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의 승부수가 자충수 될까
  • 한면택│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2.05.2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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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국 대통령, ‘동성 결혼 지지’ 선언…“재선 위해 철저히 계산된 도박” 지적 나와

미국 대선을 6개월 앞둔 시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오른쪽)이 ‘동성 결혼 지지 선언’을 해 화제를 모았다. ⓒ AP 연합

백악관 주인을 가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일(11월6일)이 6개월 앞으로 다가오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역사적인 한판 대결에 돌입했다. 녹록지 않은 재선전을 치르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동성 결혼 지지 선언’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4년 전 자신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동성애 커뮤니티, 라티노, 젊은 층, 여성 표심을 결집하려고 잇따라 승부수를 던지는 재선 전략을 펴고 있다. ‘동성 결혼 지지 선언’은 미국 대선의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도대체 남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이 결혼하는 동성 결혼이 왜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미국 내에서 동성 결혼 커플이 법적으로 부부 사이를 인정받고 각종 권리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은 여섯 개 주에 그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트 롬니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주지사를 지냈던 매사추세츠에서 그의 재임 시절인 2004년 주 대법원의 결정으로 미국 사상 처음으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었다. 그리고 코네티컷, 아이오와, 뉴햄프셔, 뉴욕, 버몬트 등 여섯 개 주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해 인정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워싱턴D.C와 메릴랜드, 서부 워싱턴 등 세 개 주에서도 동성 결혼 합법화 법이 확정되었으나 아직 발효되지는 못하고 있고, 반대론자들의 주민투표 청원으로 오는 11월 선거에서 재심판받게 된다.

롬니 후보의 공격 무기 무디게 하려는 전략?

반면에 가장 최근 법적 조치를 취한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비롯해 30개 주에서는 주 헌법으로 남녀 간의 결혼만을 인정함으로써 동성 결혼을 금지시키고 있다. 심지어 인구가 가장 많은 대형 표밭이자 민주당 아성인 캘리포니아 주도 동성 결혼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동성 결혼이 연방 차원에서 합법화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주차원의 혜택도 많지만 연방 차원의 혜택이 더 광범위하다. 이 때문에 4백만명에 달하는 미국 내 동성애자들과 동성애자 옹호 단체들은 궁극적으로 연방 차원의 동성 결혼 합법화와 이에 따른 연방 혜택을 받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동성 결혼 커플들은 물론 동성애자들과 동성애자 옹호 단체들은 이번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 결혼을 지지한다고 공개 선언한 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연방법으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면 일반 부부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무려 1천여 가지의 연방 혜택을 동성 결혼 부부들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 결혼 지지 입장을 공개 선언했다고 해서 연방 차원에서 즉각 합법화되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남녀 간의 결합으로 규정해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DOMA(Defense of Marriage Act)로 불리는 연방 차원의 결혼보호법을 폐기해야 한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11월6일 선거에서 재선된다면 연방법의 개폐를 추진하라는 거센 압력을 받게 되고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공화당 다수와의 격한 충돌을 겪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동성 결혼 지지 선언을 한 것은 재선을 위한 계산된 승부수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재선을 위해 ‘철저히 계산된 도박’이라고 규정했다. 뉴욕 타임스의 조사 결과 미국민들의 다수도 선거용 발언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 결혼 지지 선언은 4년 전에 비해 열정이 떨어진 ‘내 편’을 다시 뜨겁게 뭉치게 하려는 시도로 해석되고 있다. 오바마 후보는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게이피플의 70%, 18~29세 사이의 젊은 층 표심의 66%를 얻은 바 있는데, 식어버린 이들의 열기에 다시 불을 지피려는 것이다.

동시에 예전만 못한 선거 자금 모금에서 물꼬가 트일 것으로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두 가지 노림수에서는 이미 적지 않은 효과를 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동성 결혼 지지를 선언한 지 수시간 만에 온라인 모금으로 1백50만 달러가 쇄도했다. 특히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가 주도한 할리우드 모금 행사에서는 1천5백만 달러를 모았고, 그 뒤를 이은 게이피플들의 두 차례 모금 행사에서 또 1천만 달러 가까이 모금했다. 일주일 동안 최소한 2천100만 달러를 모금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 다른 노림수는 롬니를 코너로 모는 동시에 그의 공격 무기를 무디게 하려는 고도의 전략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트 롬니 후보는 오바마에 맞서 “결혼은 남녀 간 결합이어야 하며 동성 결혼에는 강력히 반대한다”라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롬니 후보는 동성 결혼 반대를 강하게 외칠수록 골수 보수파로 몰려 중도 보수주의, 무당파 유권자, 젊은 층의 표를 잃어버리라는 것이 오바마 진영의 계산이다. 게다가 롬니 후보가 동성 결혼 반대와 같은 사회적 이슈들에 치중하면 그의 캠페인 구호인 경제 살리기가 희미해지고 “3조 달러를 풀고도 경제를 살리지 못한 채 미국을 빚더미에 올려놓았다”라고 공격해온 핵심 무기가 무뎌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롬니 후보는 이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경합 지역 대부분 동성 결혼 금지 구역인데…

그러나 오바마의 승부수가 오히려 오판으로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먼저 미국의 일반 유권자들은 아직도 경제 회복 속도를 보고 대통령을 선택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오바마의 동성 결혼 지지 카드가 얼마나 먹혀들지 불투명하다.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60%는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 결혼 지지 선언에 대해 “상관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동성 결혼에 대한 여론도 지지 51%, 반대 45%로 반분된 상태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특히 대선 승부를 가를 경합지 9~12곳은 대부분 동성 결혼을 주 헌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반대 여론 우세 지역이다.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 결혼 지지 선언 카드로 경합지에서 표를 잃어 2008년에 이겼던 이들 격전지 가운데 절반 이상을 빼앗기면 백악관까지 내줄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번 대선 승부를 가를 경합지들로 꼽히는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버지니아 등은 모두 동성 결혼을 금지하고 있거나 불법화하고 있다.

심지어 경합지 중의 한 곳인 노스캐롤라이나는 민주당이 9월 초 전당대회를 열어 오바마 대관식과 재선을 위한 단합대회를 가질 곳인데, 동성 결혼 지지로 그곳을 빼앗길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될지 여부는 동성 결혼과 같은 사회적 이슈보다는 경제 문제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재선 전략이 유권자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과 비전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도박과 같은 승부수에 치우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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