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초’ 두고 두 나라는 왜 흥분할까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2.05.06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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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엔에서 오키노토리시마를 섬으로 인정했다고 보도…중국, “인간 살기 불가능한 암석” 반발

지난 4월28일 중·일 양국은 태평양상의 한 암초를 두고 돌연 시끄러워졌다. 요미우리·마이니치 등 일본 주요 신문이 유엔에서 오키노토리시마(沖ノ鳥島)를 암초가 아닌 섬으로 인정했다고 일제히 보도했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는 2008년 11월 일본 정부가 신청한 대륙붕 획정 문제 중 오키노토리시마 북방 해역 17만㎢를 일본의 대륙붕으로 인정했다. 오키노토리시마 남방 해역 25㎢와 일본의 최동단 미나미토리시마(南鳥島) 해역에 대해서는 결론을 유보했다.

이 소식은 곧바로 중국에 전해져 톱뉴스로 보도되었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류웨이민(劉爲民)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당일 외교부 웹사이트에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류 대변인은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는 일본 대륙붕의 경계와 관련해 어떠한 처리 결과도 발표하지 않았다. 일본측이 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반박했다.

2005년 5월20일 이시하라 신타로 일본 도쿄 도지사가 오키노토리시마에서 일장기를 흔들고 있다. ⓒ REUTERS

영유권 가진 일본, 수몰 직전에 대공사 벌여

중국 네티즌은 관련 뉴스에 수천 개의 댓글을 달며 뜨거운 관심을 쏟아냈다. “충즈냐오자오(沖之鳥礁; 오키노토리시마의 중국명)가 섬이라면 벌레가 새다”라며 일본을 성토했다. 중국은 무슨 이유로 자국에서 수천 ㎞ 떨어진 태평양의 한 암초를 두고 이처럼 흥분했을까.

오키노토리시마는 서태평양 필리핀 해에 있는 작은 환초이다. 전체 둘레 10㎞, 동서 4.5㎞, 남북 1.7㎞의 크기로, 대형 침대만 한 두 개의 암석만이 70㎝ 정도 바다 위로 솟아 있다. 이곳은 16세기 스페인 함선에 의해 처음 발견된 이후, 한동안 돛처럼 보인다는 뜻의 ‘파레스 벨라’라고 불렸다. 18세기 환초의 존재를 확인한 영국인 선장의 이름을 따서 ‘더글라스 암초’라 명명되었다. 1931년 일본은 ‘내무성 고시 163조’를 발표해 이 암초를 오가사와라(小笠原) 제도의 부속 도서로 규정해 도쿄 도에 편입시켰다. 하지만 오키노토리시마와 도쿄는 무려 1천7백40㎞나 떨어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가사와라는 미국의 신탁 통치 아래 있었다. 1968년 미국은 오가사와라를 일본에 반환했다. 이때 오키노토리시마의 영유권도 일본에 복귀되었다. 오키노토리시마가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7년부터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져 오키노토리시마 전체가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일본은 6백억 엔을 들인 대공사를 벌여 1989년 완공했다. 환초 면적이 줄어드는 것을 막는 방파제가 설치되었고, 인공 산호초도 심었다. 암초가 콘크리트 인공 섬으로 변모한 것이다.

오키노토리시마를 살리기 위한 일본의 노력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2004년 11월 대규모 조사단을 파견해 경제적 활용 방안을 면밀히 검토했다. 이를 통해 2006년 일본 정부는 ‘오키노토리시마 활용 프로젝트’를 마련해 암초의 보호와 주변 어장 개발에 나섰다. 일본 어업국은 산호초 복원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고, 일본 해양경찰청은 등대를 건설해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2007년 7월 ‘해양기본법’을 제정하고 2008년 3월 ‘해양 정책 기본 계획’을 발표해 법적 근거와 정책 방안을 수립했다.

이처럼 일본이 오키노토리시마 살리기에 공을 들이는 것은 부존 자원의 확보와 해양 영토의 확장을 위해서다. 1968년 오키노토리시마가 반환되었을 때만 해도 경제성이 없어 별다른 관심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해양 지질 조사 결과 오키노토리시마 주변 해역에서 막대한 니켈, 마그네슘, 코발트, 구리 등이 발견되었다. 무엇보다 오키노토리시마가 섬으로 인정될 경우 일본은 무려 40만㎢에 달하는 배타적 경제 수역(EEZ)을 갖게 된다. 이는 일본 전체 국토 면적인 38만㎢보다 넓다.

