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유언’, 김경희가 집행하고 김설송이 보조한다
  • 정성장│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 승인 2012.04.23 23: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망 전 남긴 것으로 알려진 ‘유훈’ 일부 공개돼 / 유언 따른 것 증명하듯 급부상한 파워엘리트들 주목

지난 4월15일 김일성 100회 생일을 맞아 거행된 대규모 열병식에서 김정은 조선로동당 제1비서가 손을 흔들고 있다. ⓒ AP연합

김정일이 지난해 12월17일 사망하기 두 달쯤 전 그의 여동생인 김경희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에게 남긴 유서의 일부가 북한 노동당 제4차 대표자회 다음 날인 4월12일 개최된 한 세미나에서 공개되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가 “북한 최고위층과 연락이 닿는 복수의 소식통을 통해 입수한 자료이다”라며 김정일 유서의 주요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김정일 유서를 보지 못한 일부 전문가들은 이 문건의 신뢰도에 의문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지난 3월 말에 최초로 이 문건을 받은 필자를 비롯한 북한 전문가들은 검증 과정을 통해 사실에 가깝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북한 최고위급 출신 탈북 인사들의 의견도 그렇고, 무엇보다 북한의 지난 ‘4·11 당대표자회’ 개최 전과 당대표자회에서 김경희와 장성택, 최룡해, 김정각, 현철해의 부상 등 파워엘리트 변동이 김정일의 유언에서 언급한 방향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가 입수한 김정일 유서를 통해 ‘김정은 시대’ 김경희와 장성택 그리고 기타 로열패밀리와 최룡해·김정각·현철해 등 파워엘리트들의 역할을 분석해본다. 

장성택이 ‘섭정’할 가능성은 희박해

김정일의 유서에 따르면, 그의 유언을 집행하는 역할을 맡은 인물은 다름 아닌 그의 여동생 김경희이다. 김경희는 김정일의 유언을 집행하는 권한을 부여받음으로써 북한 체제에서 후계자인 김정은에 다음 가는 제2인자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김경희의 높아진 위상은 그가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들 바로 다음에, 그리고 위원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호명되고, 당중앙위원회 비서로도 선출되어 비서들 중 가장 먼저 호명되고 있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김경희의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의 서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비서국에서의 서열이다. 1980년 개최된 제6차 당대회에서 김일성의 후계자 김정일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상무위원 중 네 번째로 호명되었지만, 비서국에서는 김일성 바로 다음에 호명되어 제2인자로서의 위상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1974년에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 결정된 후 권력의 핵심이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비서국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김정일은 비서들 중 조직비서로서 다른 모든 비서들에게 보고를 받아 김일성에게 보고하는 우월적 지위에 있었다. 김경희는 과거 당중앙위원회 경공업부장으로서 경공업 분야를 관장했는데, 만약 김경희가 이 분야를 담당하는 비서를 맡게 되었다면 선전 선동이나 군수 등 더 중요한 부문을 담당하는 다른 비서들보다 먼저 호명될 수는 없다. 그가 비서들 중 가장 먼저 호명되고 있는 것은 김정일의 유언을 집행하기 위해 비서국을 총괄적으로 지도하는 지위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김경희는 김정일의 유언 집행뿐만 아니라 김정은을 당적으로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당중앙위원회 비서로서 그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위를 공식적으로도 보장받게 되었다. 김경희는 또한 이른바 김정일 ‘로열패밀리’를 끝까지 돌보며, 국내외의 모든 자금을 관리하는 일도 맡게 되었다.

반면 그의 남편인 장성택 당중앙위원회 행정부장에 대해서는 김정일이 유언에서 김정은을 당적으로 보좌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맡기지 않았다. 따라서 일각에서 예상하는 것처럼 그가 김정은을 ‘섭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장성택은 올해 김정은의 공개 활동에 북한 파워엘리트 중 가장 빈번하게 동행하고 있다. 그는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승진함으로써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장성택은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가장 편한 국정 의논 상대로서 앞으로도 김정은을 당적으로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왼쪽부터)김경희, 장성택, 현철해, 김정각, 최룡해. ⓒ AP연합ㆍ평양 조선중앙통신

김정일은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장남’인 김정남에 대해 “많이 배려해야 한다. 그 애는 나쁜 애가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그의 애로를 덜어줄 것을 당부했다. 따라서 향후 김정남이 김정은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해도 김정은이 김정남에게 위해(危害)를 가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김정남은 북한 지도부에서 그 어떠한 역할도 맡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해외 유랑 생활을 계속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일의 자녀들 중 김정은 외에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은 인물은 의외로 김정일과 김영숙 사이에서 태어난 김설송이다. 김정일은 김설송을 ‘김정은의 방조자로 준비시키고 밀어줄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만일, 김경희가 건강상의 이유나 갑작스런 유고로 국내외의 모든 자금을 직접 관리할 수 없게 되면 그 역할을 김설송이 맡아서 할 것을 지시했다. 따라서 김경희가 사망할 경우 김설송의 역할이 커지게 되었다.

이번에 입수한 유서에서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과 여동생 김여정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김여정은 시간이 지나면 현재 김설송이 맡은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여정은 현재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서 서기실 업무를 맡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김정은 시대 북한 파워엘리트들의 역할

김정일은 김정은을 당적으로 보좌할 인물들로 김경희와 장성택 외에도, 최룡해와 김경옥을 지목했다. 최룡해는 김일성 주석과 ‘빨치산 동지’ 사이였던 아버지 최현의 아들로서 김정일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김정일에게 직언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측근 가운데 하나로 알려지고 있다.

최룡해는 근로 단체를 관장하면서 김정은에 대한 군대와 사회 청년동맹 맹원들의 충성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당대표자회 개최 전인 4월7일 최룡해는 당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 공동 결정으로 차수 계급으로 승진하고, 북한군 3대 상설 조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직에도 임명됨으로써 인민군에 대한 당적 지도 역할을 맡게 되었다. 최룡해는 또한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도 선출됨으로써 과거 조명록이 김정일에 대한 군부의 충성을 이끌어냈던 것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김경옥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군사 담당)은 올해 들어 공식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건강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조직지도부의 김경옥 제1부부장을 대신해 황병서 부부장(군사 담당)이 최근 김정은의 공개 활동에 빈번히 수행함으로써 김경옥이 맡아야 할 역할을 황병서가 대신 맡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정은을 군사적으로 보좌할 임무를 맡은 김정각, 리영호, 김격식, 김명국, 현철해 중 김정각은 지난 2월15일의 인사에서 차수로 승진하고, 당대표자회 개최 전 인민무력부장직에 임명됨으로써 군사 행정과 외교를 통해 김정은을 보좌하게 되었다. 현철해는 당대표자회 개최 전인 4월7일 차수로 승진한 데 이어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겸 후방총국장직에 임명되어 김정각을 도와 김정은을 보좌하게 되었다.

한편 김정일의 측근이었음에도 김정일이 유언에서 김정은을 군사적으로 보좌하는 임무를 부여하지 않은 김영춘은 당대표자회 개최 직전 인민무력부장에서 해임되어 당중앙위원회 부장직을 맡게 되었다. 김영춘이 새로 맡은 직책은 그동안 유명무실화되었던 당중앙위원회 군사부장이나 민방위부장직으로 추정된다. 김영춘은 서서히 명예롭게 퇴진하는 길에 들어섰다고 보여진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