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학이 밝혀낸 현대 문명병의 근원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2.04.28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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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변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유전자 특성 밝혀

문명이 낯선 인간 피터 글루크먼·마크 핸슨 지음공존 펴냄400쪽│2만원
최근 10대들의 집단 따돌림, 폭행, 자살 등 사건이 빈발해 충격을 주고 있다. 게다가 비만과 성인병은 연령 구분 없이 어린이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소아 비만 때문에 어린이들까지 성인병을 앓고 있고, 심혈관질환이나 정신질환을 앓는 어린이들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라서 어른들의 세계는 안녕하실까? 의술이 발달하고 생활 환경이 개선되면서 평균 수명은 늘어났지만 건강하고 넉넉한 노년을 누리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왜 21세기 첨단 시대 평화로운 국가에 사는 현대인들조차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두 명의 세계적인 진화의학자이자 발생생물학자는 <문명이 낯선 인간>(원제 : Mismatch)을 펴내며, 현대의 문명병과 사회 문제가 인류가 처한 환경의 변화 속도와 생물학적 적응 속도 간의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해 이목을 끌었다. 현대에 들어 문명의 발달은 가속도가 붙었지만 사람들 개개인이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에 병든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현대인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미스매치 패러다임’(어긋남의 틀)을 통해 새롭게 바라보라고 주문하면서, 그렇게 한다면 새로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저자들의 기본 전제는, 인간의 몸과 마음이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과 맞물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는 거의 1만년 전 환경에 맞추어 선택된 것들이고 어머니 뱃속에서 발생 초기에 주변 환경과의 맞물림을 세밀하게 조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인간이 환경을 지나치게 빠르게 변화시켜서 자신의 적응 능력을 벗어나는 환경에 직면해 있다는 이야기이다.

‘미스매치 패러다임’에 따르면, 빨라지고 있는 사춘기와 관련한 문제들은 우리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아이들의 영양 상태가 점점 좋아지면서 신체 발달과 정신 발달 사이에 생겨난 성숙의 어긋남 때문이다. 저자들은 “지금 아이들이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떤가? 분명 훨씬 더 복잡해졌다. 성인의 구실을 온전히 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20대가 될 때까지는 21세기의 도시 정글에서 홀로 설 수 없는 것 같다. 우리의 진화 역사상 처음으로 심리·사회적 성숙이 육체적 성숙 이후에 일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노인 문제 또한 길어진 수명으로 인한 어긋남의 결과이다. 진화적 선택은 번식이 끝날 때까지만 작동할 수 있지만 인간이 그보다 오래 살고 있는 탓이다. 실제로 폐경 이후 기나긴 삶을 누리는 생물은 현대 인간이 유일하다. 저자들은 어머니 뱃속이나 생후 초반에 선택되어 평생 동안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길어진 인생 후반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저자들은 “비만과 당뇨병 그리고 심혈관계 질환 등은 대사의 어긋남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진화적으로 유전자에 설정된 우리 몸의 대사 능력이 풍요로워진 현대의 식생활 및 좌식 생활 양식과 맞물리지 못해 생긴 결과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과학의 결론은 낙관적이다. 미스매치 패러다임은 유전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고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미스매치 패러다임은 인류가 스스로 구축한 환경과 관련이 있으며, 둘의 모습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 해법이 만들어지면 인류의 미래는 많은 측면에서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현대인이 겪는 다양한 어긋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예측적 적응’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테면 태아나 신생아에게 예방적 치료를 제때 제공하는 것이다. 10대 청소년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사전약방문’에서 찾으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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