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감독·부도덕 경영 ‘합작’‘막장 저축은행’ 시리즈
  • 이석·엄민우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5.1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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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미래·한국·한주 등 저축은행 네 곳이 금융위원회에 의해 6개월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적기 시정 조치를 유예받은 지 7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런 탓에 이들 저축은행의

영업이 정지된 저축은행 앞에 가지급금 지급 등과 관련한 공고문이 붙어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금융감독원이 작심한 것 같다. 부실 회사를 떠안으라고 강요할 때가 엊그제인데…. 이제는 얼굴을 바꿔 무조건 죽이려고 한다.”(시중 저축은행 고위 관계자)

“금융 당국도 저축은행 무더기 퇴출 사태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저축은행의 부실을 키운 것은 감독 기관의 보신주의 정책 탓이다.”(안진걸 참여연대 민생안정팀장)

금융 당국이 저축은행 부실 사태의 후유증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6일 솔로몬·미래·한국·한주 저축은행에 대해 6개월 영업정지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말 적기 시정 조치를 유예받은 지 7개월여 만이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감독 부실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저축은행 부실의 원흉으로 손꼽히는 대주주와 금융 당국의 담합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사태가 오도록 방치한 감독 기관인 금감원을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가고 있다.

5월 초까지만 해도 여론의 초점은 저축은행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에 쏠려 있었다.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중국으로 밀항을 시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검찰은 지난 5월8일 김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김회장은 현재 1천5백억원을 차명으로 대출받아 서산의 골프장을 매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과 짜고 4백35억원의 교차 증자를 한 정황도 포착되었다. 저축은행 고객들은 다시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임직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김회장은 “회사가 어려우니 허리띠를 졸라매자”라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식대도 받지 않고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일을 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고 한다. 미래저축은행 지점 소속 간부는 “(김회장이) 중국으로 밀항하기 전에 퇴직금을 정산해 가로챘다. 이 돈을 받을 길이 없어 답답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다”라고 토로했다.

유예 기간 중 상황 더 악화되었는데도 방치

피해자들의 분노는 시간이 지나면서 저축은행 대주주의 파행 경영을 막지 못한 금융 당국으로 타깃이 옮겨가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1년4개월여 동안 구조조정이라는 명목하에 20곳의 저축은행을 퇴출시켰다. 피해자만 수만 명에 달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저축은행 퇴출은 더는 없을 것이다”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저축은행 네 곳이 다시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부실 감독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김회장은 지난 1998년부터 신용불량자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용불량자 신분으로 어떻게 자산 수조 원 규모의 미래저축은행을 소유할 수 있었는지 말이 안 된다는 비판이 봇물 터진다. 감독 당국의 부실한 감독이 저축은행의 비리를 키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치권은 ‘4대 저축은행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금융 당국을 압박하고 있다. ‘영업정지 폭탄’을 맞은 저축은행 역시 “금융 당국이 저축은행을 죽이려 한다”라면서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금융위나 금감원은 당혹스러워하며 저축은행업계의 주장이나 언론 보도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일부 민감한 사안은 해명서까지 만들어 언론사에 배포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김찬경 회장은 지난 2011년 3월 법원의 확정 판결로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저축은행법이 개정된 것은 2010년이고 김회장이 처음으로 지분을 취득한 시기는 2000년 10월이기 때문에 결격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저축은행이 제기한 부당 검사 문제에 대해서도 “모든 검사와 퇴출 절차는 원칙에 따라 진행되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비난하는 목소리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영업이 정지된 4개 저축은행은 지난해 9월 금융 당국이 영업정지를 유예했던 기업들이다. 금융 당국은 당시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이들 저축은행을 회생시킬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유예 기간 동안 저축은행들의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은 악화되었다. “저축은행들이 부실을 키우도록 금융 당국이 시간만 벌어준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금감원 출신들이 저축은행 ‘방패막이’ 되기도

저축은행의 부실 문제가 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사회적 문제가 되었었다. 그럴 때마다 정부는 ‘폭탄 돌리기’ 식 처방으로 상처를 감추는 데 급급했다. 그 후유증이 결국 저축은행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 2001년 상호신용금고의 명칭을 상호저축은행으로 바꾼 것도 부실에 빠진 저축은행을 돕기 위한 정부의 작품이었다. 이런 식의 사후약방문식 해결책은 저축은행의 부실만 가중시키는 결과가 되었다”라고 지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에는 우량 저축은행이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하도록 압박했다. 당시 저축은행업계는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정부는 저축은행들이 부실 저축은행을 떠안도록 했다. 그럼에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았다. 우량 저축은행까지 부실의 늪으로 빨려들었다. 그러자 정부는 캠코(자산관리공사)를 통해 수조 원 규모의 PF 부실 채권을 매입했다. 캠코가 부실 채권을 3년 내에 정리하지 못하면 저축은행들이 이 채권을 되사주는 조건이었다. 이 역시 부실을 털어준 것이 아니라 감추어둔 것에 불과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안정팀장은 “계속되는 정책 실패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런 악순환은 결국 국민들의 혈세로 다시 채워진다는 점에서 책임과 대책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일부 간부는 저축은행과 끈끈한 유착 관계를 보이기도 했다. 대검 중수부의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이하 합수단)은 최근 2차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세청이나 금감원 등 주요 기관의 ‘백화점식’ 뇌물 수수가 도마 위에 올랐다. 금감원은 저축은행의 비리를 직접 감독하는 기관이다. 이들 기관의 인사들이 저축은행 비리를 묵인하고 거액을 수수했다는 점에서 한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금감원 수석검사역으로 근무했던 신 아무개씨가 대표 사례이다. 신씨는 에이스저축은행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수천억 원 규모의 수상한 자금 이동을 파악했다. 하지만 저축은행 차주(차명 대출자)에게 거액을 받고 비리를 눈감아주었다. 신씨는 이후에도 수천만 원대의 롤렉스시계 등을 선물받고 불법 사실을 묵인해주었다. 다른 저축은행 검사역으로 자리를 옮기면 동료 직원들에게 감사 무마를 청탁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뒤를 봐주고 1년여 동안 신씨가 받은 돈은 1억3천5백만원에 이른다. 신씨는 금감원을 나온 뒤, 토마토저축은행의 감사로 자리를 옮겼다가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당시 수사를 총괄했던 최운식 합수단장은 보고서에서 ‘저축은행의 부실을 미연에 방지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신씨의 사례처럼 금감원 직원이 돈을 받고 이를 묵인해주면서 부실이 확대되었다’라고 지적했다.

