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세 가족’, 어디로 향하나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2.04.23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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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정국의 핵’ 통합진보당, 당권·대권 문제와 경선 부정 선거 의혹 등으로 갈등 커져

4월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단과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상견례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통합진보당의 향후 행보가 대선 정국의 핵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통합진보당은 4·11 총선에서 13석을 차지해 원내 제3당의 위치에 올랐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두 거대 정당의 틈바구니에서 건져올린 값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비례대표 후보 경선이 부정 선거 의혹에 휩싸이면서 당내 갈등이 높아지고 있다. 옛 민주노동당 세력이 주축인 당권파를 겨냥한 ‘패권주의’ 논란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오는 6월3일 당 대표 선출을 앞두고 있어 각 정파 간 대결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한편에서는 대선 승리의 필요조건으로 여겨온 ‘야권 연대’가 삐걱대는 분위기이다. 상대 당인 민주당 내에서 통합진보당과의 연대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중도층 잡기에 실패한 이유 중 하나로 ‘야권 연대’를 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진보 정당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국회 의석 수가 몇 석 더 늘었다고 해서 ‘총선 승리’를 자축하며 환호성을 지를 처지가 못 된다. 통합진보당은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일곱 석에 비례대표 여섯 석을 더해 총 13석이라는 두 자릿수 의석을 확보했다. 현재 국회 의석 수가 일곱 석인 점을 감안하면 두 배 가까이 의석 수가 늘었다. 이 정도면 ‘압승’은 아니더라도 ‘승리’ 정도는 말할 수 있어 보인다.

그런데 당내 분위기는 다르다. 기대에 못 미친 결과를 아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통합진보당은 총선을 앞두고 원내 교섭단체 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교섭단체와 비교섭단체의 권한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진보 정당은 17대 국회 이후 줄곧 원내에 진출했지만,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해 많은 부분에서 소외를 당했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가 총선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합당을 선언하고 통합진보당을 출범시킨 것도 외연을 확대해 교섭단체를 구성하겠다는 공통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민주당과의 야권 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특정 정파 패권주의’ 다시 도마에 올라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상견례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하지만 결과적으로 통합진보당은 단독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데에 실패했다. 수도권에서 네 석을 얻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진보 벨트’로 여겼던 울산과 경남 창원에서 전패했다. 노동자층이 두터운 이 지역에서의 패배는 진보 정당으로서는 뼈아픈 결과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통합진보당의 기반은 노동계이다. 그런데 노동자 밀집 지역인 울산과 경남 창원에서 의석을 얻는 데 모두 실패했다. 물론 과거보다 의석 수가 많아졌지만, 이는 독자적인 성공이라기보다 야권 연대 협상으로 이익을 본 것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황인상 P&C정책개발원 대표는 “야권 연대에 몰두한 나머지 내부 전선을 공고히 하는 데는 소홀히 한 측면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의석 수는 늘어났지만 성공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조직 내부의 힘만 가지고 당선되지 못한 점은 대중 정치에서 문제를 드러낸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는 ‘당권파의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진보 정치의 맏형 격인 권영길 통합진보당 의원은 총선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부에서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선거였다”라고 평가했다. 권의원은 특히 “노동자들이 통합진보당을 버린 것이 아니라, 통합진보당이 노동자를 배신했다. 이는 특정 정파의 패권주의가 만들어낸 과욕의 결과였다”라고 비판했다.

