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까지 끼어든 ‘서해 밀항’ 비밀 루트의 실체는?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5.13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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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중국 밀항의 출발점으로 삼은 궁평항. ⓒ 연합뉴스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은 서해상을 통해 중국으로 몰래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필리핀이었다. 그곳에서 호텔 사업을 통해 재기를 모색하려 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회장은 경기도 화성의 궁평항을 밀항 출발점으로 삼았다. 궁평항은 2008년 12월에 국가 어항으로 지정된 곳이다. 어선이 상시 들락거리고 있어서 주변의 눈을 피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김회장은 소형 어선을 타고 중국 쪽 공해상으로 나간 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화물선으로 갈아타려고 했다. 중국에서는 산둥 성의 한 항구로 갈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미리 중국 조직폭력 단체에 3억원을 송금했다고 한다. 신변 안전을 보장받고, 필리핀으로 넘어갈 때까지 편의를 제공받기 위해서다. 국내에서는 조폭들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사정 당국이 밀항 첩보를 입수하면서 실패했다. 김회장은 어선에 올라 선원실에 숨어 있다가 붙잡혔다.

김회장은 왜 서해 밀항을 택했을까. 국내 범죄자들에게 서해상의 밀항은 낯설지가 않다. 지난 2008년 12월에는 4조원대 다단계 사기범인 조희팔이 서해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갔다. 조씨는 현재까지 종적이 묘연하다. 지난해 4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북 김제 ‘마늘밭 1백10억원 사건’의 주범인 이 아무개씨도 서해를 통해 중국으로 밀항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이 이씨의 출입국 기록을 샅샅이 뒤졌지만 해외로 출국한 기록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씨가 중국 현지에서 국내 가족들과 수시로 국제 전화를 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김찬경 회장이나 조희팔, 마늘밭 1백10억원 사건의 주범인 이씨의 공통점은 거액의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많은 현금을 해외로 빼돌리는 데는 밀항이 최적의 방법이다.

범죄자들의 서해 밀항 시도에 대해 한 해경 간부는 “한국과 중국을 잇는 서해상에는 여러 밀항 루트가 있다. 서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크고 작은 섬이 많아 침투가 비교적 쉽고, 중국과도 거리가 짧다는 이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와 중국 현지에는 밀항을 알선하는 전문 브로커들도 있다. 김찬경 회장도 밀항 브로커와 접촉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국내외 밀항 브로커들은 대개 조폭들과 연결되어 있다. 김회장에게 밀항 브로커를 소개한 것도 이태원파와 미아리쌍택이파 조직원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현지 브로커들은 흑사회 등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 밀입국의 근거지는 동북 3성과 산동 성, 저장 성, 후젠 성 등이다. 이들 지역에는 중국 교포와 탈북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밀입국자들의 90% 이상이 이곳에서 출발하거나 도착지로 이용한다.

밀항 방법도 진화를 거듭했다. 초기에는 선원수첩을 위조하거나 선박에 몰래 숨어드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해상에서 어선이나 화물선으로 갈아타는 방법이 주로 이용된다. 김회장도 이 방법을 택했다. 소형 어선에 승선한 후 공해상에서 중국 어선이나 화물선 등으로 환승하는 수법이다. 김회장은 밀항 브로커를 통해 어선 선주에게 선수금으로 3백만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국내에 정착한 중국인(조선족 포함)들이 늘어나면서 중국 현지의 폭력 조직도 국내에 들어와 활동 중이다. 국가정보원은 중국 동북 3성 출신의 조선족 흑사회 4~5개 조직과 한족 출신의 흑사회 그리고 타이완계 삼합회 조직이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의 주 무대는 서울의 영등포와 구로 그리고 경기도 안산시 등 중국 조선족과 한족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중국 현지에서 범죄를 저지른 후 중국 공안의 수배를 피해 국내로 들어올 때도 서해를 통한 밀항을 주로 이용한다. 반대로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나 불법 체류자들도 밀항을 통해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향후 국내외 조폭이 연계한 서해 밀항 시도가 더욱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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