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정치’ 기회는 열렸다
  • 김재태 편집부국장 (purundal@yahoo.co.kr)
  • 승인 2012.04.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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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말로 인해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번 입 밖으로 나오면 더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은 구르고 굴러, 이 말이 그 말을 낳고, 그 말이 저 말을 낳습니다. 그래서 옛 선현의 고시조에서도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음이 좋아라’라고 했을 것입니다.

말은 입안의 불입니다. 잘 쓰이면 주변을 환히 비추고 온기를 주기도 하지만, 나쁘게 쓰이면 남을 태우고 나아가 나에게까지 화상을 입힙니다. 예나 오늘이나, 설화(舌禍)에 다친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유대교 경전 주석서에도 ‘험담은 말하는 자, 험담의 대상자, 듣는 자 세 사람을 죽인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만큼 말이 지닌 양날의 칼은 날카롭습니다.

말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잘 익힌 것, 덜 익힌 것, 기름진 것, 향신료를 듬뿍 바른 것, 날것 등 가지각색입니다. 잘 익혀 나온 말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날것의 말들은 아프고 역겹습니다. 사람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말들 중 대부분이 깊은 생각 없이, 또는 감정에 치우쳐서 토해지는 날것의 말입니다. 그 말들은 때로 듣는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치명적 독을 퍼뜨리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말의 독이 꽤 깊이 퍼져 있습니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다투면서 말들이 자꾸 거칠어집니다. 청소년 가운데는 욕설을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욕설을 포함한 쌍스러운 말들로만 문장을 만들어 대화하는데도 의사소통에 서로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입니다.

독 묻은 말들은 급기야 선거판까지 흔들었습니다.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의 막말 파문이 모든 것을 삼켜버렸습니다.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나 정책 공약 같은 것들이 속수무책으로 그 블랙홀에 빠져들었습니다. 선거가 끝난 뒤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막말 파문’이 민간인 사찰 문제보다 총선에 더 많이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이 나온 것만 보아도 그 파장의 크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말이 가장 아름답고 위력적인 경우는 바로 설득의 도구로 쓰일 때입니다. 진솔한 말만큼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는 것도 없습니다. 상대를 감복시키는 말 한마디로 위기에 빠진 집안을 살리고, 나라를 구하기도 합니다.

마침 우리 국회가 말이 흐르는 정치를 이룰 수 있는 기초적인 토대 하나를 세웠습니다. 이른바 몸싸움 방지 법안이라고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이 그것입니다. 지난 4월17일 운영위원회를 통과한 개정안의 핵심은 다수당의 횡포를 막는 것입니다. 물리력으로 법안 통과를 밀어붙일 수 없도록 필리버스터 같은 견제 장치도 마련했습니다. 오히려 국회를 비능률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반론도 있지만, 국회가 ‘설득의 정치’를 향해 새로운 걸음을 뗀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것을 얼마나 충실하게 실천하느냐입니다. 머릿수 싸움이나 몸싸움이 아닌 설득의 경쟁을 보고 싶은 것은 국민 모두의 마음일 것입니다. 국회에서 말이 소통될 때 정치 또한 부드러워질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제 설득의 정치를 위한 멍석은 깔렸습니다. 그것을 걷어차느냐, 고이 보듬느냐는 전적으로 19대 의원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윗말이 맑아야 아랫말이 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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