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고받는 ‘친박’분열의 늪 빠지나
  • 감명국·이승욱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2.04.2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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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측근 문제를 둘러싼 내분으로 시끄럽다. 박위원장의 측근 중 측근인 최경환 의원을 빗대어 표현한 ‘최재오’라는 말이 나오고, 최의원이 ‘오버 액션’을 보이자 다른 친박 의원들이 그를 집중 공격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박근혜 위원장을 향해 방만한 측근 운용이나 쓴소리를 싫어하는 스타일이 문제라는 비난까지 터져나오는 상황이다. 친박계를 덮친 내분의 회오리는 어디로 향할까.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세론’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박근혜와 일곱 난장이’로까지 비유될 정도로 그동안 대권 주자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단독 선두를 질주하던 ‘박대표’(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칭)가 ‘안풍(安風)’에 맥없이 쓰러진 것이다. 당시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 직후 안철수 원장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친박계 내부에서도 ‘올 것이 왔다’라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그때 최경환 의원 쪽에서 움직인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의도 국회 앞에 별도의 사무실을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추진되었지만, 사실상 박대표의 예비 캠프 성격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거기서 박대표의 일정과 메시지 및 홍보 전략 등을 담당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러자 ‘박대표의 뜻이다’ ‘아니다’라며 친박계 내부는 또 박대표의 의중을 파악하느라 우왕좌왕했다. 결국 사무실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박대표의 뜻이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때부터 친박계 내부에서 ‘최경환 의원이 오버한다’는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박위원장에게 왜곡된 보고 올라가는 듯”

친박계 한 핵심 인사가 지난 4월25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들려준 일화이다. 이날 대화의 주 내용은 이른바 ‘박근혜의 눈과 귀를 막는 주변 인물’들에 관한 것이었고, 자연스럽게 최근 도마에 오르고 있는 친박계 중진 최경환 의원이 화제에 올랐다. 이 인사는 “그렇다고 최의원이 대단하게 설쳐댄 것도 아니었고, 박대표 역시 최의원에게 눈에 띌 정도의 각별함을 나타낸 것도 아니었다. 원래 박대표는 특정인에게 힘을 몰아주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최의원도 충정 차원에서 그랬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돌출 행동으로 비칠 만한 일을 하다 보니까 다른 친박계 인사들의 눈 밖에 난 것이다. 친박계의 지금 분위기가 딱 이렇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앞서 친박계의 유승민 의원과 이혜훈 의원 등은 박근혜 위원장의 ‘측근 병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연이어 내며 ‘인의 장막’ 논란에 불을 지폈다. 유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쓴소리(하는 사람들)도 박위원장을 만나야 하는데, 만나기는커녕 전화 통화도 어렵다”라고 불만을 드러냈고, 이의원은 “박위원장에게 올라가는 보고가 사실과 다르게 가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내 짐작이다”라며 박위원장 주변의 보고 라인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했다.

(왼쪽부터) 최경환, 이한구, 유승민. ⓒ 시사저널 유장훈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비주류에서 주류로 덩치가 커진 친박계의 내분이 시작되었다”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친박 내부에서도 ‘개혁파’로 분류되는 유승민·이혜훈 의원과 ‘친박 보수파’로 지목되는 최경환·이한구 의원 등 박위원장 측근 그룹의 노선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도 노선 갈등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최재오’(최의원을 친이계 ‘좌장 격’인 이재오 의원에 빗댄 표현) 논란이 한창일 때쯤 김 전 위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박위원장의 대표적인 경제통이라고 하는 사람이 경제 민주화에 약간의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시장 경제에 맞지 않는다는 둥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라며 공개 비판했다. 김 전 위원이 거명한 ‘경제통’ 인사는 최경환·이한구 의원 등을 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의원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식경제부장관을 지냈고, 이의원은 ‘박근혜 경제 가정교사’로 통하고 있다.

‘얼음공주’로 불릴 정도로 평소 냉정함을 유지하던 박근혜 위원장도 친박의 내분이 확산되는 분위기로 이어지자 이례적으로 흥분된 목소리를 표출했다. 박위원장은 4월25일 충북 청주시  충북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총선이 치러질 때는 가만히 있다가 끝나자마자 이런 식으로 분열을 일으키는 일은 국민들한테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구태 모습을 보이면 용서를 빌 데도 없다. 당은 자멸하는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박위원장의 발언은 자신이 맞닥뜨린 친박계 내부 갈등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박위원장의 ‘눈과 귀를 막는 인의 장막’ 논란에서 시작한 친박계 내부 갈등은 향후 박위원장의 대권 가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결국 박위원장은 드라마틱한 대역전극을 벌인 ‘총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친박계 내부 갈등이라는 새로운 심판대 위에 서게 되었다. 친박계 갈등이 당장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지만, 박위원장의 의사소통 스타일과 대선 국면이라는 시기적 특성을 고려하면 친박계 내부 갈등이 언제든 유혈이 낭자하는 ‘친박 내전’으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쓴소리 기대했던 강창희마저 주저앉아