200해리 배타적 경제 수역은 1982년 채택되고, 1994년 발효된 ‘유엔 해양법 협약’을 통해 도입되었다. 배타적 경제 수역은 바다에서 영토에 해당하는 영해와는 다른 개념이다. 따라서 어느 국가의 선박도 영유권 국가의 허가 없이 배타적 경제 수역을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해양 조사, 자원 개발, 어업 활동 등은 배타적 경제 수역 설정국만 행사하거나 해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 대륙붕은 배타적 경제 수역보다 확장 범위가 더 커서 최대 3백50해리까지 인정받는다. 중국이 오키노토리시마 문제에 민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 배타적 경제 수역 설정에 강력 반대

금세기 들어 중국은 해양 국가로 탈바꿈하면서 다양한 해양 과학 조사를 벌이고 있다. 오키노토리시마 인근 해역에서도 여러 차례 조사를 진행해 일본의 반발을 샀다. 2005년 8월에는 타이완 어선이 조업 활동을 벌이다 일본 순시선에 나포되어 3개월간 억류되기도 했다. 중국이나 타이완 모두 오키노토리시마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배타적 경제 수역이나 대륙붕을 설정하는 데는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왕한링(王翰靈) 중국사회과학원 해양법·해양사무연구센터 주임은 “유엔 해양법 협약에서, 섬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육지로 반드시 수면 위에 존재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오키노토리시마는 인간이 살기가 불가능하고 지속적인 경제 활동이 어려운 암석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갈수록 인간의 정주 가능성과 독자적 경제 활동 가능성을 강조하는 국제적 추세 속에서 오키노토리시마는 섬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다. 이에 반해 일본은 유엔 해양법 협약에 암석에 대한 규정이 제대로 없다는 이유를 들어 오키노토리시마를 섬으로 간주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와 달리 중국이 오키노토리시마를 섬으로 부정하는 배경은 달리 있다. 오키노토리시마가 중국 해군의 진출과 활동을 제약하는 전진 기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 해군의 진출 정책은 1982년 류화칭(劉華淸) 전 해군사령관이 설정한 도련 전략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2000년까지 오키나와·타이완·남중국해를 연결하는 제1도련을 확보하고, 2020년까지 괌·사이판·팔라우 군도로 이어지는 제2도련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2020년 이후에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대양해군을 건설하겠다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오키노토리시마가 섬으로 인정되면 제1도련까지의 거리가 짧아지고 제2도련으로의 확대에 제약을 받는다. 또한 다양한 해양 조사나 해군 훈련을 위한 항해가 사실상 어려워져 해군 전략에 차질을 빗게 된다. 대양해군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 함정의 항해를 일본 정부가 허가할 리 만무이기 때문이다. 중·일 관계 평론가 왕진쓰(王錦思) 씨는 “오키노토리시마는 서태평양의 전략 통로를 지킬 수 있는 요충지로, 암석 위에 세워진 관측 기지는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중국 군함을 감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걱정했다.

이처럼 중·일 양국이 오키노토리시마를 두고 벌이는 암투가 우리와는 무관한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한 시기나 방법은 오키노토리시마와 유사하다. 유엔 해양법 협약이 발효된 이후 세계 해양 질서가 재편되는 국제 정세와도 일치한다. 현재 일본은 오키노토리시마에 대한 중국의 공격 논리를 한국에 역으로 적용하고 있다. 국제 무대에서 독도에 거주 인구가 없고 경제 활동을 못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일본은 이런 이율배반적인 행동으로 독도를 국제 분쟁화하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독도와 오키노토리시마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독도는 육지에서 2백17㎞밖에 떨어지지 않은 데다 두 섬과 90개의 암초로 둘러싸여 있어 평지로 만들기 쉽다. 특히 동도와 서도 사이 수심은 1~2m에 불과하다. 약간만 간척하면 항만과 활주로를 만들어 양식업과 어업 기지로 활용할 수 있다. 앞으로 독도를 둘러싼 일본의 도발은 지속될 전망이다. 오키노토리시마를 무대로 벌어지는 중·일 간의 논쟁은 우리에게 좋은 시사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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