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사냥하는 ‘현대판 인신매매단’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5.06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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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새’라 불리며 서울역·영등포역 등에서 은밀히 활동

ⓒ 시사저널 유장훈
서울역과 영등포역은 노숙인들의 천국으로 불린다. 서울역 광장에 가면 길에서 잠을 자는 노숙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 노숙인을 노리는 인신매매단이 있다. 일명 ‘찍새’로 불리는 ‘노숙인 사냥꾼’들이다. 이들은 한때 노숙을 했던 경험자들인데도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동료 노숙인들을 범죄의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범행 대상 유인해 상선에게 팔아넘겨

찍새들은 노숙인 중에서 범행 대상을 고른 후에 모처로 유인하고 돈을 받고 상선 조직에 팔아넘긴다. 이때 노숙인 한 명당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가격이 매겨져 있다. 찍새들은 워낙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찍새들의 활동이 경찰에 포착된 적이 있었다. 정신지체장애자(3급)인 신철수씨(가명·31)가 실종되면서 꼬리가 밟혔다. 신씨는 가출한 후 서울역에서 노숙을 했다. 신씨의 형은 인테리어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어느 날부터 집과 사무실로 동생 철수씨에 대해 문의하는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동생을 찾는 전화가 여기저기서 걸려오는데, 정작 철수씨는 귀가하지 않았다. 형 신씨는 동생의 신변이 걱정되자 광진경찰서에 철수씨에 대한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

광진경찰서 실종팀은 신씨의 소재 파악에 나섰다. 전화 통화 내역도 뽑았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석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철수씨 명의로 개통된 휴대전화가 두 대나 있었다. 더군다나 ㅅ저축은행에서 6백80만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철수씨는 정신지체 장애가 심해 혼자서는 은행 거래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경찰은 범죄 연관성에 무게를 두었다. 그리고는 실종팀에 강력팀 한 개팀을 따라붙도록 했다. 

경찰은 실시간 휴대전화 위치 정보를 추적해 검문 검색에 나섰지만 번번이 허탕을 치고 말았다. 철수씨의 위치도 수시로 바뀌었다. 서울에서 뜨다가 갑자기 울산 울주군으로 이동했다. 범죄 피해가 의심되는 상황에 이르자 광진경찰서는 사건을 형사과 강력6팀에 전담시켰다.

경찰이 철수씨를 찾은 것은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 6일 후인 2월21일이다. 서울 신림동 길거리에서 배회하는 철수씨를 발견했다. 철수씨는 소식이 끊긴 6일 동안 어디에 있었을까. 김계동 광진경찰서 강력6팀장은 “신씨가 서울역에서 노숙하고 있는데, 50대 남자가 접근했다. 그는 ‘취업을 시켜주겠다’라며 호감을 얻은 뒤 자신을 따라오라며 유인했다. 지하철을 타고 갔으나 어딘지 장소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신씨는 신림동의 한 모텔에 감금되어 있었다”라고 전했다.

노숙인 인신매매 조직원인 이 아무개씨(54)와 강 아무개씨(38) 등은 신씨를 모텔에 감금한 뒤 그의 명의로 통장을 개설했다. 그리고는 저축은행에서 7백여 만원을 대출받아 가로챘다. 이들은 일주일 동안 신씨를 감금한 뒤 5만원을 주었다고 한다.

경찰은 신씨의 행적을 역추적해서 CCTV를 통해 용의자들의 사진을 확보했다. 이들은 신씨를 서울역에서 유인한 후 동대문을 거쳐 신림동으로 데려왔고, 한 PC방 앞에서 돈을 받고 상선 조직에 인계했다. 신씨를 넘겨받은 상선은 영등포와 부천, 신림동쪽으로 와서 휴대전화를 개설하고, 서울 자양동의 한 은행에서 인감증명서를 뗀 후 신림동 모텔에서 사기 대출업자에게 서류를 팔아넘겼다. 정신장애가 있는 신씨에게 은행 대출뿐만 아니라 그의 명의로 휴대전화 두 대를 개설하게 했다. 상선들은 그 휴대전화로 범행에 나섰다.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한 것이다.