통합진보당은 현재 ‘한 지붕 세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크게 보면 자주파(NL)가 중심인 민주노동당 계열, 평등파(PD)에 속하는 새진보통합연대 계열, 친노(친노무현) 세력인 국민참여당 계열로 나뉜다. 이 중에서 자주파가 당권파로서 당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자주파와 평등파는 2000년 민주노동당을 함께 창당했지만, 2008년 평등파가 진보신당을 창당해 나가면서 갈라섰다. 당시 평등파가 분당 이유로 내세운 것이 자주파의 패권주의와 북한에 대한 입장 차이였다. 우여곡절 끝에 조승수 의원과 심상정·노회찬 전 의원 등 평등파 일부가 ‘진보 대통합’을 명분으로 자주파와 다시 한 배를 탔다. 현 지도부는 자주파의 이정희·조준호, 평등파의 심상정, 국민참여당 계열의 유시민 등 4인 공동대표 체제이다. 대변인도 자주파 우위영, 평등파 노회찬, 참여당 계열의 천호선 등 3인이 공동대변인 체제를 이루고 있다. 외형상으로 세력 간 균형을 갖추면서도 철저하게 세 계파의 연합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5월13일 전당대회에 이어 6월3일 단일 대표가 선출될 예정이다. 당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정파 간의 치열한 대결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당권파 이정희 대표, 대권 도전할 가능성도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총선 이틀 뒤인 지난 4월13일 북한의 로켓 발사 강행을 놓고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에 이견이 표출되었다. 통합진보당은 우위영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미국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일변도 방식은 한반도 긴장 완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오직 대화와 협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노회찬 대변인은 다른 목소리를 냈다. 노대변인은 언론을 통해 “현 상황에서 미국에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타개책으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킨 것은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 무조건 군사적 도발로 몰아붙이는 것도 문제이지만, 인공위성이라고만 이야기하는 것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당내 평등파의 수장 격인 심상정 공동대표는 4월17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정치의 본질은 영향력이 있고 권력이 있는 만큼 책임을 지는 것이다”라며 당권파를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오는 5월13일 전당대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될 ‘당권·대권 분리’ 여부를 놓고도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 당 대표 선거에 나선 후보가 대선 후보로도 나설 수 있느냐는 문제는 통합진보당뿐 아니라 다른 정당에서도 민감하게 여겨온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이다.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지 말자는 주장은 당내 주류측에서 주로 나온다. 통합진보당의 경우도 당권파인 자주파에서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당권을 쥐고 있는 당 대표가 대선 후보로 나서게 되면 그만큼 유리한 상황에서 대권 경쟁을 펼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이정희 공동대표가 당권 도전에 이어 대권 도전에도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당권파의 한 핵심 인사는 “인물군이 취약한 상황에서 당 대표를 대권에 나서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가장 유력한 주자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야권 연대’ 어떻게 끌어갈지도 과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왼쪽)·조준호 공동대표. ⓒ 시사저널 임준선
이에 반해 비주류측에서는 당권과 대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다. 개별 정파만의 힘으로는 당권을 잡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당권과 대권을 서로 나누어 갖는 연합 전선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참여당 계열과 새진보통합연대 계열 등 비당권파가 똘똘 뭉쳐서 당권파에 맞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참여당 계열을 이끌고 있는 유시민 공동대표는 총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당내 정파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상정 공동대표가 당권, 유시민 공동대표가 대권에 도전하는 방안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반면, 당권과 대권이 분리되지 않는다면 당 대표 선출이 사실상 대선 후보 선출의 예선전이나 다름없게 된다. 각 정파의 대표 선수들이 모두 당권 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세력 기반이 탄탄한 당권파가 당연히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야권 연대를 어떻게 발전시켜나갈지도 통합진보당이 향후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통합진보당이 주요 공약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제1 야당인 민주당과의 공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당초 민주당이 거대 여당과 대결하기 위해 통합진보당과의 연대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총선에서 참패한 후 민주당 내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진보 색채가 강한 정당과의 연대로 인해 중도층 표심을 얻는 데 실패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양당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공멸할 우려가 크다는 측면에서 야권 연대를 철회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우세하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야권 연대가 작동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방법이 없다. 당내에서 논쟁은 있을 수 있지만 다른 살림을 차린다고 별다르게 뾰족한 수가 나오지는 않는다. 대선 때까지 야권 연대는 계속될 것으로 본다”라고 전망했다.


당권 경쟁, ‘경기동부연합+광주·전남연합’ 대 ‘참여당+평등파+인천연합’ 

통합진보당 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자주파는 과거 전국연합 시절의 지역 조직에 뿌리를 둔 경기동부연합, 광주·전남연합, 인천연합, 울산연합 등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 당권파의 핵심은 경기동부연합으로 알려져 있다. 이정희 공동대표와 장원섭 사무총장이 대표적인 인사로 거론된다. 18대 국회에서는 현역 의원이 이대표 한 명뿐이지만, 지난 4·11 총선을 통해서 상당수가 ‘금배지’를 달게 되었다. 서울 관악 을의 이상규 당선인과 경기 성남 중원의 김미희 당선인이 경기동부연합으로 분류된다. 이석기·김재연·정진후·김제남 당선인 등 비례대표 상당수도 경기동부연합과 관련이 있거나 이 그룹에서 주도적으로 밀었던 인사로 알려졌다.

