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분쟁으로 치달은 브랜드숍 ‘지존’ 싸움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2.04.2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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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더페이스샵, 선두 경쟁 치열…최근에는 잡지 광고 문제로 대립

더페이스샵 서울 명동 매장 입구. ⓒ 시사저널 박은숙
국내 화장품 시장은 아모레퍼시픽의 독주 체제이다. 시장 점유율 38%, 매출 2조원이라는 압도적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길거리를 무대로 한 브랜드숍(단일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중저가 화장품 점포) 부문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브랜드숍 시장은 미샤(에이블C&C)와 더페이스샵(LG생활건강)이 주도하고 있다. 업계 1, 2위인 이들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백화점 브랜드들의 고상한 신경전과는 양상이 다르다. 길거리 싸움이다. 도우미를 동반한 호객 행위와 전 품목에 걸친 세일 전쟁이 펼쳐진다. 다른 브랜드와의 노골적인 비교 광고까지 등장했다. 최고경영자(CEO)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직접 경쟁 브랜드에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한다. 이처럼 경쟁이 과해지자 결국 심판이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에이블C&C는 지난 2월 LG생활건강이 미샤의 광고 영업을 방해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미샤는 국내 브랜드숍 시장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2000년 출범해 인터넷 판매를 시작한 후 2002년 명동에 1호점을 내며 저가 화장품 시장의 새 장을 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한 소비자와의 적극적 소통과 통일성 있는 매장 디자인이 저가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희석시켰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출범과 동시에 여심(女心)을 휘어잡으며 백화점과 방문 판매가 전부이다시피 했던 화장품 유통 시장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출범 4년 만에 매출 1천억원을 넘겼다. 

미샤의 1위 행진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샤의 성공을 보고 뛰어든 후발 주자들이 앞다투어 화장품 거리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진입 장벽이 낮은 업계 특성을 감안하면 예견된 상황이었다. 특히 2003년 12월 ‘자연주의’를 콘셉트로 한 더페이스샵의 등장은 미샤의 상승세에 직격탄을 날렸다. 미샤는 결국 2005년 더페이스샵에 브랜드숍 부문 1위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서영필 대표이사가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2005년 1천2백억원을 웃돌았던 매출이 9백억원대까지 떨어지며 존폐의 기로에까지 놓였다.

미샤 서울 명동 매장 입구. ⓒ 시사저널 박은숙
추락하던 미샤가 날개를 다시 펴게 된 것은 2007년 서영필 대표가 복귀하면서부터다. 일선으로 복귀한 서영필 대표는 과거에 실패한 아픔을 씻기 위해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기 시작했다. 저가 이미지를 벗기 위해 해외 유명 브랜드와 견줄 수 있는 주력 상품을 개발하는 데에 열을 올렸다. 특히 수입 인기 브랜드 SK-Ⅱ를 직접 겨냥한 마케팅을 펼쳤던 것이 주효했다. 당시 미샤는 ‘SK-Ⅱ 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의 공병을 가지고 오면 자사 제품을 드립니다’라는 파격적인 광고를 진행했다. 해당 제품인 ‘더 퍼스트 트리트먼트 에센스’는 50만개 이상 팔려나가며 대박을 쳤다. 지난 1월에는 일명 ‘보라색병’으로 불리는 신제품 ‘나이트 리페어 사이언스 액티베이터 엠플’을 출시했다. 이는 고가 수입 브랜드인 에스티로더의 히트 상품 ‘갈색병 에센스’를 겨냥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전 품목에 거쳐 한 달에 한 번씩 할인을 하는 이벤트도 펼쳐졌다. 이같은 미샤의 공격적인 경영은 매출로 나타났다. 미샤는 지난해 매출 3천3백3억원을 올리며 3천2백55억원을 기록한 더페이스샵을 7년 만에 누르는 영광을 안았다.

