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비리, 고질적 쇠사슬 끊어라
  • 전인평 | 중앙대 명예교수 ()
  • 승인 2012.04.2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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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중징계 받았던 교수가 비리 계속 저질러 ‘경악’…자정 능력도 의심받을 처지

이 글을 쓰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동업자끼리 너무 한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도 들고 ‘이번 기회에 음악계는 고해 성사를 하고 털고 가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든 이번 사건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는 물론이고 음악계 전체가 얼굴을 들 수 없게 되었다. 한예종 이호교 교수의 비리는 음악대학 입시 비리 가운데 최악의 사건이다. 이처럼 대담하고 지속적으로 장기간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도 놀랍거니와 2004년 중징계를 받고서도 비리가 계속되었다고 하니 경악스러운 일이다.

제자에게 가짜 싸구려 악기를 1억8천만원에 강매하고 접착제로 붙인 활을 2천5백만원에 사게 하고 학부형에게 2억6천만 원을 받아냈다고 하니, 오간 돈의 규모가 일반 서민 입장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말하자면 이 사건은 시장 장사꾼이 가져야 할 상도의도 없는 희대의 사기 사건이라고 하겠다. 이 사건 소식을 접하고 ‘그토록 공정 사회를 외쳐왔지만 도무지 방법이 없구나’ 하는 전국 학부형의 좌절감이 얼마나 클지 가늠이 안 될 지경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자체 입시 관리’한다더니 ‘부정 모의’ 혐의

그동안 음악대학 입시 부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처방이 나왔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번 사건으로 그동안의 처방이 도로아미타불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콘트라베이스 같은 특수 악기는 입학 시험 전에 몇 사람이 입학 시험을 준비하고 있고, 어느 학교에 어떤 학생 몇 명이 응시할 것이라는 점이 미리 파악된다. 그래서 서로 경쟁이 심해지지 않도록 조절하고 배려한다. 상황이 이렇게 뻔하다 보니 입시 부정을 막기 위한 어떤 방법을 써도 효과가 나기 어렵다. 학생과 채점 교수 사이에 칸막이를 한다고 하지만 소리를 들으면 누구의 연주인지, 어느 선생의 제자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더구나 이번 한예종의 경우처럼 채점 교수들이 어느 특정 교수가 점수를 주면 이것을 참고로 다른 채점 교수도 점수를 부여하는 상황이었다면 아무리 칸막이를 쳐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이처럼 콘트라베이스 전공 교수가 준 점수를 참고해 바이올린 교수가 콘트라베이스 입시생의 점수를 주는 관행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바이올린 교수가 주는 점수를 콘트라베이스 교수도 참고했을 개연성이 있다. 상호 공생 관계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다.

그동안 한예종은 “우리가 가르칠 학생은 우리가 뽑는다”라는 명분으로 자체 입시 관리를 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심사위원인 동료 교수들은 ‘우리가 남이가’ 하는 생각으로 부정을 모의할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일부 음악대학에서는 입시 채점에서 몇 대학이 팀을 구성하고 입시일 전날 밤에 교수에게 전화로 ‘어느 학교 입시 채점을 하도록 통지’하는 방법도 쓰고 있다. 이 방법은 채점 교수와 입시 학생과의 관계를 차단하는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이번 일에서 두드러진 점은 엉터리 악기의 고가 강매 사건이다. 이러한 일은 악기상의 협조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동안 악기상은 가게 한 쪽에 연습실을 만들어놓고 교수들에게 무상으로 연습실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면 이 연습실은 수험생에게는 입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고, 교수는 무료 강의실 장소였으며, 악기상은 악기를 팔 기회도 얻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장소였다. 그래서 지도교수가 학생에게 직접 말하기 어려운 것도 악기상이 전해주기도 한다. 어떤 교수는 학생에게 악기를 소개하고, 교수는 악기상으로부터 리베이트를 챙기기도 한다. 이런 관계는 워낙 관행적으로 일이 벌어지다 보니 자칫 비리 정보가 밖으로 샐 위험이 있다.

문화관광부도 책임지고 특단의 조치 취해야

지난 4월24일 박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입시 비리 사건과 관련해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한예종 음악원은 이번 일로 자정 능력을 의심받게 되었다. 2003년에 있었던 일이 재발했다는 점, 이러한 비리가 꾸준히 지속되어왔다는 점, 이런 부정이 동료 교수의 묵인 내지는 방조로 지속되었다는 점 등을 보면 음악원은 할 말이 없게 된 셈이다.

문화관광부와 한예종은 이같은 입시 부정에 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부정을 저지른 교수는 파면해 다시는 교단에 서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고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한 학생은 입학을 취소해야 한다. 한예종이 이번에 입시 부정을 막으려는 간절함이 있다면 심사위원 구성을 전국적으로 확장해 입시 전날 통보해 채점을 하도록 하는 방법을 쓸 수도 있다. 이런 조치는 입시생과 채점 교수의 거래를 막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런 일에는 감독 기관인 문화관광부의 소홀한 관리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호교 교수에 대한 2004년의 징계가 너무 가벼웠던 것이 이번 일이 벌어지게 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예종과는 먼 지역의 다른 대학에 소속되어 있고 전공이 다른데도 이미 1년 전부터 이에 관한 소문을 듣고 있었다. 한예종은 이러한 소문이 돌 때, 일찌감치 자체 조사를 하고 징계위원회를 소집해 처리했더라면 이처럼 음악계 전체의 망신을 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예종은 이렇게 사법 당국의 조사가 발표되기 전까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한예종은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때이다. 당분간 자체 입시 업무 관리를 반납하고 공동 입시 제도를 도입할 만하다. 한예종은 입시 전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보관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조치는 필자가 몸담고 있는 중앙대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었다. 한예종은 부정 방지책으로 수험생에게 ‘불법 과외를 받지 않았다’라는 확인서를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에 ‘만약 불법 과외를 받은 사실이 적발되면 입학을 취소한다’라는 강력한 문구를 더 넣어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

한예종은 교육부 소관이 아니고 문화관광부 소속이다. 이 학교는 이러한 점을 십분 이용해 특별한 교과 과정을 운영하고 있고 또한 다른 국공립학교보다 많은 예산을 집행하는 특혜도 받고 있다. 이제 한예종은 엘리트 의식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입시 부정에 관한 문제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고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로 귀착된다. 1970년대 이전 음악대학 입시에서는 교수가 수험생을 직접 지도하고 입시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을 담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는 제도가 너무 허술해 부정을 하려면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그런데도 시험이 끝나고 보면 공주에서 또는 청주에서 온 시골 학생이 입학했다. 이런 동료를 보고 친구들이 “야! 너 어떻게 들어왔냐”라고 하면 대답이 “나도 모르겠어, 사무 착오로 합격한 모양이야”라고 농담하던 일이 생각난다. 어느 음대 교수가 사석에서 “음악대학 하면 비리의 온상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지만, 우리 애도 떨어졌어요”라고 한 말도 들었다. 말하자면 이때는 제도는 허술했지만 채점 교수들이 일말의 양심을 지켰던 것이다.

음악계에는 음악예술을 위해 헌신적으로 가르치고 활동하는 음악인이 수없이 많다. 이번 사건과 같은 비리 교수는 극히 일부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일부 지방에서는 정원을 못 채워 애를 태우는 대학이 한둘이 아니다.

이번 일로 많은 순수한 음악가를 비리 교수로 싸잡아 비난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소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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