경찰은 용의자 추적에 나섰으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가까스로 신씨의 형 사무실에 전화한 사람 중 이 아무개씨(54)의 휴대전화 번호를 확보했다. 그 번호의 위치 정보를 추적해보니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으로 나왔다. 정왕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수백 동의 원룸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휴대전화 발신음이 포착된 곳의 반경 5백m를 일일이 수색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이곳에서 용의자를 찾아내기는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다를 바 없었다. 경찰은 가가호호 거주자들을 방문해 확인하다가 한 부동산 관리회사의 관리자를 통해 용의자 이씨가 한 원룸에 세입자로 들어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계동 강력6팀장은 “당시에는 수사의 실마리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차량 번호 확보는 물론 별다른 단서조차 없었다. 이런 때에 용의자 이씨의 원룸을 우연찮게 알게 되었다. 급반전이었다”라고 말했다. 김팀장은 또 “이씨가 살고 있는 원룸에는 방이 두 개 있었다. 실제 거주자는 없고 남자 여섯 명이 있었다. 이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는데, 그중 한 명이 자꾸 도망을 치려고 했다. 노숙자를 원룸에서 데리고 나가 차 안에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자신들은 ‘수원역’에서 왔다고 했다. 원룸에 있던 여섯 명 중 네 명은 노숙인이었고, 한 명은 관리자, 또 한 명은 도망 못 가도록 감시하는 감시자였다”라고 전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인신매매 조직원 두 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노숙인 세 명 중 신용 상태가 양호한 한 명은 사기 대출에 이용하고, 신용이 나쁜 두 명은 대포폰을 개설하는 데 이용했다고 한다. 또 이들 명의로 카드 가맹점을 개설해 한 개당 3백만원씩을 받고 팔았다.

 

노숙인 인신매매범들이 거주하던 경기도 시흥시 정왕역 인근의 원룸촌. ⓒ 시사저널 박은숙

모텔 등에 감금한 뒤 이들 명의로 대출받기도

노숙인 인신매매단의 범행 수법은 치밀하다. 찍새들은 서울역 등에서 노숙인들에게 접근해 취직을 시켜주겠다고 유인한다. 그런 다음 신용 조회를 한 후 신용불량자인 경우에는 사업자등록증을 개설하는 목적으로 한 명당 50만원을 받고, 상선에게 넘겼다. 상선은 신용에 이상이 없는 노숙인은 은행 대출, 휴대전화 개설용으로 100만~1백50만원을 주고 인계받았다.

경찰에 검거된 노숙인 인신매매단의 하선 조직원인 강 아무개씨(38)는 “인터넷 사이트에 신용 조회 프로그램이 있다”라고 했으나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이다. 경찰은 노숙인을 유인해 감금하고 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해 수백만 원을 대출받은 김 아무개씨(37)등 네 명을 구속하고, 네 명은 불구속했다. 또한 찍새들의 윗 조직인 상선을 추적하고 있다. 이들이 검거되어야 노숙인 인신매매단의 실체가 완전히 드러날 수 있다.

하지만 수사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다단계식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하선과 상선의 실체 파악이 어렵다. 또 대포폰을 사용하고 있으며 수시로 번호를 바꾸고 있어 추적이 쉽지 않다. ㅍ사의 인터넷 전화를 사용해서 실제로는 대구에 있는데도, 번호는 거주하지 않는 장소에 설치된 것처럼 꾸밀 수도 있다. 그리고 시흥시 정왕동의 원룸촌과 같은 곳에 아지트를 정해놓고 경찰의 눈을 피하고 있다.

기자는 노숙인들이 얼마나 쉽게 범죄에 노출되는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4월24일과 5월2일에 서울역에서 여러 명의 노숙인을 만났다. 한 노숙인에게 접근해 “휴대전화를 개설하려고 하는데, 명의를 빌려주면 10만원을 주겠다”라고 했더니,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한번 해본 말이었다’라고 했더니 버럭 화를 냈다. 또 다른 노숙인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그도 “바로 돈을 주면 하겠다”라며 거부하지 않았다.

이렇듯 노숙인들은 돈과 일자리에 목말라 있다. 노숙인 인신매매단은 이런 노숙인들의 약한 마음을 이용한다. 지난해에는 직업소개소 등과 짜고 낙도의 염전이나 고기잡이 어선에 팔아넘긴 일당도 있었다. 지금 서울역과 영등포역 등 노숙인들이 많은 곳에는 ‘현대판 인신매매’가 횡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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