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실명제 ‘낡은 칼’ 왜 꺼냈을까
  • 반도헌│미디어평론가 ()
  • 승인 2012.05.2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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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본인 확인 조치’ 실시 대상에 ‘딴지일보’ 포함시켜…“<나꼼수> 견제 의도” 해석도

ⓒ 일러스트 권오환

방송통신위원회(약칭 방통위)가 선정하는 ‘제한적 본인확인제’(이하 인터넷실명제) 대상으로 ‘딴지일보’가 포함되면서 인터넷실명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딴지일보’의 대표가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진행자인 김어준씨이기 때문에 이번 사안이 갖는 민감성은 특별하다. 현 정부에 비판적이면서 막대한 영향력을 자랑해온 <나꼼수>를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2007년에 도입되어 2008년에 확대 시행된 인터넷실명제에 따라 하루 평균 방문자 수가 10만명 이상인 사이트는 가입자들의 실명을 확인하도록 되어 있다. 방통위는 랭키닷컴 등 3개 조사기관 모두에서 이용자 수가 기준 이상으로 조사된 사이트를 인터넷실명제 적용 대상으로 선정하고 있다. 방통위는 4월17일 홈페이지를 통해 2012년 인터넷실명제 적용 대상으로 1백31개 사이트가 선정되었다고 발표했다. ‘딴지일보’는 올해 새롭게 대상에 편입된 21개 사이트에 포함되었다. 선정된 사이트는 6월1일부터 본인 확인 조치를 실시해야 한다. 대상 사이트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딴지일보측 “선정 기준 명확히 제시하라”

방통위는 외부 조사기관의 결과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예년과 달리 보도자료를 내지 않고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공지한 방통위의 올해 대응 방식으로 미루어 방통위 역시 이 사안을 무척 조심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딴지일보’측은 방통위의 선정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선정 기준에 대한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라는 것이다. ‘딴지일보’는 방통위가 올해 처음 대상이 된 사이트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열었던 설명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딴지일보’가 인터넷실명제를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딴지일보’의 한 관계자는 “아직 인터넷실명제 실시에 대한 방침이 내부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라고 밝혔다. 적용 기간인 6월1일까지 시간을 갖고 논의를 하겠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문제는 인터넷실명제가 점점 유명무실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방통위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2012년 업무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인터넷실명제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재검토라고 하지만 사실상 폐지를 염두에 둔 조치라는 평가도 낳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인터넷실명제에 대한 위헌성 여부를 심리 중에 있다.

인터넷실명제는 사이버 세상에서 타인을 비방하고 인격을 모독하는 글이 도를 지나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판단에서 나온 법안이다. 인터넷에서의 익명성 보장이 악성 글을 난무하게 하는 주범이며, 실명이라는 장치가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우지숙 교수팀은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의 효과에 대한 실증 연구’ 논문에서 인터넷실명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DC인사이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인터넷실명제 이전 13.9%였던 비방 글이 실시 후 12.2%로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효과는 미약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글 게시자 수가 2천4백85명에서 7백37명으로 크게 줄어 소통 자체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우교수는 “실명제 실시로 악성 댓글은 줄었으나 악성 게시물은 줄지 않았고, 오히려 의사소통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나타냈다”라고 밝혔다.

인터넷실명제, 국내 기업에 역차별 논란도

인터넷실명제는 오히려 다른 쪽에서 상당한 부작용을 낳았다. 개인정보 유출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실명제를 통해 주민등록번호를 수집 보관한 인터넷 사이트들이 해커들의 표적이 되면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 네이트, 옥션, 넥슨 등을 통해 유출된 개인정보를 합치면 거의 전 국민이 대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국내에서 주민등록번호가 금융 활동에서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 해외에까지 유출된 개인정보가 보이스피싱 등 금융 사기에 활용되고 있다는 점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 문제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방통위는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한 후 관련 정보를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동안 대다수 사이트가 주민등록번호를 보관해왔다.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문제도 제기된다. 인터넷실명제가 사실상 트위터·페이스북·유튜브 등 인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제공하는 해외 기업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국내 네티즌이 인터넷실명제를 피해 해외 SNS 사이트로 이동하는 이른바 ‘사이버 망명’을 시도했다. 국내 기업들은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2004년 공직선거법상 인터넷 언론사의 선거 게시판에 의무적 인터넷실명제가 도입된 이후 인터넷 언론사들은 이에 반발해왔다. 독자와의 소통을 막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이유에서다. 규모가 작은 인터넷 언론사 입장에서는 실명 인증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도 부담이다.

SNS를 이용한 소셜 댓글은 실명 인증을 거치지는 않지만 익명성의 그늘에 숨기 어렵다는 점에서 좋은 대안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 선관위는 소셜 댓글에도 과태료를 물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딴지일보’ ‘뉴스토마토’는 과태료를 감수했고, ‘블로터닷넷’ ‘미디어오늘’ ‘PD저널’ 등 인터넷 언론사들은 댓글 공간을 폐쇄하는 결정을 내렸다. 딴지일보가 지난 총선에서 보여준 것처럼 방통위의 결정에 정면 반발하고 나선다면, 미디어계의 새로운 갈등 국면이 또 하나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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