일부 금감원 직원은 검사를 담당했던 저축은행마다 돌아가면서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 김 아무개씨와 이 아무개씨는 세 곳의 저축은행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했다. 저축은행 두 곳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은 인사도 세 명이나 되었다. 수석검사역 신 아무개씨는 금감원의 검사 일정과 검사반 명단 및 성향 등을 통째로 저축은행에 넘겨주었다. 정 아무개씨는 감사 무마를 대가로 5억원의 마이너스 통장을 제공받기도 했다. 최단장은 “일부 금감원 직원들의 뇌물 수수 행태는 일회성이 아니었다. 금감원과 저축은행 사이에 만연한 짬짬이 역시 저축은행 부실을 키운 중요한 요인이다”라고 말했다.

저축은행업계 일각에서는 금감원의 퇴직 간부가 저축은행으로 넘어가 사실상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에 영업이 정지된 솔로몬저축은행은 지난 7년간 금감원 출신 다섯 명이 감사나 사외이사를 지냈다. 강상백 전 금감원 총괄부원장보와 강대화 전 심의제재국장이 사외이사로 근무했다. 김강현 전 분쟁조정실 팀장과 윤익상 전 은행검사1국 부국장은 감사를 지냈다. 김상우 전 부원장보는 상근 고문을 역임했다. 한국저축은행 역시 금감원 출신 네 명이 사외이사나 감사 등을 거쳤다. 제정무 전 금감원 보험담당 부원장보와 이성로 전 기획조정국장이 사외이사를, 김기섭 전 은행검사 1국 부국장과 허만조 전 신용감독국장이 감사위원을 지냈다. 감독 기관의 특성상 선후배 간의 배려가 각별하다. 이들이 로비나 결탁을 통해 부실 검사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이번에 검찰에 구속된 김찬경 한국저축은행 회장 역시 영업정지를 앞두고 구명 로비를 벌인 흔적이 나오고 있다. 김회장은 중국으로 도망가려 한 바로 전날 금감원의 국장급 인사들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회장은 당시 감사와 사외이사를 동행했다. 금감원 출신을 통해 구명 로비를 시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이다. 특히 김회장은 당시 피감 기관의 대표이다. 민감한 시기에 금감원의 간부들을 만났다는 사실 때문에 뒷말이 나오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대화 내용을 떠나 피감 기관의 대표가 금감원을 방문해 면담을 했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저축은행 부실 사태는 결국 저축은행 대주주와 금융 당국 부실 감사가 낳은 사생아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5월6일 김주현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영업이 정지될 저축은행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저축은행 퇴출 사태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사실이 있다. 금융 당국은 더 이상 저축은행의 무더기 퇴출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주재성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5월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4개 저축은행을 영업정지시키면서 경영 진단에 따른 구조조정은 마무리되었다. 이후에는 상시적인 구조조정으로 전환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그동안 여러 차례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그때마다 저축은행이 줄줄이 퇴출되었다는 점에서 시장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저축은행업계의 PF 부실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 부실이 터질 경우 제4, 제5의 저축은행 퇴출 사태를 배제할 수 없는 상태이다.

참여연대가 공개한 ‘저축은행의 부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실태 조사 현황’ 결과에서도 이런 징후가 엿보인다. 금융 당국은 2008~10년 세 차례에 걸쳐 6조4천억원 규모의 PF 부실 채권을 매입해주었다. 3년 후에 저축은행의 경영이 호전되면 채권을 되사주는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경영은 호전되지 않았다. 오히려 1조원의 추가 부실이 발생했다. 그러자 지난해 6월 상환 기간을 3년에서 4.5~5년으로 연장해주었다. 오는 2013년이 되면 채권의 만기가 돌아온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채권 규모는 4조8천억원대에 이른다. 저축은행들이 적립한 충당금 적립액은 18%인 8천6백12억원에 불과하다. 이 채권 폭탄이 내년에 터질 수 있다. 김진욱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간사는 “1년 반 안에 저축은행들이 충당금을 모두 적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융 당국이 내년에 줄줄이 영업정지 명령을 내릴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20개의 영업정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잇따른 저축은행 퇴출 사태로 시장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또다시 무더기 퇴출 사태가 발생하면 금융 시스템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김간사는 “만기를 앞두고 상환 기간을 연장한다고 해도 미봉책에 불과하다. 저축은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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