더페이스샵은 오랫동안 업계에서 1인자로 군림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 동안 매출 1위의 자리를 견고히 해왔다. 전체 브랜드숍 브랜드 중 최다인 전국 9백여 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더페이스샵은 LG생활건강 계열의 다른 브랜드들의 기술력을 도입한 시너지 제품을 출시하며 대기업 브랜드로서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다. 대표적인 제품은 지난 2월 출시한 에센스 ‘스밈’이다. 스밈은 LG생활건강 화장품연구소의 자연 발효 브랜드 ‘숨’의 기술력이 담겨진 제품이다. 브랜드숍 제품으로서는 다소 고가인 3만원을 웃도는 가격에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보천리형’ 따라잡은 ‘기호지세형’ 미샤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호지세형’ 전략을 취하는 미샤와 달리 더페이스샵은 소의 걸음으로 천리를 가는 ‘우보천리형’ 전략을 고집한다. 급격한 매출 상승은 없었지만 위기도 없었다. 출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전년 대비 매출이 줄어든 적이 없다. 폭발적 성장과 마이너스 성장을 함께 경험한 미샤와 달리 매년 꾸준히 10%대의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루어왔다. 그러다 지난해 미샤에게 역전을 당한 것이 자극이 되었다. 올해 들어 10년 만에 처음으로 세일까지 단행했다. 지난 3월 더페이스샵은 3월8일부터 11일까지 전 품목에 거쳐 30%까지 할인하는 ‘멤버스데이’를 진행했다. 그러자 미샤 역시 이 날짜에 맞춰 평소 매달 10일 하루 동안 진행하던 할인 행사를 3일로 늘리고 할인 폭도 20%에서 30%로 올리는 ‘미샤데이즈’ 이벤트를 감행했다.

더페이스샵의 한 관계자는 미샤와 매출 집계 방식의 차이를 들며 단순히 숫자로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설명한다. 더페이스샵은 미샤에 비해 직영점보다 가맹점 비율이 높다. 직영점에서 팔리는 수익은 모두 매출로 잡히지만 가맹점에서 판매되는 수익은 수수료 등을 제외하고 일정 비율만 매출로 잡힌다. 따라서 미샤에 비해 가맹점 비율이 높은 더페이스샵이 매출액을 비교할 때 불리하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하지만 미샤측은 이같은 더페이스샵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샤 관계자는 “직영점이 많다는 것 자체가 회사가 그만큼 투자를 한다는 의미이다. 또, 미샤의 매장 수가 5백여 개로 9백여 개인 더페이스샵에 비해 현저히 적은 상태에서 올린 실적임을 감안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미샤의 1위 탈환으로 가열되던 두 브랜드의 경쟁 양상은 결국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졌다. 미샤는 LG생활건강이 미샤의 광고 영업을 방해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일반적으로 여성 및 패션 잡지 목차 앞 광고는 고급 화장품 브랜드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미샤는 지난해 9월부터 10개 매체와 접촉하며 목차 앞 광고를 싣기 위한 작업을 펼쳐왔다. 그 결과 네 개 매체와의 계약을 성사시키는 성과를 얻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올 2월 계약을 채결한 한 패션 잡지에서 갑자기 미샤의 광고를 실을 수 없다고 통보해온 것이다. 해당 잡지사는 ‘L-Story’라는 LG생활건강의 소책자를 발간하고 있었다.

미샤는 이를 LG생활건강에서 미샤의 광고를 빼도록 압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샤의 한 관계자는 “해당 잡지사의 광고 담당자와 임원에게 LG측에서 미샤의 광고를 내리도록 강요했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LG생활건강측에서 맡기고 있는 소책자 발간 물량도 모두 거두겠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증거 자료도 갖고 있다”라고 전했다. 반면 LG생활건강측은 이에 대해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LG생활건강의 한 관계자는 “해당 잡지사와 접촉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샤도 목차 앞 광고를 실었으니 페이스샵도 실어주라’라고 주장한 것밖에 없다. 광고를 빼라고 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사실 여부를 떠나 두 브랜드의 과열된 경쟁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편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사건은 처음이다. 해당 사건에 대해 조사 중에 있으며 진행 사항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없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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