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딸려나올 것이다.”
여권의 한 인사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의혹으로 지난 5월7일 구속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두고 한 말이다. 박 전 차관이 연루된 비리 사건이 현재 파문이 일고 있는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하나만이 아닐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어떻게 보면 지금이 시작이라고 본다. 사건 하나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지금 검찰은 ‘MB 정권의 실세’ 박 전 차관을 정조준하고 있다. 파이시티 사건으로 되살아난 불씨가 그동안 그를 둘러싸고 제기되었던 각종 의혹으로 옮아가는 분위기이다. 특히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박 전 차관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지인에게 관리를 맡긴 정황이 드러나면서 파장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박 전 차관은 현 정권 들어 ‘왕비서관’ ‘왕차관’으로 불리며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그런 만큼 그가 파이시티 로비 자금뿐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비자금을 마련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이메일 통해 오대표 귀국 막았나
이와 관련해 박 전 차관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의심받고 있는 이동조 제이엔테크 회장의 계좌에 각기 다른 사람 명의의 수표가 수천만 원씩 뭉칫돈으로 입금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파이시티 사업 이외에 다른 로비의 대가로 거액이 오갔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박 전 차관이 이회장의 이메일을 통해 오덕균 CNK인터내셔널 대표와 수사 상황 등을 주고받은 정황도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 업체를 운영해온 오대표는 주가 조작 혐의로 이미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이지만, 카메룬으로 도피한 후 현재 귀국하지 않고 있다.
CNK 주가 조작 사건은 그동안 핵심 인물인 오대표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아 수사가 답보 상태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박 전 차관이 이메일을 통해 오대표의 귀국을 만류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 경우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되어온 ‘박영준 개입설’이 다시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자원 외교를 주도해온 박 전 차관은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부터 연루설에 시달려왔다.
<시사저널>은 그동안 여야 정치인들과 자원 개발업계 인사들을 다각도로 만나며 ‘박영준 CNK 개입설’의 실체를 추적해왔다. 이해관계에 따라 다소 내용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비슷한 증언들이 나왔다. 하나는 CNK 주가 조작 사건이 불거지기 전부터 ‘언젠가는 CNK 때문에 박 전 차관이 곤욕을 치를 것’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돌았다는 사실이다. 다이아몬드 매장량이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의혹도 이미 제기되었다고 한다.
아프리카 동행 인사 “위험인물들 자주 만나”
박 전 차관의 아프리카 순방에 동행한 바 있는 한 인사는 “박 전 차관의 경우, 우리가 보면 한눈에 위험해 보이는 사람인데도 그런 이들이 부탁을 해오면 뿌리치지 않고 받아들였다.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해서인 것 같은데, (이들이) 박 전 차관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는 말이 (당시부터) 있었다”라고 전했다. 카메룬 광산의 다이아몬드 매장량과 관련해서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양을 부풀린 것이다. 업계의 한 유력 인사는 지인들에게 ‘말려들지 마라’라고 이야기해주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하나는 박 전 차관이 문제가 되고 있는 CNK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거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박 전 차관의 연루 의혹을 꾸준히 제기해왔던 무소속 정태근 의원은 “오대표가 보유하던 BW가 권력 실세 주변 인물 두 명에게 취득가 이하로 넘어갔다”라고 밝힌 바 있다. BW를 헐값에 넘겨받으면 상당한 시세 차익을 올릴 수 있다. 이에 대해 박 전 차관은 “사실무근이다”이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박 전 차관 주변의 증언들은 다르다. 박 전 차관과 해외 방문도 함께한 바 있는 관련 업계의 한 인사는 “본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주변에서는 신주 쪽에 측근 이름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한 주변 인사는 “박 전 차관의 측근이 연루된 것으로 알고 있다. 수사가 본격화하면 결국 BW 때문에 무너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측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공개하기 꺼리면서도 공통적으로 “이회장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친인척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한 명은 “노코멘트하겠다”, 또 다른 한 명은 “그냥 가까운 지인으로 해두자”라고 말했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도 구설 ‘두둥실’ 현 정권의 직·간접적인 지원으로 힘이 실리게 되면서 녹색미래실천연합과 관련한 비리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단체에 참여한 인사들이 공기업 인사와 4대강 사업의 이권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대구·경북(TK) 지역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녹색미래실천연합의 간부가 친구의 건설업체에서 임원을 맡아 4대강 사업에 관여하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박 전 차관이 나서서 무마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녹색미래실천연합측은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단체의 핵심 관계자는 “멤버 중에 박 전 차관과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이 있을 뿐이다. 행사 때 한두 번 얼굴을 비쳤다고 박 전 차관이 지원하는 단체라고 추측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