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밑 빠진 독에 ‘위험’ 붓기
  • 박창모│자산관리사 ()
  • 승인 2012.05.13 00: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중 은행과의 경쟁에 밀려 PF에 더 집착…‘88클럽’ 관리 허술 등 부실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

지난해 8월 영업정지를 당한 부산저축은행의 피해자대책위원회가 국회 앞에서 농성하는 모습. ⓒ 시사저널 유장훈

저축은행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회사 돈 2백억원을 인출해 중국으로 밀항을 시도하다 체포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구속과 함께 불법 대출, 횡령 등 각종 비리 혐의가 밝혀지고 있다. 2012년 2월 기준으로 자산 규모가 1조8천6백43억원인 대형 저축은행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번에 함께 영업정지가 된 저축은행이, 자산 규모가 더 큰 솔로몬저축은행과 한국저축은행이라는 점도 놀랍다. 보통 문제가 생기면 규모가 작은 곳부터 무너지기 마련인데 저축은행은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표를 보면 2010년 12월 기준으로 업계 5위권 저축은행이 모두 영업 정지되었다.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근본적인 원인은 시중 은행의 영업 형태 변화이다. 저축은행은 각 지역별로 자영업자를 포함하는 중소기업과 일반 서민에 대한 소규모 금융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설립된 금융기관이다. 그런데 외환위기 사태 이후 시중 은행은 기업 대출 위주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하는 가계 대출로 영업 형태를 바꿔나갔다. 빠른 속도로 지점 수를 늘려가며 소매 금융 부분을 강화하는 시중 은행과 비교해서 저축은행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차입금, 은행채 등 자금 조달 방법이 다양한 시중 은행과 달리 예수금에 자금 조달을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저축은행은 가입자에게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해야 했다. 이것은 다소 위험이 크더라도 높은 이자 수익이 가능한 대출, 예를 들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에 집중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영업정지를 당한 상위 5대 저축은행의 경우 PF를 포함한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이 50%가 넘었다. 개인 대출 비중이 10% 미만에 머무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부동산 관련 대출에 집중했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대주주를 비롯한 특정인에게 거액의 대출을 해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는 대형 저축은행조차 자체적인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대다수 저축은행이 건설·부동산 업종에 전체 대출의 절반 이상을 집중하면서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부실을 피할 수 없었다. 리스크 관리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조차 지키지 않은 것이다.

저축은행의 금리는 정말 가장 높을까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자산 건전성 판단 기준으로 잘 알려진 ‘88클럽’이다. ‘88클럽’은 부실 채권(고정 이하 여신) 비율이 8% 미만, 자기자본비율(BIS)이 8% 이상인 저축은행을 말한다. 대출 자산의 건전성은 상환 가능성, 연체 기간, 부도 여부에 따라 분류되고 이 가운데 고정, 회수 의문, 추정 손실에 해당하는 것이 부실 채권이다. 부실 채권이 증가하면 저축은행은 부실 채권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쌓게 되어 있고, 이것은 순이익과 자기 자본에 영향을 준다. 금융 당국은 이들에 대해서는 각종 규제를 완화시켜주었다. 일정 기준을 만족하면 영업 구역 내에 새로운 지점 설치를 가능하게 하고 동일인에 대한 대출 금액 한도를 상향시켜주었다. 그리고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할 경우 영업 구역 외에도 지점을 설치할 수 있게 해 저축은행 계열화가 가능하게 해주었는데, 이는 계열사를 통해 특정인에 대한 대출 한도를 더 높여주는 결과를 낳았다.

문제는 ‘88클럽’의 기준이 되는 부실 채권 비율과 자기자본비율이 철저하게 관리되었느냐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미래저축은행을 살펴보자.

이것을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먼저 당기순이익을 보면 2011년 상반기에 무려 2천6백53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후 하반기에는 1천54억원의 흑자로 믿을 수 없는 반전을 보여주고 있다. 영업정지에 당면해 분식 회계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부실 채권 비율과 자기자본비율도 ‘88클럽’ 요건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다가 2011년 상반기 들어 급격하게 수치가 악화되었다. 역시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부실 채권 비율과 자기자본비율을 적정 수치로 유지하기 위해서 대출 자산 건전성 분류(정상-요주의-고정-회수 의문-추정 손실)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런 현상은 대다수 저축은행에서 나타나고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공시 자료를 살펴보면 어느 저축은행이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을지 쉽게 예상할 수 있을 정도이다. 아쉬운 점은 일반적으로 자산 건전성 지표로 알려진 부실 채권 비율 8% 미만, 자기자본비율 8% 이상이라는 기준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전체 흐름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저축은행 공시 자료에 대한 신뢰도 하락을 뜻하고 저축은행의 감사와 이를 감독해야 할 금융 당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축은행은 부동산 관련 대출 채권 부실 문제가 심각하고, 계속해서 기본적인 영업 환경이 나빠지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동안 여러 저축은행의 부실로 수조 원의 자금이 투입되었지만 계속해서 저축은행 영업정지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저축은행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전무하고 신뢰의 문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가입자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판단은 무엇일까?

먼저 예금자보호법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금융기관이 파산 등의 이유로 가입자의 예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될 경우 예금자보호법에 의해 금융기관별로 1인당 5천만원까지 보호받을 수 있다. 기억할 것은 원금, 이자를 합쳐서 5천만원이기 때문에 가입 기간에 따른 이자를 고려해서 5천만원보다 조금 더 적은 금액으로 분산해야 한다. 주의할 점은 5천만원을 바로 지급받는 것이 아니라 통상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지급금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가지급금은 현재 2천만원을 한도로 2주 이내 지급받을 수 있기에 장기간 묶이는 것이 곤란한 성격의 돈이라면 가지급금 한도 2천만원을 기준으로 분산해서 예금할 것을 추천한다. 예금자보호법 대상이 아닌 후순위채권은 당연히 피해야 한다.

그리고 저축은행의 금리가 가장 높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실 세전 금리가 아닌 세금을 차감한 세후 금리를 비교하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신협이나 새마을금고의 금리도 높은 편이다. 정기예탁금(정기예금)은 세후 금리가 저축은행보다 높은 곳도 있다. 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운 좋게 시중 은행의 특판 예금에 가입할 기회를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현명한 사람은 0.1~0.2%의 금리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높은 저축률을 유지하면서 경제 흐름을 파악하고 여유 자금을 안정적으로 투자하는 사람이 아닐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