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 ‘소중한 냄새’의 추억
  •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 승인 2012.04.2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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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냄새에 심리적 의미 더해지면 기억에 오래 남아

ⓒ honeypapa@naver.com

대학원에 재학하던 시절, 집에서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다녔다. 도로가 많이 막히지 않으면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운이 좋으면 중간에 앉아서 가는 날도 있었지만, 서서 가야 하는 날이 더 많았다. 출퇴근 시간에 맞춰서 학교에 가야 하는 날이면 만원 버스에서 한 시간 넘게 시달려야 했다. 몸을 움직일 틈도 없는 만원 버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질식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숨 쉬는 것밖에 없었다. 너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숙사 입사 신청을 했다. 운이 좋았는지, 학교에 있는 기숙사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기숙사에서 연구실까지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충분했기 때문에 버스에서 하루에 두 시간을 서서 보내야 했던 것에 비하면, 시간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 편했다.

하지만 딱 하나 부족한 것이 있었다. 저녁 늦게 연구실에서 일을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왔을 때, 집에 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예전에 저녁에 귀가했을 때에는 하루 종일 나의 근육을 긴장시켰던 생각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사그라졌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기숙사에 온 후로는 퇴근 뒤에도 늘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이다. 같은 침대에 눕더라도, 집에 있는 침대에 누웠을 때와 기숙사에 있는 침대에 누웠을 때 갖게 되는 마음의 편안함은 달랐다. 그래서인지 기숙사로 온 뒤에 연구실에 앉아 있는 시간은 훨씬 늘어났지만, 정작 일의 성과는 나지 않았다. 결국 기숙사에는 한 학기만 머무르고 다시 통학을 하기 시작했다. 통학하는 일은 고달팠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의 편안함을 다시 얻을 수 있었다. 도대체 기숙사와 집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특정 냄새가 한 사람의 정서와 행동에 영향 미쳐

집에는 있고, 기숙사에는 없었던 것이 하나 있기는 있었다. ‘집 냄새’였다.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에 나는,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냄새가 기숙사에는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몸은 그 냄새가 나는 순간 경직되었던 근육들을 이완시키고, 내게 이제는 마음 편하게 쉬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갖게 되는 편안함은 바로 냄새와 함께 찾아왔던 것이다. 집 냄새, 늘 내 편이 되고 나를 지지해줄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이 주는 냄새가 기숙사에는 없었던 것이다.

물리적인 냄새는 우리에게 냄새에 대한 화학적 정보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냄새와 연합해 우리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던 다양한 개념, 정서 그리고 행동은 우리가 물리적 냄새를 경험하는 순간 자동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다.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서 주사를 한 대 맞았던 아이들은, 다음 날 병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울기 시작한다. 우리가 ‘병원 냄새’라고 하는 소독약 냄새를 맡는 순간 자신이 이전에 병원에서 경험한 주사의 통증이 자동적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남성들에게 ‘엄마 냄새’가 나는 여성(실제로는 어렸을 때 엄마가 사용하던 화장품과 향이 유사한 화장품을 사용하는 여성)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여성이 사용하는 화장품의 냄새가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 있던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최근의 연구들은 물리적 냄새가 그 냄새와 관련된 심리적 차원의 정신적 표상 또는 무의식적 목표를 활성화시키고, 그 결과 냄새가 신호하는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홀랜드(Holland) 등의 연구에서는 세제 냄새가 나는 실험실에서 실험 참가자들이 청소와 관련성이 없는 단어(예: 자전거 타기, 탁자, 컴퓨터)에 비해 청소와 관련된 단어(예: 청소하기, 정돈하기, 위생)를 탐지해내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대학생들에게 실험이 끝나고 난 다음에 할 다섯 가지 활동을 적게 했을 때, 세제 냄새가 나는 조건에서는 무취 조건보다 학생들이 청소 관련 행동을 더 많이 적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들은 하나의 목표(예: 청소하기)가 이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예: 세제)과 연결되어 있고, 세제 냄새라는 일종의 단서가 이러한 목표와 수단 간의 연결 고리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 실험에서는 세제 냄새가 나는 실험실에서 설문에 응답한 후에 두 번째 실험실(냄새가 없는)에서 비스킷을 먹도록 했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이 비스킷을 먹는 동안 탁자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얼마나 자주 치우는지 몰래카메라를 동원해서 촬영했다. 결과에 따르면 세제 냄새 조건에서는 무취 조건에 비해 테이블에서 비스킷을 먹는 동안 약 세 배 이상 더 자주 부스러기를 치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들에서 참여자들은 냄새가 자신의 판단이나 행동과 어떤 관련성이 있다는 것에 대해 전혀 의식적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세제 냄새가 청소와 관련된 개념을 무의식적으로 활성화시키고, 이렇게 활성화된 개념이 청소와 관련된 미래 계획과 실제 행동을 유발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터프가이’를 순한 양으로 만든 것은 ‘집 냄새’

공기처럼 ‘집 냄새’는, 있을 때는 그 존재 자체를 의식하기 힘들다. 하지만 갑자기 결핍이 찾아오는 순간 그 존재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기숙사는 내게 가족과 함께하는 공간이 담고 있는 따뜻한 기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은 늘 쉽게 익숙해진다. 다시 통학을 하면서 집 냄새는 그저 집 밖과는 다른 특유의 냄새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이 ‘집 냄새’에 대한 추억을 일깨워준 사람이 바로 배우 최민수이다. 지난 4월18일 방송된 MBC의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최민수는 힘겨웠을 자신의 유년기를 그 특유의 덤덤한 태도와 말투로 털어놓았다. 그는 유명 배우였던 부모님이 두 살 때 이혼하면서 친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당대의 유명 배우였던 아버지 최무룡의 얼굴도 1년에 한 번 정도 명절에나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 얼굴도 고2 때 처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학창 시절 친구네 집에 놀러갔을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집 냄새’였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어울려 만들어내는 화목한 가정에서 나는 그 냄새가 너무나도 좋았다고 한다.

그가 이 ‘집 냄새’를 다시 경험하게 된 것은 결혼을 결심하고 캐나다에 있는 처가를 처음 방문했을 때였다. 공항에서 처음 만난 그에게 장인과 장모가 “아들아, 어서 와”라고 말하면서 끌어안아주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서 가장 완전한 축복을 받은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예전에 친구 집에 갔을 때 친구가 알아챌까 봐 조심조심하며 느꼈던 그 ‘집 냄새’를 이제는 마음껏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최민수는 “아내와 20년을 살아왔지만, 지금도 아내를 보면 가슴이 뛴다”라고 했다. 그는 “아내라는 그물 안에서 그물을 찢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그물 안 삶이 너무 행복하다”라고도 했다. 문자로 그대로 옮겨놓고 보니 닭살이 돋는 느낌인데, 그가 토로한 아내에 대한 감정은 문자 그대로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 이유는 그의 아내가 최민수에게 ‘자기 집 냄새’를 느끼게 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그가 어릴 적 그토록 갖고 싶었던 행복한 가정의 냄새와 유일하게, 그리고 너무나도 강력하게 연합된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집 냄새’를 느낄 수 있고, 그래서 그는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아내의 얼굴만 보아도 자동적으로 미소가 지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 우리는 누군가에게 어떤 냄새로 기억되고 있을까?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심리학의 힘 P: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11가지 비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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