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 박지원, 일 낼까 덧 낼까
  • 구혜영│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2.04.28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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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당대회 앞두고 영남·친노와 호남·비노 ‘전격 결합’…당내 대권 경쟁 판도 크게 흔들릴 듯

4월26일 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민생공약실천특별위원회 1차 회의에서 이해찬 전 총리(맨 오른쪽)가 발언하고 있다. 맨 왼쪽은 문재인 상임고문. ⓒ 시사저널 이종현

민주통합당 안팎에서 이해찬 전 총리를 주목하는 시선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야권의 최고 전략가라는 ‘닉네임’에 어울리는 충격적인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해찬 당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라는 투톱 시스템을 내걸었다. 두 사람 모두 6월9일 전당대회를 준비해온 유력 당권 주자들이었다.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참여정부 초기 대북송금 특검 사건 이후 갈라질 대로 갈라졌던 관계이다. 민주당 통합 과정에서도 갈등 관계가 지속되었다. 이 전 총리는 시민사회와 민주당의 통합을 주도했지만,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민주당 중심의 통합을 고수했다.

정치적 뿌리도 다르다. 이 전 총리는 참여정부와 영남을 정점으로 하는 ‘친노’ 그룹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반면 박 전 원내대표는 국민의 정부와 호남을 주축으로 하는 ‘비노’ 그룹의 상징이다. 이쯤 되면 원내대표 선거에 임박한 즈음, 이 전 총리가 박 전 원내대표에게 차기 원내 수장을 제안한 까닭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킹메이커’ 이해찬의 구상에 당내 반발 거세

그래서 이 전 총리의 이번 구상은 그동안의 정치적 역할에 견주었을 때 영향력과 후폭풍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당 안팎의 정치 지형을 송두리째 뒤바꿨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킹메이커’ 이해찬의 생각은 무엇일까. 이 전 총리의 최측근은 “우리 지지층을 결집하고 당의 노선을 정책화해 이를 국정 방향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 이 전 총리의 컴백 구상이다”라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총리는 친노 그룹 중심의 대선판을 그려왔다. 공·사석에서 공공연히 ‘문재인 대망론’을 말해왔다.    

그러나 이 전 총리의 다짐과 달리 민주당은 총선 이후 ‘계파 갈등’에 휩싸였다. 주 전선은 공교롭게도 ‘친노 대 비노’ 구도로 형성되었다. 이 전 총리로서는 중층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지형이다. 총선 이후 친노 책임론이 불거진 데다, 새누리당은 연말 대선까지도 전·현 정권 책임론을 몰고 가려 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당 혁신을 위해 정체성을 강화하고 당의 문호를 개방하는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데 계파 대립 구도가 골이 깊어져 고민에 빠졌다”라고 귀띔했다.

 이 전 총리가 박 전 원내대표에게 차기 원내 수장을 제안한 근본적 배경이다. 비노 그룹이면서 호남을 대표하는 박 전 원내대표와 손을 잡으면 불필요한 계파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실제 이 전 총리는 제안에 앞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후계자들이 싸우면 안 된다. 호남 소외론을 그냥 두면 안 된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리는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과 한명숙 전 대표 등 친노 핵심 인사들과 사전 조율을 마쳤다. 야권 통합을 측면 지원했던 ‘희망 2013·승리 2012 원탁회의’ 원로들에게도 이같은 구상을 알렸다. 당권 도전 의지가 강했던 박 전 원내대표는 선뜻 수락하지 못하다가 원내대표 선거 후보자 등록 마감 전날 이 전 총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련의 ‘현실화’ 작업은 두 사람 모두에게 명분이 필요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역대 민주 정부의 상징 인사들인 만큼, 자칫 ‘세력 연대’로 비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 전 총리의 우려가 짐작된다. ‘친노 대망론’을 위해서는 호남의 지원이 절실하다. 이 전 총리로서는 총선 전후 확산된 ‘친노 대 비노’ 갈등이 ‘비호남 대 호남’의 대결로 치닫는 부담을 줄이려 한 뜻이 읽힌다. 게다가 전통적 지지층이 뒷짐 지는 상황은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박 전 원내대표가 지원하지 않으면 2002년 대선의 후단협 파문과 같은 일이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 친노 중심의 대선 승리 판을 그리면서 원내와 호남에서 ‘박지원 원내대표’의 역할을 요구했을 법하다.

반면 박 전 원내대표는 세력은 있지만 유력 대선 주자가 없는 상황이라 후보층이 두터운 친노와 정치적 연대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호남을 고리로 수도권과 영남 중심의 대선 구도를 깨보려 했을 것이다. 마침 실패한 전직 지도부가 전당대회에 나서려니 명분도 없던 차였다. 박 전 원내대표는 “당 대표 해보았자 대선 후보가 정해지면 허수아비이다. 원내대표 역할이 더 크고 중요하다”라고 동료 의원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다른 ‘잠룡’들 비난 봇물…갈등 더 커질 수도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손학규 전 대표(오른쪽)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엇갈려 가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이해찬-박지원의 전격 제휴에 따라 민주당 내 대권 판도도 요동칠 전망이다. 문재인 고문은 이미 이 전 총리와 사전 조율을 마쳤을 정도로 당연히 이 구도에 호의적이다. 문제는 다른 ‘잠룡’들의 반발 조짐이다. 당장 밀실 야합, 공학, 기득권 나누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문재인 대세론’을 견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영·호남’ 중심의 당권·대권 체제에 가장 민감한 쪽은 역시 손학규 전 대표이다. 5월2일 유럽에서 귀국하는 손 전 대표는 현지에서 “정의롭지 못하다”라고 비판했다. 출국 전 박 전 원내대표와 회동하는 등 수도권·비노 그룹을 아우르는 대선 주자 위상을 지키고자 하는 유럽 구상을 가다듬던 손 전 대표로서는 그야말로 예기치 못한 엄청난 악재를 만난 셈이다.     

‘비노’ 그룹에 서 있는 정동영 상임고문도 불만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고문의 한 측근은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도 낡은 틀에 넣으면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라며 아예 두 사람의 제휴를 낡은 틀로 몰아붙였다. 그는 “이런 발상이야말로 아주 권위주의적인 한 단면이다”라고 비판했다. 정세균 상임고문도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이다. 그는 “국민을 바라보아야 한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고문의 지원으로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한 전병헌 의원도 “기득권을 염두에 두고 특정인의 나눠 먹기식 밀실 야합으로 변질되는 것이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다”라고 꼬집었다. 정동영 고문과 정세균 고문은 모두 이번 선거에서 호남 지역을 떠나 서울에서 출마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측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국민을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의견이다. 당내 486그룹을 대표해 전당대회 출마를 검토 중인 우상호 당선인도 “계파 갈등을 해결하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일을 진행하는 절차나 방법은 무리했다”라고 지적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차기 원내대표 출마를 결정하면서 이해찬 전 총리의 구상은 첫 관문을 넘었다. 하지만 당 안팎의 곱지 않은 시선이 말해주듯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일 수 있다. 기존 계파 갈등에 지역 갈등(영·호남 대 수도권)까지 불거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문재인 고문이라는 유력 대선 주자까지 가세한 연대인 탓에 향후 만만찮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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