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논란 ‘살인청부사건’ 의혹 남긴채 ‘무죄’ 종결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2.04.23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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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된 전 CJ그룹 재무팀장, 최종심에서 풀려나 /‘굴업도’ 관련 페이퍼컴퍼니인 씨앤아이레저산업도 주목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에 있는 CJ그룹 본사. ⓒ 시사저널 자료사진
지난 2008년 이른바 ‘CJ그룹 살인 청부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이 사건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재산을 관리하던 CJ그룹의 전 재무2팀장 이 아무개씨(43)가 자금을 빼돌려 개인 용도로 사용하다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살인을 청부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특히 이 사건이 주목받은 것은 수사 도중 밝혀진 이회장의 차명 재산 때문이다. 이씨가 이회장의 차명 재산을 관리하던 핵심 측근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범삼성가인 CJ그룹의 차명 재산 실체가 드러나리라는 전망이 나온 것은 당연했다. 실제 1심에서 이씨가 횡령과 배임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이씨의 입에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코너에 몰린 이씨가 뭔가를 증언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그러나 2심에서 무죄로 뒤집어진 뒤, 지난 4월12일 최종심에서 대법원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이씨의 살인 미수 교사와 횡령·배임 등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의혹을 남긴 채 결국 사건 자체가 종결된 것이다. 기자는 이 사건이 불거진 2008년부터 지금까지 3년여간 계속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이회장의 차명 재산을 둘러싼 의혹을 추적해왔다.

경찰은 당시 이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회장의 차명 재산을 밝혀냈다. 경찰은 이회장이 1987년 삼성화재 주식 9만여 주를 할아버지인 고 이병철 전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아 1994?98년 CJ그룹이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될 때 순차적으로 처분했고, 이 돈으로 1994?2002년 임직원 등의 명의로 차명 주식 계좌 90여 개를 조성했다고 발표했다. 이회장의 차명 재산은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 특검 수사에서 드러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그것과 유사해 더욱 주목을 받았다. 당시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는 “각각 수천억 원 내지 수조 원에 이르는 범삼성가(삼성, 신세계, CJ)의 차명 재산이 모두 선대 회장의 상속 재산이라는 변명은 전혀 신뢰할 수 없다. 상속 재산 이외에 새로운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수사 당국은 차명 자금이 어떻게 조성되었으며 배임·횡령 등 불법적으로 조성된 자금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사는 결국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당시 한국녹색회 고 이승기 정책실장(2012년 사망)은 이와 관련해 경찰과 검찰의 공식 입장을 요구했다. 경찰측은 답변서를 통해 ‘이 회장의 개인 자금인 것으로 수사 종결되었다. 이 사건과 이회장의 개인 자금은 관계가 없으므로 추가 수사 계획도 없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경제개혁연대는 “차명 계좌를 이용한 재벌 총수들의 위법 행위가 근절되지 못하는 것은 금융실명제법의 차명 계좌주에 대한 처벌 조항 미비 및 수사 당국의 소극적인 수사 태도에 그 원인이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회장의 차명 재산에 대한 ‘침묵’은 이씨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이회장의 차명 재산 규모는 이씨의 횡령·배임 혐의를 판단하는 데 핵심적인 사안이다. 이씨의 횡령·배임액 약 1백70억원이 이회장의 차명 재산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판결이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심에서는 차명 재산을 약 5백37억원으로 보고 횡령·배임 혐의가 인정되었다. 그러나 2심에서는 “이 회장의 자금은 수천억 원에 달한다. 차명 재산 관련 세금만도 1천7백억원 이상을 납부했다”라는 이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무죄가 선고되었다. 횡령·배임에 대한 형량은 전체 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 차명 재산 규모 밝혀지지 않아

씨앤아이레저산업이 오션파크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인천시 굴업도. ⓒ 연합뉴스
그런데 2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4부, 김창석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차명 재산의 정확한 규모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차명 재산의 규모가 핵심인데 그 규모를 정확히 밝히지도 않은 채 무죄를 선고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씨의 횡령·배임액) 1백70억원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전체 차명 재산 규모를 밝혔어야 했다. 국세청에 알아보면 차명 재산 규모가 얼마이고 언제 어떤 종류의 세금을 납부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정황은 재판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재판 내내 검찰은 물론 이씨의 변호인조차도 이 회장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재판 도중 변호인이 “자금 운영에 대해서 이씨와 이회장 사이에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라고 주장하자, 재판장이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이 회장이 법정에 출두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변호인이 관련 멘트를 삭제해줄 것을 요청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씨앤아이레저산업이라는 회사도 주목을 받고 있다. 씨앤아이레저산업은 이씨가 제안한 ‘굴업도 오션파크 개발 사업’을 위해 2006년 만들어진 회사이다. 이재현 회장이 42.11%, 아들 선호씨가 37.89%, 딸 경후씨가 2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회장 일가의 가족 회사이다. 시민단체들은 씨앤아이레저산업이 4세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만들어진 페이퍼컴퍼니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굴업도 오션파크 개발 사업 자체가 이회장 일가를 위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오션파크 사업은 3천9백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관광단지 조성 사업이다. 그러나 씨앤아이레저산업은 자체적으로 시행·시공 능력이 없는 회사로 알려졌다. 2심 재판부도 씨앤아이레저산업이 페이퍼컴퍼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결국 오션파크 사업의 실질적인 업무는 CJ건설 등 다른 계열사들이 추진하고, 개발 이익은 씨앤아이레저산업이 챙기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 밖에도 씨앤아이레저산업은 CJ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2008년 1월 경기도 화성에 있는 공장 부지를 화성봉담PFV에 매각했다. 씨앤아이레저산업은 화성봉담PFV의 지분 17.54%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는 CJ㈜가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화성봉담PFV라는 회사가 만들어진 이유는 씨앤아이레저산업의 지분 참여를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화성 공장 부지는 아파트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향후 개발 이익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씨앤아이레저산업은 이 밖에도 CJ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가양동 공장 부지 개발, 영등포·구로 부지 개발 등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CJ측은 “터무니없는 가설에 불과하다”라고 일축했다. CJ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의 CJ㈜ 지분은 40%가 넘는다. 그만큼 지배 구조가 탄탄하다. 굳이 이런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제개혁연구소(소장 김우찬)는 지난 2011년 발표한 ‘재벌 승계는 어떻게 이루어지나(2호)’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이경후와 이선호가 이재현이 보유하고 있는 41.20%의 CJ 주식 전체를 증여받고 50% 정도의 세율을 적용할 경우 약 20%의 주식을 증여세로 물납하게 된다면, CJ에 대한 안정적인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한 추가적인 지분 확보가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추가적 지분 확보를 위한 자금 마련에 편법적인 방법이 동원될 위험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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