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한국으로!”‘일본’이 몰려온다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2.05.06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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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장기 체류하는 일본인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일본 도호쿠 대지진 이후 한국을 찾는 일본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2011년을 기준으로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등록된 한국 거주 일본인은 2만1천1백26명으로 전년보다 8.6%가 늘어났다. 아울러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직접 투자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일본에 또다시 대지진 공포가 밀어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3일 부산 해운대구 우2동 소재 해운대센텀호텔 3층 25평형 사무실. 일본 롱스테이 재단 임직원 12명가량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임직원 절반가량은 전화 수화기를 귀에다 대고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통화하고 있다. 나머지 임직원은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며 자료 조사나 문서 작성에 한창이다. 이홍주 롱스테이 재단 대표는 취재에 응하다가도 전화 통화나 업무 지시를 위해 사무실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이홍주 대표는 “일본인 단체 모니터링 여행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일본인 50명가량이 오는 6월 모니터링 여행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을 찾는다. 모니터링여행 참가자는 15일 동안 한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국에서 살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을 체험하고 배운다”라고 말했다. 롱스테이 재단은 해외에 장기 체류하기를 원하는 일본인을 지원하는 공익 법인이다. 일본 통산산업청은 전세계 14개 국가에 롱스테이 재단을 인가했다. 한국 롱스테이 재단은 지난 4월, 15번째로 설립되었다.

한국에 장기 체류하는 일본인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등록된 일본인은 2만1천1백26명(2011년 기준)이다. 전년과 비교해 8.6% 늘어났다. 지난 2010년 증가율보다 두 배가량 올라갔다. 일본인이 가장 많이 체류하는 곳은 서울이다. 일본인 8천1백16명(38%)이 서울에서 살고 있다. 일본인은 ‘서울은 일본 도쿄나 오사카 못지않게 교육·의료·거주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언제든지 비행기를 타고 2시간이면 일본에 갈 수 있는 곳이라서 서울에서 산다’고 말한다. 지난 6년 동안 서울 논현동에서 살고 있는 모리니부 나미 씨(40)는 “서울은 일본인이 살기에 불편함이 없는 곳이다.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좋다. 회사가 청담동에 있어 회사 근처나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일본인 친구와 자주 만난다”라고 말했다.   

부산에는 일본인이 1천명가량(5%) 산다. 얼마 전부터 부산에서 살기 위해 방한하는 일본인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서울 못지않게 의료 및 교육 시설이 갖춰져 있으면서도 집세는 서울보다 싸 일본인 상당수가 장기 체류지로 부산을 선호한다. 일본 오사카에 사는 다나카 마사꼬 씨(30)는 “부산은 갖가지 도시 생활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이어서 생활에 불편이 없으면서도 서울보다 집세가 싸다. 롱스테이 재단의 도움을 받아 부산에서 살기 위해 장기 체류 비자를 신청했다”라고 말했다. 

인천이나 제주도에서 장기 체류하는 일본인은 아직 많지 않다. 다만 인천에 사는 일본인은 2010년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인천에 사는 일본인의 인구 증가율은 단연 최고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 내에서 한창 짓고 있는 주거 시설과 비즈니스 건물이 완공되면 이곳에 정착하는 일본인이 눈에 띄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도에서는 오사카 지역 재일교포가 고향에 부동산을 사들이는 것 외에는 일본인 투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 거주 일본인 증가세의 선행 지표라 할 수 있는 일본인 직접 투자 금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 1분기 일본인 투자는 사상 처음으로 9억 달러를 넘어섰다. 1분기 실적으로 사상 최대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백50% 늘어났다. 제조업은 4백94%, 서비스업은 12% 늘었다. 지난해 1분기부터 5분기 연속 증가하고 있다. 일본인 직접 투자액은 지난해 22억9천만 달러까지 늘어났다. 전년도와 비교해 10%가량 증가했다. 증권, 채권, 선물처럼 자금 유출입이 잦은 투기성 단기 투자(핫머니)와 달리 직접 투자는 국내에 생산 내지 유통 시설을 마련하는 데 소요된다. 이에 따라 국내에 머무르는 외국인도 아울러 늘어난다. 일본인 직접 투자액이 늘어난다는 것은 앞으로 국내 거주 일본인이 증가할 가능성이 아울러 커진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살겠다는 일본인이 늘어난 것은 자연 재앙과 한류 때문이다. 대지진이나 방사능 공포 탓에 일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본인이 한류 문화의 영향으로 이미지가 개선된 한국을 장기 체류지나 제2 주소지로 선택하고 있다. 2010년 한국 거주 일본인은 전년도와 비교해 5백명 이상 줄어들었다가 일본 도호쿠 지방 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에는 2천명가량 늘어났다. 대지진이 일본인의 한국행을 부추긴 것으로 풀이된다. 

