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탐욕과 착취, 그 끝은?
  • 황진미 ㅣ 영화평론가 ()
  • 승인 2012.05.2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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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맛>, ‘사람 향기’에 더 취하라고 ‘역설’…고위층의 내적 파탄 엿보며 ‘자존감’ 회복 바라

<돈의 맛>은 여러모로 전작 <하녀>의 확장판이라고 불릴 만하다. 영화가 시작되면 비밀 창고 한가득 쌓여 있는 지폐가 보인다. 윤회장(백윤식)과 비서 영작(김강우)은 돈다발을 담아, 검찰 고위층에 가져다준다. 백여사(윤여정)는 할아버지 때부터 판검사, 정치인, 언론인 등에게 준 뇌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고 개탄한다.

이들이 누구냐고? “60억원으로 2백조짜리 할아버지 기업을 물려받았다”라는 대사에서 연상되듯이, 대한민국 재벌가이다. 영화는 대한민국 재벌이 외국의 투기 자본을 끼고 기업을 합병했다가 처분하는 방식으로 투기 자본을 형성하고, 자금을 세탁해 스위스 개인 은행으로 빼돌리는 광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돈의 맛>이 이들의 ‘부당 거래’를 고발하는 영화는 아니다. <돈의 맛>은 이들의 내적 파탄을 짚는 영화이다. 영작은 돈 배달과 ‘몰카’ 설치 등 온갖 지저분한 일을 해주며, ‘돈의 맛’에 유혹된다. 그러나 “백여사 돈을 보고 이 자리에 올라, 원 없이 돈을 써댔지만, 모욕으로 느껴졌다”라는 윤회장의 말을 듣고 흔들린다. 윤회장은 필리핀에서 온 하녀 에바와 함께 떠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남편의 주검 앞에서 “내 인생을 물어내라”라며 오열하는 백여사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다. 딸 나미(김효진)만이 유일하게 탐욕과 착취의 욕망에 거리를 두고 있다. 그는 <하녀>에서 유모의 분신을 보고 자란 소녀이자, <오래된 정원>의 윤희처럼 ‘그곳에 있으면서 그 곳에 물들지 않는’ 감독의 이상이 반영된 존재이다.

<그때 그 사람들>이나 <하녀>와 달리, 감독은 관찰자에게 탈주의 기회를 허용한다. 영작과 나미가 에바의 시신을 싣고 필리핀에 가서, 에바의 아이들을 만나는 엔딩은 ‘돈의 맛’이 아닌, ‘사람의 향기’에 취하기를 촉구하는 듯하다. 영화는 ‘돈의 맛’에 길들이려는 시스템에서 자신이 ‘하녀’임을 자각하고 이에 ‘모욕’을 느낄 줄 알기를,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윤리적 탈주를 감행하기를 촉구하는 교훈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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