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장충동 연구소 짓는 깊은 뜻은?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5.2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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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회장 자택 맞은편에 경영전략연구소 건립 중…삼성과의 갈등 구도 맞물려 뒷얘기 무성

서울 장충동 지역


유산 상속 분쟁과 미행 사건 등으로 본격화된 삼성과 CJ그룹 간의 ‘갈등 전선’이 장충동으로 확대되는 모양새이다. 서울 장충동은 범(汎)삼성가의 고향과도 같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살던 주택이 장충동 1가에 있다. 때문에 삼성전자 장충동 사옥을 비롯한 계열사 소유 건물도 여러 채 주변에 포진해 있다. 삼성가 2·3세들 역시 일찍부터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인근 ㅈ빌라의 5층과 6층에 거주하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4층짜리 빌라도 장충동 1가에 있다. 지난 5월16일 오전에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이미경 CJ E&M 총괄부회장이 막 자택을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이재현 회장이 자택 바로 맞은편에 CJ 경영전략연구소를 건립하면서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연구소는 지상 5층, 지하 6층 규모로, 부지만 약 900여평에 달한다. 오는 10월 완공될 예정이다. 이 연구소에 대해서는 최근 고조되고 있는 삼성과의 갈등 구도와 맞물리면서 삼성을 견제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그룹 내 현안 맡을 기획 조직일 가능성도

CJ그룹측은 “경영연구소 건립과 삼성 문제는 무관하다”라고 강조한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연구소의 구체적인 용도는 건물이 완공되어야 알 수 있다. 그룹 경영연구소의 사무 공간과 CJ E&M연구소가 이 건물을 사용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도 기획 조직일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CJ그룹의 경영연구소는 그동안 계열사의 의뢰를 받은 사안만을 다루어왔다. 연구소 인력이 20명 정도에 불과하다 보니 그룹 내 현안을 처리하기에도 벅찼다. 활발한 외부 활동을 벌이는 주요 그룹의 경영연구소와는 차별화되었다. 때문에 “연구소 조직과 역할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라는 내부 목소리가 그동안 적지 않았다.

특히 이재현 회장은 오는 2013년까지 그룹 매출 38조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0년까지 100조원 매출을 달성할 계획이다. 현재 상태라면 1차 목표 달성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CJ그룹의 연결 매출은 13조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대한통운 인수 등으로 매출이 전년에 비해 14.3%나 증가했지만, 내년 목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외형 확장을 위한 새로운 먹거리 사업 발굴이 시급한 상태이다. 새로 출범하는 연구소 조직이 이 역할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소폭의 조직 개편을 단행한 상태이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지주사의 기획팀과 사업팀을 올 초에 하나로 합쳤다. 연구소 건물이 완공되면 새로 구성된 기획팀과 기존의 연구소 인력이 이곳으로 옮길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CJ그룹의 해명만을 믿기에는 석연찮은 점이 있다. 현재 CJ그룹의 홍보실조차 연구소의 정확한 용도를 알지 못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2007년부터 대한투자신탁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구소 부지를 매입했다. 부지의 추가 매입 비용만 최소 1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공사 비용까지 포함할 경우 연구소 건립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럼에도 그룹측은 “구체적인 용도는 건물이 완공되고서야 알 수 있다”라는 말로 일관하고 있다. CJ그룹 안팎에서는 “연구소가 삼성을 견제하기 위한 용도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귀띔한다. 이회장의 장충동 자택 주변은 현재 삼성 계열사가 소유한 건물이나 주택으로 둘러싸여 있다. 삼성전자 장충 교육센터나 삼성생명 소유의 빌딩이 이회장 자택의 뒤편에 늘어서 있다. 호텔신라와 삼성전자가 매입한 주택은 이회장의 빌라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사람이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전부터 삼성에서 매입해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때문에 이재현 회장의 장충동 자택은 그동안 여러 차례 갈등의 도화선이 되었다. 삼성물산 직원은 최근 자택 인근에서 이재현 회장을 미행한 혐의로 경찰에 고발당했다. 재산 분쟁 문제로 소원했던 양측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1990년대 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94년 이재현 회장(당시 상무)과 손경식 회장을 이사회에서 배제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두 그룹은 딴집 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당시 삼성은 이재현 회장의 빌라 담벼락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측이 지속적으로 이재현 회장을 자극하고 나섰다.

삼성의 압박 견제하려는 ‘출구 전략’?

삼성측은 그동안 이재현 회장 주변 주택의 활용 문제를 고민해왔다. 이 과정에서 주변 땅을 추가로 매입하는 방안 역시 유력하게 들여다보았다. 이회장에 대한 미행 문제가 불거진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 직원이 주변 땅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CJ그룹의 안테나에 포착된 것이다. 연구소의 건립은 결국 삼성의 압박을 견제하려는 이재현 회장의 ‘출구 전략’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양측의 갈등은 항상 잠재되어 있었다. 범삼성가라는 이유로 잠복해 있다가 미행 사건을 계기로 수면 위에 떠오른 것뿐이다. 삼성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연구소를 건립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 연구소가 삼성의 승지원 역할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이곳은 기업의 연구소 부지로 적합하지 않다. 장충동 1가는 주택가 밀집 지역이다. 한남동이나 성북동만큼은 아니겠지만 유명 인사들도 상당수 인근에 거주하고 있다. 담벼락마다 CCTV나 동작 감시 센서가 붙어 있다. 이런 곳에 직원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기업의 연구소를 짓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문제의 연구소는 올해 10월 완공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하층 공사 문제로 인해 완공 시기가 일정 부분 지연되었다. 중구청 건축과의 한 관계자는 “민원을 차단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지하층을 파다 보니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 정해진 기한 내에 완공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회장이 자택 주변에 연구소 건립을 강행한 것은 결국 연구소를 옆에 두고 경영 전략을 진두지휘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은 최근 남산 지주사 사옥에서 쌍림동 CJ제일제당 사옥으로 집무실을 옮겼다. 이회장이 향후에 연구소와 제일제당 사무실을 오가며 셔틀 경영을 할 가능이 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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