ⓒ 일러스트 권오환

‘한류’도 일본인들의 한국행에 크게 기여

일본인의 한국행 추세는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도쿄 인근 지역에 진도 9.1 규모의 대지진이 닥칠 것’이라고 예고했다(57쪽 상자 기사 참조). 일본 지진 연구기관들은 1천년 만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지진 사태까지 예측하고 있다. 일본 도쿄 도청 재난방지위원회는 ‘일본 도쿄 북부 지역에서 진도 7.3 지진이 일어나면 16만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일본인 2만명가량이 죽었다. 모리니부 나미 씨는 지난해 3월 도쿄에서 대지진을 겪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업체에서 일하는 모리니부 씨는 당시 출장차 도쿄에 머무르고 있었다. 모리니부 씨는 “태어나서 그렇게 큰 지진은 처음으로 겪었다. 어머니와 오빠는 도호쿠 지방과 멀리 떨어진 히로시마 현에서 살고 있어 걱정이 덜하지만, 언니는 도쿄 인근 지바 현에 거주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로 인해 방사능이 유출되자 언니는 내게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했다”라고 말했다. 무라카미 에미 씨(38)는 일본 요코하마에 살 때 1년에 한 번씩 지진을 겪었다. 에미 씨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부산에서 거주하고 있다. 에미 씨는 “일본에서는 후지 산이 언제 터질지 모르고 도쿄 대지진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말을 초등학교 때부터 들었다. 한국에 오고 나서는 지진을 걱정하지 않아서 좋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탓에 부산으로 건너온 친지가 다수 있다”라고 말했다.  

자연재해 공포 탓에 일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본인이 한국행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한류’이다. 박설아 롱스테이 재단 팀장은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이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한국에서 장기 체류하고 싶어 하는 일본인 상당수가 한류 드라마와 음악에 영향을 받아 한국행을 선택했다고 말한다”라고 말했다. 모리니부 나미 씨도 한·일 합작 드라마를 보고 한국에 여행왔다가 한국에 주저앉았다. 모리니부 씨는 지난 6년 동안 한국 드라마 콘텐츠에 기초해 단행본을 만드는 일에 종사했다. 한국어 배우는 재미에도 빠져 연세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다나카 마사코 씨도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씨에 반해 한국에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박설아 롱스테이 재단 팀장은 “재단에 접수되는 일본인의 한국행 상담 건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메디컬투어(치료 목적으로 장기간 머무르는 여행)나 한류 관광에 대한 개인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롱스테이 재단은 아직 1차 모니터링 여행을 마치지도 못한 상황에서 오는 10월 일본인 60여 명을 상대로 2차 모니터링 여행을 조직해야 할 형편이다”라고 말했다.


지진 대피 훈련을 받고 있는 일본인들. ⓒ AP 연합
지난해 3월 일본 도호쿠 지방을 폐허로 만든 대지진의 상처가 채 아물기 전에 또 다른 대지진이 도쿄 인근 내륙 지방을 강타할 것이라는 예고가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진도 9.1의 대지진이 조만간 도쿄 인근 간토 지방을 덮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대지진이 일본 도쿄 도를 강타하면 피해 규모는 도호쿠 지진보다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 도청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별 시민의 대비와 인식이 중요하고 사회 기간 시설과 주택의 방화 내지 방진 설비를 강화하라고 촉구했다.

일본 도쿄 도청 산하 재난방지위원회는 4월18일 일본 도쿄 대지진이 발생하면 9천7백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했다. 대지진 시뮬레이션은 NHK 방송국과 함께 요미우리·마이니치·아사히 같은 일간지에 대서특필되면서 일본을 다시 대지진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도쿄 도청 재난방지위원회는 ‘겨울철 오후 6시 도쿄 만 북쪽에서 발생한 진도 7.3 지진이 시속 29㎞ 속도로 남하해 도쿄 도를 강타한다’는 가정 아래 피해 규모를 가늠했다. 다음과 같은 시뮬레이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5천6백명이 지진으로 인한 건물 붕괴나 지반 균열로 죽고 4천100명이 지진으로 인한 화재 탓에 사망했다. 부상자는 14만7천6백명이나 되었다. 피해자는 5백17만명까지 치솟고 이 가운데 3백39만명이 피난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지진이 도달하자마자 건물 30만4천3백 채가 무너지거나 화재로 소실된다.’

올해 들어 도쿄 도 인근에서 지진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어 이 시뮬레이션이 현실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도쿄 대학 지진연구소는 지난 3월27일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도쿄 인근의 지진 빈도가 다섯 배나 높아졌다’라고 발표했다. 지난 4월25일 새벽 5시22분 일본 지바 현 북부에서 진도 5.5의 지진이 발생해 이바라키·군마·도치기 현까지 흔들었다. 지난 1월28일에도 진도 5.5의 지진이 도쿄 인근에서 일어났다. 일본 지진학자는 ‘일본 혼슈 남쪽에 자리한 난카이 해구가 진앙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도쿄 대지진은 동일본 지진에 버금가는 진도 9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일본 전역을 강타할 토카이· 토난카이·난카이 지진은 지난해 3월 대지진의 두 배 속도로 도쿄 지역 20층 이상 고층 빌딩을 강타할 것이다. 일본 도쿄 대학 과학부 하루유키 키타무라 교수는 “지진 탓에 지표가 1초 이상 흔들리는 지표 운동이 커져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가정 아래 피해 예방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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