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계, ‘박근혜의 한계’를 보았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2.04.2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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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서 드러난 것은 ‘박근혜 필패론’…‘비박’ 후보 단일화 이루면 상황 달라질 수도”

(왼쪽부터) 김문수, 정몽준, 이재오. ⓒ 시사저널 이종현·유장훈·우태윤

뜻밖의 상황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느닷없이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4월20일 밤, 측근들과의 심야 회동을 통해 결심을 굳히고,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공식화했다. 4·11 총선 직후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1백52석의 과반수 의석을 달성한 새누리당의 승리는 곧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대선 후보 등극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만했다.

내심 ‘총선 패배 후 박위원장의 책임을 묻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던 김문수·이재오·정몽준 등 이른바 ‘비박(非朴)’ 그룹의 여권 ‘잠룡’들은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 보였다. <시사저널>이 총선 직후인 4월18일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정 전 대표(0.9%)와 김지사(0.7%)의 대선 후보 적합도 지지율은 1%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 전문가들 역시 “여권 내 ‘박근혜 대항마’로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나 정운찬 전 총리를 새롭게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김태호·정운찬까지 다 포함한 세력 갖춰야”

하지만 친이계 쪽의 총선 분석 결과는 달랐다. 표면적으로는 ‘박근혜 승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박근혜 한계론’이 명확히 드러나는 선거였다는 것이다. 김문수 지사의 측근들은 4월20일 총선 이후 행보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한 측근 인사는 “그 자리에서 논의는 세 방향으로 갈렸다. 도지사직을 던지고 대권 도전을 선언해야 한다, 당분간 도지사직을 유지하면서 대권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일부였지만 대권 도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었다. 김용태·차명진 의원 등이 강력한 목소리를 내면서 당장 대권 도전을 선언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라고 전했다.

김용태 의원은 “어제(4월24일) 보니 김지사가 다시 도지사직 유지 가능성을 언급했던데, 물론 도민에 대한 미안함과 도정 혼란에 대한 책임감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좀 더 큰 도전을 위해서는 도지사직은 지금이라도 당장 사퇴하는 것이 옳다. 배수진을 치고 뛰지 않으면 힘든 판 아닌가.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과 같이 향후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 심화될 것이고, 그렇다면 친서민 복지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김문수와 박근혜’ 둘 중 과연 누가 더 친서민에 가까운지,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언급한 김지사의 측근 인사는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 위원장의 표의 확장성은 최대치를 기록했다. ‘여소야대 가능성’의 위기 속에 영남과 보수층이 똘똘 뭉쳤고, ‘김용민 막말 파문’과 통합진보당 경선 조작 의혹 등 야권의 ‘도움’으로 수도권과 강원·충청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그럼에도 총 득표율이나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을 보면, 새누리당이 야권에 뒤진다. 박위원장의 확장성 한계가 분명히 드러난 셈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박위원장이 설령 당내 후보 경선은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대선 본게임에서는 야권 단일 후보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면 분위기는 달라질 것이다. ‘필패’가 분명함에도 대선에 나선다면, 어쩔 수 없다. 당의 입장에서는 다음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이 인사가 말한 ‘다음’이라는 표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박위원장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출마해서 12월 대선에서 낙선할 경우, 선장을 잃고 혼란에 빠진 당을 수습할 새로운 당 지도 체제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서는 2017년 대선에서 정권의 재탈환을 노리는 ‘차차기’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이 인사는 “물론 그것도 포함된다. 그런데 지금은 현실적으로 다소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8월 또는 9월 경선에서 대역전극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것이 정치이다”라고 말했다.

정몽준 전 대표측 역시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 ‘비박’ 세력들이 지금부터라도 대권 도전을 선언하고 각자 도생해 지지 기반을 갖춘 다음에 ‘단일 후보’를 내면, 박위원장과의 1 대 1 맞대결 구도는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그 세력에는 김태호 전 지사, 정운찬 전 총리도 포함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친박계 “2007년 ‘친이’와 지금 ‘친이’는 달라”

김지사의 한 측근은 “일단 경선 전까지 각자 지지율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최소한 5% 선은 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자연스럽게 교통정리가 될 것이고, 결국에는 ‘박근혜 대 김문수’ 구도로 갈 수 있다”라고 밝혔다. 김지사측을 비롯한 친이계의 이런 노림수는 친박계에서도 충분히 간파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친박계의 한 핵심 전략가는 “사실 김지사나 이 전 장관 등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카드이다. 어떤 명분을 들이대서라도 박위원장의 대권 가도에 도전장을 내밀 수밖에 없다. 단순히 보면, 경우의 수는 네 가지이다. 저들이 당내 후보 경선에도 이기고 대선에서도 이기는 것, 경선에는 이기고 대선에서는 지는 것, 그리고 박위원장이 대선에 나가서 이기는 것과 대선에서 지는 것 등이다.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저들의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다. 박위원장이 만약 경선이나 대선에서 떨어지게 되면 더 이상 ‘차차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면 조직력과 응집력이 강한 친이계가 향후 당내 헤게모니를 쥐게 된다. 설령 박위원장이 대권을 거머쥔다 하더라도, 집권 여당 내에서 ‘비주류’로 똘똘 뭉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저들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꽃놀이패’인 셈이다”라고 분석했다.

이 근거로 그는 친박계의 모래알 같은 조직력을 들었다. 그는 “지금의 친박계 조직은 과거 상도동계(김영삼계)나 동교동계(김대중계)에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조직의 체계나 서열·질서도 없고, 결속력이나 확장성도 없다. ‘보스’(박위원장을 지칭)가 무너지면 친박계라는 인사들 대다수는 아마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 것이다. 상도동계나 동교동계는 보스(김영삼·김대중)가 좋아서 모여 있던 것이지만, 친박계의 경우에는 박위원장이 좋아서라기보다는 MB가 싫어서, 이재오가 싫어서 모여 있는 인사가 더 많다. 반면 이 전 장관이나 김지사 등은 과거 1990년대 민중당 시절부터 끈끈하게 엮여 온 동지 의식이 강하다”라고 설명했다.

친박계 내의 또 다른 핵심 인사는 “경선에서 당연히 우리가 이길 것이고, 따라서 저들은 차기가 아닌 차차기를 노리고 들어온 것일 뿐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경선에서 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는 “2007년의 ‘친이’와 지금의 ‘친이’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당시는 야당의 처지였고, 따라서 저들이 수집한 정보도 소문이나 찌라시(전단지)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저들은 지난 4년간 정권을 장악하며 온갖 고급 정보를 독점했다. 저들이 지금 무슨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뭔가 (박위원장의) 약점을 보았기 때문에 총선 결과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권 도전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라고 경계했다. 최소한 여권은 총선을 계기로 대선 역학 구도가 정리된 것처럼 보였으나, 섣불리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아직 일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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