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위기에 코피 난 ‘코스피’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2.05.21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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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총선 뒤 ‘구제 금융 재협상’ 전망 불거져 세계 경기 침체 가능성에 투자 심리 크게 위축

지난 5월9일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급진 좌파연합 대표가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 EPA연합

지난 5월 셋째 주 주식시장은 ‘패닉(공황)’에 빠졌다. 지난 5월16~17일 종합주가지수(KOSPI)가 120포인트 이상 빠지면서 1782 선까지 주저앉았다. 외국인 투자자는 지난 5월2일부터 11일 연속 순매도(매도 금액에서 매수 금액을 뺀 수치)했다. 지난 4월9일부터 5월16일까지 이틀을 빼고는 줄곧 빠져 외국인 순매도 누적 금액은 3조4천2백72억원까지 불어났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을 팔아치우는 것은 유럽 재정 위기 탓이다. 재정 위기의 해결책이라 할 수 있는 구제 금융 프로그램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구제 금융의 조건으로 제시된 ‘재정 긴축과 내핍’에 지친 유로존 유권자가 잇달아 ‘긴축 완화’를 공약으로 내건 새 정부를 선출하고 있다.

그리스 요구 받아들일 수 없는 유로존의 형편

지난 4월22일 치러진 프랑스 대선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유럽 재정 위기 대책을 주도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에게 패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기독교민주연맹은 지난 5월13일 노스라인웨스트팔리아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패배였다. 기독교민주연맹 지지율은 35%에서 26%까지 빠졌다. 중도 좌파인 사회민주당은 35%에서 39%로 올랐다. 메르켈 총리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들고 있다. 

지난 5월6일 치러진 그리스 총선거에서는 긴축에 반대하는 정당 시리자가 제2당으로 부상했다. 시리자가 연립 정부 구성의 전제 조건으로 ‘구제 금융 재협상’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그리스는 연립 정부 구성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는 6월17일 2차 총선을 치러야 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리스에 구제 금융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가로 재정 긴축과 내핍을 강요하고 있다. 시리자는 ‘긴축이나 내핍을 견뎌내느니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고 자본 재편(채무 재구성)에 들어가자’라는 공약을 내세워 내핍에 지친 그리스인으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2차 총선이 치러지면 시리자는 제1당으로 부상할 것으로 점쳐진다. 제1당에 오른 시리자가 연합 정부 구성을 주도한다면 긴축 프로그램 재협상은 불가피해진다.

유로존은 긴축 프로그램에 대해 재협상하자는 그리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 형편이다. 재협상은 유로존 국가 사이에 합의한 구제 금융 지원 원칙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또 유로존이 시리자의 요구에 굴복해 긴축 프로그램을 양보한다면, 유로존 전역에서 긴축에 반대하는 공약을 내건 정파의 입지를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

재정 위기에 빠진 유로존 국가에서는 유럽중앙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에 ‘긴축 프로그램을 완화하고 금융 지원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파가 발호하고 있다. 설사 유로존이 양보하더라도 IMF 내 비유럽 회원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IMF는 애당초 그리스에게 예외적으로 금융 지원을 늘리는 것을 꺼렸다.

호세 마누엘 바로소 유럽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5월16일 그리스 유권자에게 “1천7백40억 유로 지원 프로그램은 변하지 않을 것이므로 유로존에 남을지, 아니면 탈퇴할지는 (그리스) 유권자 손에 달렸다”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와 올랑드 신임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5월15일 독일 베를린에서 회동하고 “그리스 총선거는 유로존에 잔류할지를 묻는 국민투표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리스인의 4분의 3은 유로존에 남기를 원한다. 바로소는 “그리스가 무너져가는 경제를 되살리는 데 유럽연합(EU)의 협조를 바란다면, 그리스 새 정부가 유로존과 그리스 사이에 체결한 긴축 프로그램을 지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스 금융 산업은 지금 살얼음을 딛고 선 형국이다. 그리스인들은 지난 5월14~15일 이틀 동안 은행에서 12억 유로를 빼냈다.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까지 벌어질 태세이다. 자본 구조 변경이 늦어지면서 그리스 은행들은 유럽중앙은행의 자금 지원이 없다면 하루도 견디기 어려운 지경이다. 연립 정부 구성에 실패하자 유럽중앙은행은 그리스 4개 시중 은행에 자금 지원을 끊었다. 그리스 중앙은행이 유럽중앙은행의 승인 아래 ‘긴급 유동성 지원(ELS)’에 나서면서 4개 은행은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 찰스 달라라 국제금융연구소(IIF) 소장은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면 그리스 정부는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고 중앙은행이 시중 은행을 상대로 대규모 자본 변동을 강제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보다 심각한 모양으로 그리스의 금융 시스템은 붕괴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스 붕괴, 도미노처럼 세계 시장 흔들 전망

그리스가 붕괴되면 재정 위기는 전세계로 빠르게 파급될 전망이다. 로렌조 비니 스매기 전 유럽중앙은행 이사이자 하버드 대학 초빙교수는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시장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비할 수 있고 그로 인한 피해는 그리스 경제가 주로 떠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는, 국가 채무 위기와 은행 예금 대규모 인출 사태(뱅크런)를 야기할 체계적 위기가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유로존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리스 붕괴가 일으킬 쓰나미가 가장 먼저 닿는 곳은 재정이 취약한 PI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국가들이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는 유로존 경제 대국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 채무 위기에 빠진다면 유로존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스페인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 5월16일 한때 6.5%를 넘어섰다.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의 국채가 6.5%를 넘어서면서 유럽중앙은행은 긴급 구제 금융을 제공했다. 스페인 내부에서도 위기감이 팽배하다. 마리아노 하오리 스페인 총리는 “재정 감축이 없다면 스페인은 세계 금융 시장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거나 천문학적인 금액의 이자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유럽 재정 위기는 이미 전세계 자본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5월 셋째 주 44개 국가의 주가지수 72%가 1백20일 이동평균선 아래로 곤두박질했다. 한국 자본 시장은 아예 파랗게 질렸다. 주가, 환율, 채권 가치가 함께 떨어지는 ‘삼중(트리플) 약세’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박성훈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중 약세는) 금융 시장이 극도로 불안해지는 국면에서나 보이는 이례적 현상이다”라고 지적했다. 가장 최악은 주식시장이다. 배성영 현대증권 연구원은 “유로존 붕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잠재되어 있다. 세계 경기가 침체될 가능성이 있어 기업 실적이 나빠지리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와중에 투자 심리까지 극도로 위축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주식 투자자는 그나마 한국 주식이 저평가되어 있다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주가가 급락하면서 KOSPI 12개월 예상 주식수익배율(PER)은 8.4배, 주가순자산배율(PBR)은 1.1배까지 떨어졌다. 한치환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 연구원은 “일드갭(Yield Gap; 주가기대수익률-AA등급 3년물 회사채 금리)이 8.4%포인트일 것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고치였던 2011년 9월 8.6%포인트에 육박하고 있다. 채권 대비 주식시장 투자 매력도가 커져 최근 급락으로 추가 가격 조정은 제한될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배성영 연구원은 “당분간 의미 있는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니라면 투매보다는 관망하는 것이 낫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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