박위원장을 둘러싼 친박계 내부의 갈등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친박계 한 인사는 “박위원장 특유의 측근 관리 방식이 친박계 내부 갈등을 촉발할 여지가 적지 않았다. 계파 내의 좌장이나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박위원장의 스타일상 방만하게 측근을 활용하다 보니, 내부 갈등이 쉽게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박위원장의 측근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최측근을 자처하는 사람들끼리 알력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폐쇄적인 소통 방식과 독단적 의사 결정을 한다’는 지적을 받는 박위원장의 의사 결정 스타일을 감안하면 이러한 갈등의 깊이는 더 깊을 수밖에 없다. 실례로 박위원장이 측근 의원에게 정책 자문을 구할 때는 다수의 측근에게 동일한 일감을 준다고 한다. 당연히 자신의 안이 반영되지 않거나, 다른 의원의 안이 자신도 모르게 반영되는 상황이 되면 해당 의원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측근 그룹들이 불필요한 신경전을 벌이거나, 심리적 앙금이 생기는 경우가 잦을 수밖에 없다. 친박계 내부에서는, ‘최재오 논란’의 당사자였던 최의원도 최측근 자리를 확고히 하려다 친박계 내부의 반발을 샀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4·11 총선을 거치면서 상당수 친박계 중진 의원이 사라졌다. 무주공산이 된 중진급 최측근 자리를 최의원이 차지하기 위해 자가발전을 하다가 반발을 산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쓴소리’를 아예 차단하는 듯한 박위원장의 권위적인 소통 방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친박 개혁파’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이번 총선에서 6선에 성공한 강창희 전 장관의 향후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많았다. 육사 출신인 강 전 장관 역시 강직함이 강점인 사람인지라 주변에서 이런저런 주문도 많았다. 박위원장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인사가 드물기 때문이다. 당 대표에도 제격이고, 캠프를 총괄하는 ‘좌장’ 역할도 기대할 만했다. 그런데 강 전 장관이 총선 직후 박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제 거취는 대표님에게 일임하겠다’라는 뜻을 밝혔다는 얘기를 듣고 주변에서 다들 탄식이 이어졌다. 이상하게 박위원장 앞에서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다들 꼬리를 내리고  만다”라고 씁쓸해했다.    

“친박 인사들이 스스로 몸 낮춰야” 비판도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4월25일 ‘대전-충남 총선 공약 실천본부 출범식’에 강창희 시당위원장(오른쪽)과 함께 참석했다. ⓒ 뉴스뱅크 이미지
아무튼 절대적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있는 박근혜 위원장이 강력한 경고를 보내면서 내분 사태는 일단 수습 국면을 맞고 있다. 박위원장 주변을 비판했던 유승민 의원과 이혜훈 의원 모두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경환 의원도 “측근이 공천권을 행사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점과 폐해를 잘 안다. (내가) 경제 민주화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한) 김종인 전 위원과도 오해를 풀었다”라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계파 내 갈등 소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8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 국면에서 측근 간 알력 다툼은 언제든 다시 터져나올 수 있는 소재이다. 친박계 측근끼리 맞붙는 친박 갈등은 호시탐탐 박위원장을 노리고 있는 친이계 등 ‘비박(非朴)’ 세력에게 좋은 빌미가 될 수 있다. 여권의 대권 경쟁자인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4월26일 세종로 국정포럼 강연에서 기자들과 만나 “베일 속에 가려진 신비주의적 방식으로 (당의)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누가 내정을 하는지, 또 어떻게 결정을 하는지 논란이 되는 새누리당의 현실이 걱정이다”라고 박위원장과 친박계를 향해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덩치가 비대해진 친박계로서는 ‘비박 연대’ 세력에 이어 ‘내분’이라는 안팎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 위기에 놓였다. 이상돈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측근들의 충성 경쟁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점을 박위원장은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친박계 갈등을) 잘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 친박계 인사들이 총선 승리에 도취되어 몸을 낮추지 않으면 (박위원장이) 다시 고전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박근혜 캠프, 전당대회 직후 최소화된 규모로 꾸려질 것”

“5월15일 전당대회 직후 (박근혜) 캠프가 공식 출범할 것이다. 그러나 그 규모는 최소화하게 될 것이다. 지난 2007년의 경선(이명박 대 박근혜)은 워낙 치열한 접전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지 않은가. 굳이 요란스럽게 캠프를 꾸릴 필요가 없다.”

오래전부터 친박계 내부에서 조직을 관리하고 있는 한 핵심 인사의 전언이다. 새누리당 내 경선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묻어난다. 이미 대세는 판가름 났다는 투이다. 기자와의 대화 중간중간 “방심은 금물이다”라는 얘기를 의식적으로 끼워넣었지만, 역시 수사에 불과한 느낌이다. 이미 기존에 마련되어 있는 여의도 사무실을 자연스럽게 공식 캠프로 전환하면 되고, 그 기능도 홍보와 언론 담당 그리고 메시지 기능만 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당 공식 기구가 있는데, 굳이 캠프를 크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뉘앙스도 내비친다. 당권 장악까지 이미 확신하고 대권 플랜을 그리는 모습이었다.

친박계측에서 내다보는 향후 대선 일정은 5월 말 캠프 출범, 8월 경선에서의 공식 후보 선출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9월에 경선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음을 내비친다. 야권의 상황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이다. 그 사이, 즉 뜨거운 여름 3개월 동안은 민심 행보를 하면서 정책 발표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12월 대선의 화두가 민생과 복지가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인식이 동일하다. 따라서 요란한 경선보다는 조용한 경선이 더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5년 전 네거티브전이 난무했던 치열한 경선의 상처가 너무 컸던 탓도 있다.

대신 수도권과 2030세대 표를 흡수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별도의 대책을 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TF팀과 같은 별개 조직을 가동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들의 표를 얼마나 공략할 수 있느냐가 향후 대권의 향배를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얼음공주’ ‘귀족적’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상쇄시키기 위한 이미지 메이킹 전략을 담당하는 별도의 전담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금의 분위기로 보아서는 ‘박근혜 캠프’를 따로 관장하는 조직의 ‘2인자’나 ‘좌장’의 출현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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