광주·전남연합도 당권파로 분류된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경기동부연합과 함께 당내 핵심 세력을 형성해왔다. 전남 순천·곡성에서 재선에 성공한 김선동 의원과 광주 서구 을에서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한 오병윤 당선인이 광주·전남연합 소속이다. 반면 인천연합의 경우 민주노동당 시절 비주류로 치부되면서 당권파와 사이가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당선인 가운데서는 비례대표인 윤금순 당선인이 인천연합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볼 때 향후 전당대회는 경기동부연합과 광주·전남연합의 당권파 대 평등파와 국민참여당 그리고 인천연합 등의 비당권파 간 대결 구도로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 더 우세하다.

만약 비주류에서 국민참여당 계열과 평등파 그룹이 각각 독자적인 후보를 낼 경우, 당권파가 어렵지 않게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당원 수에서는 당권파가 비당권파를 다소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대중적 인지도에서는 비당권파 핵심 인사들이 더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유시민 공동대표와 천호선 대변인 그리고 심상정 공동대표와 노회찬 대변인 등 4인의 움직임이 통합진보당의 향후 운명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전망이다.                           



경기동부연합은 살아 있는 조직인가, 죽은 조직인가

지난 4·11 총선에서는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다소 생소한 용어가 대중에 소개되었다. 바로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조직이다. 서울 관악 을에 출마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측이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여론조사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당내 특정 정파의 이름이 불거져 나온 것이다.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이른바 ‘당권파’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온 것으로 알려진 경기동부연합은, 일부 보수 언론으로부터 ‘종북(從北)’이라는 이념 공세를 받기도 했다.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배출한 상당수의 당선인이 경기동부연합 세력이 중심이 된 당권파로 분류되고 있다.

대표적인 인사로 이상규 당선인과 김미희 당선인이 꼽힌다. 이정희 공동대표를 대신해 서울 관악 을에 출마했던 이당선인은 노동운동가 출신의 정치인이다. 서울대 법대를 다닐 때 옥중에서 학생회장에 당선되기도 한 그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을 역임했다. 2002년 ‘효선·미선 촛불 집회’ 당시 사회를 보기도 했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단일 후보로 선출된 한명숙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 때는 박원순 후보의 선거본부 유세본부장을 맡았다. 이당선인은 “나는 서울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경기동부연합 소속 활동가가 아니었다. 내가 경기동부라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색깔론이다”라고 말했다.

성추행 파문으로 물러난 윤원석 후보를 대신해 경기 성남 중원에 출마했던 김미희 당선인은 성남에서 오랫동안 노동운동과 지역 정치를 해왔다. 전남 목포 출신으로 서울대 약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그는 약사 자격을 취득하고도 곧바로 약국을 개업하지 않고 성남의 작은 공장에서 일하며 노동운동을 했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시의원을 지냈으며, 2004년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도 역임했다. 김당선인은 후보 시절 “경기동부연합은 이미 10여 년 전에 해산된 연대 조직이며 1990년대에 활동하던 민주 재야 단체였다”라고 주장했다.

비례대표 당선인 중에서도 상당수가 당권파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동향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는 이석기 당선인은 민혁당 사건으로 투옥된 과거 전력 때문에 일부 언론으로부터 ‘색깔’ 공세를 받고 있다. 이당선인은 이 사건과 관련해 이미 사면 복권을 받았고, 국가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에서도 승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 비례대표인 김재연 당선인은 한국대학생연합 집행위원장 출신이다.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을 지냈고, 반값등록금국민본부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해왔다. 전교조 위원장을 지낸 정진후 당선인과 녹색연합운영위원장 출신인 김제남 당선인은 무당파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비례대표 후보로 확정되기까지 당권파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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