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 80억원대 비자금 조성한 유한양행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4.2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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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비자금 조성 지시한 내부 문건 단독 입수


유한양행이 조직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내부 문건과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검찰은 지난 2009년 초부터 1년6개월 동안 유한양행을 수사했다. 하지만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유한양행 역시 일부 언론을 통해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일부 지점의 문제일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사저널>이 입수한 문건은 회사가 조직적으로 비자금 조성에 개입했다는 점을 확인해 주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유한양행의 창업주인 고 유일한 박사는 지난 1971년 유한양행을 포함한 전 재산을 사회에 헌납했다. 자식들 역시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중 하나로 꼽혀왔던 회사가 유한양행이다. 하지만 조직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해온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유한양행측은 “오해가 있었다”라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인센티브 지급과 관련된 부서에서 작성한 업무를 개인 담당자가 기록한 것이다. 일부 지점에서 단합대회 등에 사용한 것이 와전되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입수한 내부 문건과 증언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새로운 리베이트 조성 방법의 필요성을 언급한 내부 기안서가 대표적인 예이다. 지난 2007년까지만 해도 유한양행은 병원 등에 제공하는 리베이트 비용을 ‘접대성 경비’로 처리했다. 영업사원들이 모은 간이영수증을 증빙 자료로 활용했다. 공정위는 지난 2007년 11월, 병원이나 도매상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유한양행에 2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서울 대방동에 위치한 유한양행 사옥. ⓒ 시사저널 유장훈

3년간 접대성 경비로 8백57억원 지출

이후 공정위 조사가 세금 탈루 의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유한양행은 전략을 수정했다. 문제의 기안서는 이때 작성한 것이라고 한다. 문건에 따르면 유한양행이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간 접대성 경비로 지출한 비용은 8백57억원에 달한다. 이 중 38%인 3백24억원을 간이영수증으로 처리했다.

간이영수증의 대안으로 거론된 방법이 영업사원에게 가짜 상여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영업사원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하지만, 실제 자금 관리는 회사가 하는 것이다. 문건에는 상여금을 통한 비자금 조성 과정이나 효과가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인센티브 지급 대상을 영업사원 전체로 할 것인지(1안), 특정 직급 이상(2안)으로 할 것인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었다. 집행 방법 역시 지급 내역서만 관리할 것인지(1안), 개인별로 이체한 후 회수할 것인지(2안) 등이 거론되었다. 문건은 새로운 방식을 도입할 경우 각종 세금으로 15%(15억원) 정도의 비용 증가를 예상했다. 그럼에도 간이영수증 처리보다 리스크가 적을 것으로 전망했다.

유한양행은 지난 2008년 1월부터 6월까지 영업사원들에게 거액의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월평균 15억원 규모로, 6개월간 88억원이 지급되었다. 영업지원팀장 명의로 작성된 내역서를 본 회계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인센티브 지급 비용은 10원대까지 계산했는데, 실지급액은 100만원대로 끊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의 한 내부 관계자는 “실지급액을 먼저 정한 뒤에 세금을 포함한 인센티브 비용을 나중에 계산해 반영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영업사원 계좌에 들어오는 인센티브를 회사에서 관리하다 보니 세금 문제가 대두되었다. 필요한 자금(실지급액)을 먼저 정한 뒤, 역순으로 세금을 더한 인센티브를 계산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라고 귀띔했다.

이를 위해 부서별로 구체적인 역할까지 배정했다. 문건에 따르면 비자금 관리는 영업지원팀이 필요한 자금 규모와 직원 명단을 인사총무팀에 통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인사총무팀은 세율 및 건강보험료율을 더한 금액을 통보하게 된다. 영업지원팀은 다시 전표를 작성해 재무팀에 보낸다. 재무팀은 이 전표대로 당좌를 발행한다. 영업지원팀은 다시 사원별 지정 계좌에 입금하고 최종 결과를 인사총무팀에 통보하는 방식이다. 세금 정산을 위한 예시까지 사례별로 제시하는 등 조직적으로 비자금 조성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유한양행의 한 전직 간부는 “비자금을 계산하는 프로그램은 외부에 반출할 수 없다. 회사에서도 일부 컴퓨터가 아니면 관련 문서가 열리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게 진행되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조성된 비자금은 병원이나 도매상의 리베이트 비용으로 사용되었다. 이로 인해 유한양행은 2008년 상반기 매출이 23%나 급증했다. 2000년대 들어 빼앗긴 매출 2위 자리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유한양행은 고 유일한 박사가 회사를 기증한 사회적 기업이다. 일부 경영진이 파행 경영을 하고 관행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함으로써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비자금 문건’을 작성할 당시 전·현직 간부들이 대거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문건 작성 당시 열린 대책회의에는 김 아무개씨, 진 아무개씨, 송 아무개씨, 또 다른 김 아무개씨가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결제는 당시 마케팅 총괄이었던 이 아무개씨가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검찰에서도 일부 임원들의 계좌로 수상한 돈이 들어온 사실을 확인했다. 담당 검사에게 직접 들은 얘기이다”라고 귀띔했다.

