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CNK에서도 큰 건 터지나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2.05.1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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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광산 개발 업체 대표와 수사 상황 주고받은 정황 포착…BW 거래에도 연루 의혹 제기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5월2일 대검찰청에 출두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딸려나올 것이다.”

여권의 한 인사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의혹으로 지난 5월7일 구속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두고 한 말이다. 박 전 차관이 연루된 비리 사건이 현재 파문이 일고 있는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하나만이 아닐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어떻게 보면 지금이 시작이라고 본다. 사건 하나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지금 검찰은 ‘MB 정권의 실세’ 박 전 차관을 정조준하고 있다. 파이시티 사건으로 되살아난 불씨가 그동안 그를 둘러싸고 제기되었던 각종 의혹으로 옮아가는 분위기이다. 특히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박 전 차관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지인에게 관리를 맡긴 정황이 드러나면서 파장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박 전 차관은 현 정권 들어 ‘왕비서관’ ‘왕차관’으로 불리며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그런 만큼 그가 파이시티 로비 자금뿐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비자금을 마련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이메일 통해 오대표 귀국 막았나

이와 관련해 박 전 차관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의심받고 있는 이동조 제이엔테크 회장의 계좌에 각기 다른 사람 명의의 수표가 수천만 원씩 뭉칫돈으로 입금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파이시티 사업 이외에 다른 로비의 대가로 거액이 오갔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박 전 차관이 이회장의 이메일을 통해 오덕균 CNK인터내셔널 대표와 수사 상황 등을 주고받은 정황도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 업체를 운영해온 오대표는 주가 조작 혐의로 이미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이지만, 카메룬으로 도피한 후 현재 귀국하지 않고 있다.

CNK 주가 조작 사건은 그동안 핵심 인물인 오대표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아 수사가 답보 상태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박 전 차관이 이메일을 통해 오대표의 귀국을 만류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 경우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되어온 ‘박영준 개입설’이 다시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자원 외교를 주도해온 박 전 차관은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부터 연루설에 시달려왔다.

<시사저널>은 그동안 여야 정치인들과 자원 개발업계 인사들을 다각도로 만나며 ‘박영준 CNK 개입설’의 실체를 추적해왔다. 이해관계에 따라 다소 내용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비슷한 증언들이 나왔다. 하나는 CNK 주가 조작 사건이 불거지기 전부터 ‘언젠가는 CNK 때문에 박 전 차관이 곤욕을 치를 것’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돌았다는 사실이다. 다이아몬드 매장량이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의혹도 이미 제기되었다고 한다.

아프리카 동행 인사 “위험인물들 자주 만나”

검찰은 지난 1월26일 CNK인터내셔널 본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박 전 차관의 아프리카 순방에 동행한 바 있는 한 인사는 “박 전 차관의 경우, 우리가 보면 한눈에 위험해 보이는 사람인데도 그런 이들이 부탁을 해오면 뿌리치지 않고 받아들였다.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해서인 것 같은데, (이들이) 박 전 차관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는 말이 (당시부터) 있었다”라고 전했다. 카메룬 광산의 다이아몬드 매장량과 관련해서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양을 부풀린 것이다. 업계의 한 유력 인사는 지인들에게 ‘말려들지 마라’라고 이야기해주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하나는 박 전 차관이 문제가 되고 있는 CNK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거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박 전 차관의 연루 의혹을 꾸준히 제기해왔던 무소속 정태근 의원은 “오대표가 보유하던 BW가 권력 실세 주변 인물 두 명에게 취득가 이하로 넘어갔다”라고 밝힌 바 있다. BW를 헐값에 넘겨받으면 상당한 시세 차익을 올릴 수 있다. 이에 대해 박 전 차관은 “사실무근이다”이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박 전 차관 주변의 증언들은 다르다. 박 전 차관과 해외 방문도 함께한 바 있는 관련 업계의 한 인사는 “본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주변에서는 신주 쪽에 측근 이름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한 주변 인사는 “박 전 차관의 측근이 연루된 것으로 알고 있다. 수사가 본격화하면 결국 BW 때문에 무너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측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공개하기 꺼리면서도 공통적으로 “이회장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친인척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한 명은 “노코멘트하겠다”, 또 다른 한 명은 “그냥 가까운 지인으로 해두자”라고 말했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도 구설 ‘두둥실’ 

박영준 전 차관이 현 정권에서 핵심 사업으로 추진해온 4대강 사업에도 깊숙이 개입해온 점 또한 주목받고 있다. 2008년 6월 촛불 집회가 확산될 때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에서 물러났던 그는 이듬해인 2009년 1월 총리실 국무차장으로 복귀했다. 정권 차원에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대신해 4대강 사업을 본격적으로 부각시켜나갈 때였다. 그는 국무차장으로 재직하면서 ‘4대강 살리기 태스크포스(TF)’를 이끌었다. ‘녹색미래실천연합’이 출범한 시기도 이때였다. 2008년 11월 발기인 대회를 연 이 단체는 석 달 뒤인 2009년 2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이 자리에는 당시 국무차장이던 박 전 차관과 함께 한승수 국무총리가 참석해 ‘4대강 사업을 통해 경제 위기 극복의 전기를 마련하자’라는 취지로 축사를 했다. 한 보수 단체 대표는 “녹색미래실천연합은 박 전 차관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단체이다. 친이명박 단체가 아니라 친박영준 단체라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현 정권의 직·간접적인 지원으로 힘이 실리게 되면서 녹색미래실천연합과 관련한 비리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단체에 참여한 인사들이 공기업 인사와 4대강 사업의 이권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대구·경북(TK) 지역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녹색미래실천연합의 간부가 친구의 건설업체에서 임원을 맡아 4대강 사업에 관여하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박 전 차관이 나서서 무마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녹색미래실천연합측은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단체의 핵심 관계자는 “멤버 중에 박 전 차관과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이 있을 뿐이다. 행사 때 한두 번 얼굴을 비쳤다고 박 전 차관이 지원하는 단체라고 추측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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