쏠려

이처럼 민주당 내 잠룡들의 ‘군웅할거 시대’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장외 우량주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주가가 다시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미 그 조짐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여론에 가장 민감한 주식시장에서 최근 연일 하락세를 나타내던 안철수연구소 주가가 총선 직후인 4월12일 상한가를 기록했다. 10만원대 이하로 떨어졌던 주가가 이날 다시 10만7천9백원으로 뛰어오른 것이다. 

중앙일보와 한국갤럽이 총선 직후인 4월11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안원장은 박근혜 위원장과의 양자 대결 구도에서 ‘35.9%-45.1%’로 9.2%포인트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총선 전 한때 안원장이 박위원장을 앞서기도 한 것에 비하면 역전된 결과이지만, 총선에 참여하지도 못했던 안원장으로서는 여당의 총선 사령탑인 박위원장을 상대로 여전히 만만찮은 경쟁력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특히 ‘박근혜-문재인’의 양자 구도에서는 ‘47.7%-31.4%’로 문고문이 16.4%포인트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상대적으로 안원장이 더 비교 우위에 있음이 드러났다.

황인상 대표는 “만약 총선을 통해 문고문이 강력한 대안으로 확정되었다면 안원장은 보완재 역할에 머물렀을 것이다. 야권의 불안정한 상황이 안원장의 가치를 다시 높여 놓았다”라고 분석했다. 황태순 위원도 “이번 총선으로 안원장의 입지가 상당히 넓어졌다. 민주당이 근소하게라도 이겼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이제는 안원장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끌어안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윤희웅 실장은 “민주당의 계파 경쟁이 좀 더 본격화되는 양상으로 간다면, 주류인 친노계와 대립각을 세울 비주류 중심으로 ‘안철수 관심 그룹’이 생겨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가 야권의 두 유력 주자인 안원장과 문고문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두 대권 주자가 독자적으로 박위원장을 대항하기는 어렵다. 여권에서 박위원장의 입지가 굳어지면 서로 협조하면서 경쟁해야 승산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황태순 위원은 “일각에서 제기하는 ‘안철수의 한계’는 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세력은 의석 수 1백27석의 민주당이 있다. 지지율이 높은 안원장은 세력이 없고, 반면 세력이 있는 민주당은 스타가 없다면, 이 둘의 결합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최상의 결합이 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난관도 있다. 안철수 원장과 더불어 야권의 또 하나 중요한 축인 통합진보당 간의 간극이다. 이번 총선에서 전국 10%의 정당 지지율을 나타낸 통합진보당을 배제한 채 야권의 대선 승리를 논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안원장과 통합진보당의 화학적 결합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어쨌거나 관건은 안원장의 결단에 달렸다. 야권에서는 안원장이 언제까지 판단을 미루어둘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안원장이 액션을 취할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안원장 입장에서도 급할 것이 없어 보인다. “1단계로 민주당 내에서 어느 정도 후보가 결정이 된 후에, 2단계로 장외의 안원장과 후보 단일화 경선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 시기는 빨라야 8~9월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는 것이 정치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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