검찰은 1년6개월 동안 유한양행을 수사하고도 사건을 덮었다. 대검 중수부는 지난 2008년 11월 남부지검 형사6부에 사건을 배당했다. 2009년 3월부터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었다. 내부에서 제보한 자료와 함께 증언까지 확보한 상태였다. 2009년 5월에는 우선적으로 압수수색을 벌일 간부의 자리와 빌딩 내부 구조까지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수사팀을 만났다는 한 내부 관계자는 “유한양행과 관련된 사람들의 계좌를 1천명 가까이 추적했다고 들었다. 주임검사의 의욕이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유한양행 관련 문건. ⓒ 시사저널 박은숙

‘내사 종결’한 검찰의 부실 수사 논란도

<시사저널>이 입수한 담당 검사의 녹취록을 통해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이 검사는 녹취록에서 “준비 과정에서 수사팀을 음해하고 약점을 찾아 공격하려는 무수한 시도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다 예상해서 준비했다”라고 언급했다. 이 검사는 이어 “수사가 지연되고 있지만, 의지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영업사원(제보자)이 회사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신속하게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사는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압수수색 일정도 계속해서 미루어졌다. 결국 검찰은 1년 반 동안 유한양행 비자금 의혹을 조사하고도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했다. 유한양행 내부에서는 적지 않은 의문이 제기되었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검찰에 제보된 문건은 내부에서 직접 작성한 것이다. 비자금 조성에 관여했거나 목격한 인사들의 증언까지 있었다. 수사 의지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밝힐 수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검찰의 부실 수사 혹은 봐주기 수사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김 아무개 검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자는 여러 차례 부산의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메시지도 남겼지만 4월27일 현재까지 답이 없었다.

유한양행측도 “유한양행이 당시 제약업계 관행처럼 리베이트를 조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비자금 사건이 불거지면서 유한양행은 리베이트 관행을 없애고, 지금은 다른 어느 제약업체보다 투명하게 회계 처리를 하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유한양행의 수상한 자금 흐름, 국세청도 조사 중

유한양행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사실이 있다. 국세청 조사2국은 지난 3월 초부터 유한양행을 상대로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한 차례 조사 기간을 연장한 상태이다. 이 과정에서 국세청은 유한양행의 수상한 자금 흐름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측은 현재 “조사 건과 관련해 할 말이 없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유한양행측은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5년 만에 진행되는 정기 세무조사이다. 비자금과는 무관하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한양행은 최근까지도 카드깡을 통해 리베이트를 조성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내용은 <시사저널>이 입수한 한 지점의 회의 녹취록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문제의 회의는 영업사원의 카드깡 문제를 논의하는 대책회의 자리였다. 회의를 주도하는 한 간부는 “일부 영업사원들이 폐업 신고한 가게의 전표를 제출하면서 국세청의 표적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불명 자료가 떨어지지 않게 하려면 카드 전표 주소하고 가맹점하고 반드시 확인하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 탓에 국세청 조사에서 카드깡 문제가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회사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다.

제약업계 일각에서는 국세청 조사가 시작된 이면에 숨은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제약업계와 정부는 최근 갈등을 빚어왔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잇달아 진행 중인 의약품 약국외 판매와 약가 제도 개편안은 제약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대한약사회는 지난해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장관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러한 반발에 대한 손보기 차원에서 유한양행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유한양행 내부에서도 “이번에 제대로 걸린 것 같다”라는 말이 확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유한양행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07년부터 리베이트 조성 방식을 바꾸기는 했지만, 내부적으로 일정 부분 세금을 추징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기 세무조사가 오랜만에 진행된 만큼 2006년 자금이 걸린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유한양행 안팎에서는 국세청 고위직 출신인 한 인사가 유한양행측을 돕기 위해 국세청 인사들을 만나러 다닌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한양행측은 “불명 자료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확한 주소와 가맹점을 확인하는 차원이었다. 국세청 조사 역시 성실히 받고 있는 만큼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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