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효’와 ‘유증’이 재판 흐름 가른다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2.04.2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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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소송전 어떻게 전개되나 / 서면 공방 후 변론 절차 진행되면 양측 주장·증거 외부 공개될 듯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서울 서초구 삼성본관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삼성가 형제 다툼은 장외 감정 싸움을 마무리하고 법정 소송전으로 접어들었다. 형제 사이에 막말에 가까운 비방이 오가는 사이에 양측의 변호인단은 차분하게 법률 다툼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맹희씨의 법률대리인은 법무법인 화우이다. 화우는 소송 전문 법인으로 유명하다. 김대휘, 차동언, 유승남, 윤병철을 비롯해 판검사 출신 변호사 14명이 이 소송에 투입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이는 차동언 변호사이다. 차변호사는 지난 2월11일 중국 베이징에 체류하고 있는 이맹희씨를 만나 소송을 제기할 것을 권유한 인물이다. 사법연수원 17기로 대구지검 차장검사, 서울고검 부장검사,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장을 지낸 검찰팀 소속 소송 전문가이다. 지난해 10월12일 화우에 출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이 사건을 맡았다.

이건희 회장의 변호인단은 연합군이다.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의 강용현·권순익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의 윤재윤·오종한 변호사, 법무법인 원의 유선영·홍용호 변호사 등 여섯 명이 이건희 회장을 변호한다. 삼성그룹의 준법경영실이 그 뒤를 받친다. 준법경영실에는 판사와 검사 출신, 법무법인 김앤장 출신 변호사가 즐비하다. 준법경영실을 이끄는 이는 김상균 사장이다. 김사장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으로 2004년 삼성그룹에 입사했다.  

화우가 맹희·숙희 씨를 대리해 지난 2월 소송을 제기하자 이건희 회장 변호인단은 3월 하순 법원에 답변서를 제출했다. 지난 4월27일 세종은 법률 쟁점과 사실 관계에 대해 피고의 주장을 담은 준비 서면을 제출했다. 앞으로 서면 공방이 수차례 이어지고 나면 변론 기일이 잡힌다. 변론 절차가 진행되면 양측 주장과 증거가 외부에 공개된다. 변론이 충분히 오가면 결심이 이루어지고 선고가 내려진다. 이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 없다. 소송 내용이나 증인 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유증 없으면 치열한 법정 공방 불가피

소송의 쟁점은 시효와 유증이다. 이건희 회장측은 ‘2011년 6월 상속 재산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상속 회복 청구권의 시효가 끝났다’라고 주장한다. 국내 상속법은 ‘상속권자나 법정대리인이 상속권의 침해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상속권 침해 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지난 1987년 영면했다. 그동안 상속 재산이 차명으로 숨어 있어 상속이 이루어지지 않아 상속권 침해 행위가 있었으나 이미 25년이나 지났다. 따라서 이맹희씨가 상속권 침해 사실을 인지한 시점이 중요하다. 이건희 회장 쪽은 ‘지난 2008년 4월 이른바 삼성 특검 수사 발표로 선대 회장이 남긴 차명 재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국내외 언론에 공표되었으므로 당시 이맹희씨가 해당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2011년 4월이 지나면 3년이라는 시효가 완료된다. 이맹희씨 변호인은 ‘중국에 체류하느라 차명 상속 재산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으니 상속 회복 청구권의 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차동언 변호사는 “재판 전략상 자세하게 밝힐 수 없으나 재판에서 사실 관계를 입증할 증빙을 제시하면 승소할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시효가 소송의 쟁점이 되고 있으나 막상 재판에 들어가면 유증의 존재 유무와 실효성이 재판의 결과를 판가름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지금이야 소송 전략상 유증에 대해 언급할 수 없으나 재판이 진행되면 유증이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병철 회장이 위암 치료차 일본에 체류할 때 자녀를 불러 재산 분배와 관련한 유언을 서면으로 남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차변호사는 “재판에서 유증이 나올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유증은 엄격한 법적 요건을 갖춰야 하므로 유증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실효성을 면밀히 따져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병철 회장이 유증을 남겼을 가능성은 있다. 이맹희씨가 아버지에 반항하기 위해 부산에서 칩거할 때 이병철 회장은 박두을 여사, 창희씨, 명희씨를 보내 ‘서울에 올라와 무릎 꿇고 사과한 다음 다시 내 밑에서 일하라’라는 전갈을 보내면서 ‘유언장 내용을 바꾼다’고 협박한 적이 있다. 이맹희씨는 “유언장 내용을 바꾼다는 말은, 그 이전의 내용은 내게 유리하게 작성되어 있었으나 내가 아버지에게 굽히지 않고 버티면 유언장의 내용을 나에게 불리하게 바꾸겠다는 뜻이었다”라고 밝혔다. 법적 효력이 있는 이병철 회장의 유증이 나오면 재판은 끝난다. 이병철 회장의 재산을 이건희 회장에게 상속한다는 유언장이 나오면 나머지 상속인은 상속 재산 절반에 대해서만 상속을 요구하는 유류분 청구 소송이 가능하나 유류분 청구권의 시효는 이미 지났다. 하지만 이맹희씨는 유증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맹희씨는 저서 <묻어둔 이야기>에서 “유서라는 것을 만든 적이 없다. 아버지 유언은 모두 구두였고 우리 식구 외에 그것을 증명할 사람은 신현확씨가 유일하다”라고 밝혔다.

유증이 없다면 치열한 법정 다툼을 피할 수 없다. 법무법인 세종 소속 윤재윤 변호사는 “재판 전략이나 법률 쟁점에 대해 법정이 아닌 곳에서 거론하고 싶지 않다. 소송 절차에 맞춰 착실하게 변론을 준비하고 있다. 워낙 변수가 많은 것이 민사 소송인 터라 소송 결과를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소송 진행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변수가 불거질 수 있다. 상속 분쟁 전문 변호사 이 아무개씨는 “지금에야 감정 싸움 탓에 끝까지 간다고 호언장담하지만, 재판 양상에 따라 얼마든지 합의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철천지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던 형제 사이에 합의 금액이 나오자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된 적이 많다”라고 말했다. 이맹희씨측은 상속 재산 분배, 이건희 회장측은 지배 구조 유지가 목표일 것으로 추정된다. 양자 사이에 만족할 만한 합의안이 구체적으로 도출되면 극적으로 타협할 수 있는 것이다. 

소송 결과에 따라 삼성의 지배 구조에는 상당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이맹희씨가 승소한다면 나머지 형제까지 상속 재산 분할 청구 소송을 잇달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 ‘기함’인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이자 순환 출자 구조에서 핵심 고리 역할을 하는 삼성생명 지분이 형제자매 사이에서 나누어지는 사태는 이건희 회장에게 악몽이다. 이건희 회장 일가가 장악한 삼성의 지배 구조가 뿌리째 흔들리기 때문이다. 재판이 불리하게 진행된다면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이 호언장담한 대로 끝까지 갈지는 재판 양상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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