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은 권력의 맛도 알고 권력 유지 욕구도 강해”
  • 이규대 기자·최은진 인턴기자 ()
  • 승인 2012.05.06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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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영 교사와 문재현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장 대담 “건전한 공동체 만들어야 학교 폭력 사라질 것”

ⓒ 시사저널 전영기

최근 10대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 범죄 등이 사회에 충격을 안기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교실에 뿌리내린 폭력 문화가 꼽힌다. <시사저널>은 이러한 학교 폭력 문제의 실태를 확인하고 그 해결책을 심도 있게 모색하는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 지난 5월3일 서울 상봉중학교의 한 교실에서 이루어진 대담에는 국내에서 일진 문제 전문가로 알려진 문재현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장(사진 오른쪽)과 정세영 상봉중학교 교사(사진 왼쪽)가 참석했다. 문소장은 실제 ‘왕따’였던 두 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공동체 프로그램을 계속적으로 연구·적용해온 인물이다. 정교사는 지난 1999년 이후 교육 일선에서 일진들을 만나며 문제 해결에 앞장서왔다. 두 사람은 문제의 실태 및 원인에 대해서는 공통된 의견을 보였으나, 그 해결 방법을 놓고서는 열띤 논쟁을 벌였다.

사회 : 지난해 말부터 학교 폭력 관련 사건이 이어지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평소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어떻게 보았나?

문재현(이하 문) : 지금까지 ‘일진 문제’에 대해 일선 학교, 교육청 등에 계속 얘기했었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어디든 “요즘 일진이 어딨나”라며 넘겼다. 오죽하면 내가 ‘사회적 왕따’ 같았겠나. 지난해 말 이후 자살 사건이 이어지면서 이 문제가 뒤늦게 이슈로 떠오르는 것을 보며 매우 안타까웠다.

정세영(이하 정) : 지금은 비로소 일진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한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체가 분명히 있었는데도 어른들은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사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 내부의 일진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일진 문화의 특성은 무엇인가.

정: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일진 학생들이) 쾌락을 알고, 권력을 안다는 사실이다. 남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잘 안다. 이를 전략적으로 유지하려는 욕구도 강하다.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는 권력의 위계를 바탕으로 지배 구조가 만들어진다.

문: 그런 지배 구조가 절대적인 힘을 갖는다는 점이 특히 문제이다. 말하자면 ‘신분’ 같은 것이다. 일진은 당연히 다른 학생들을 때릴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반면, 일반 학생이나 왕따 학생이 반항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 선악의 개념이 없고,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는다. 지금 어른들은 이런 부분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때만 해도 이른바 ‘노는 애’들은 그냥 노는 아이들 아니었나.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아니다.

정: 지금 ‘일진’이라는 개념은 ‘학교에서 제일 잘나가는 아이들이 모여서 노는 모임’의 의미로 통용된다. 인물도 되고 공부도 되고 싸움도 되는,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이 강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다른 아이들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따돌림 현상이 나타난다. 잘나가는 일진의 눈에 벗어나면 ‘왕따’가 되는 것이다. 일진 문제와 왕따 문제는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

사회: 요즘 일진 문화는 과거와 어떻게 다른가?

문: 크게 3단계로 나뉘는 것 같다. 1990년대 중반 무렵, 일진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만 해도 이들의 세력화는 서로 간의 단순한 ‘패싸움’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검거되면서 사회에 충격을 안긴 적이 있었다. 그 이후 일진 문화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게, 좀 더 음습한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정: 과거만 해도 일진은 싸움을 좋아하고 세력화하기 좋아하는 학생들, 그 이상이 아니었다. 그 관계도 주로 학교 내에 국한되었다. 그런데 2000년 말 초고속인터넷망이 보급되면서, 일진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자기들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후 일진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점차 확장되었다. 일진들의 관계가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간 것이다.

문: 최근에는 이른바 ‘성골 일진’이 나타났다. 요즘 일진 학생들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주먹보다도 인맥이다. 언니나 오빠가 일진인 아이들은 그대로 일진이 된다. 이런 애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짱’이 되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밖에 새로 영입되는 아이들은 대부분 일진의 핵심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사회: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높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문: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폭력의 가해자를 격리해 선도하고, 피해자를 위로하며 치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장 현 정부의 정책 방향부터가 그렇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은 일진 없는 학교를 찾기가 어렵다. 그 수가 수십만으로 추산된다. 거기에 2진, 3진, 방관자 등을 포함하면 상상하지 못할 수준이다. 이들을 어떻게 일일이 찾아내어 격리하고 선도·치료하자는 것인가.

정: 현재 일진에는 두 단계의 구조가 있다. 첫 번째로, 학교 내에 선배와 후배가 수직의 체계로 연결되어 있다. 두 번째로는 학교 밖에서 ‘연합’ 형태로 구축되는 일진 조직이 있다. 그런데 둘 중 더 센 것은 ‘연합’ 형태이다. 여기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며 나누고 섞인 일진들이 포함된다. 이런 사정을 잘 모르고서는 일진 문제에 대처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교사에게 준사법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은 교사들이 자기 학교에 소속된 학생이 아니면 문제를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단기 처방으로 교사에게 준사법권을 부여하지 않고서는 해결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문: 물론 생활 지도를 담당하는 선생님들의 고충을 이해한다. 하지만 준사법권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 방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결을 위한 학교 차원의 프로그램, 지역 차원 및 교육청 단위의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지역 주민도 협력해야 한다. 오히려 학생들이 선생님을 무서워하는 것이 더 문제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발견해서 도와주고 손잡아주며 해결하는 것이 더 낫다. 많은 학생이 왕따가 되지 않으려다 일진이 된다. 이런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교실 문화를 수평 문화로 바꾸면 된다. 이러한 문화를 만들 생각부터 해야 한다.

정: 아이들이 놀라울 정도로 어른을 잘 속인다. 이것이 문제이다. 일진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세심하게 진술을 받지 않으면 힘이 없는 학생이 억울하게 일진의 잘못까지 뒤집어쓰게 된다. 이를 잘 파헤치려면 교사의 조사권이 있어야 한다.

사회: 지금 대립되는 두 분의 의견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논의를 해나가야 할 내용으로 여겨진다. 그런 구체적인 방법론에 앞서,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은 없을까.

정: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경쟁 위주의 교육 철학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특히 MB 정부 들어 강화된 시험, 성취도 평가 등을 빨리 중단해야 한다. 서열화 문화, 줄 세우기 문화를 바꿔 모든 친구가 평등하다는 인식, 공동체 의식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문: 정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중요한 것은 학교 안에 건전한 공동체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관련 프로그램을 내실 있게 만들어 적용해보면 아이들은 놀랍게 성장한다. 이는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 폭력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리고 우리 어른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이었는지 성찰하는 계기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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