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정치의 근간 흔든 ‘당원 명부 압수’
  • 유창선 | 시사평론가 ()
  • 승인 2012.06.0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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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통합진보당 당원 명부를 압수해 간 데 따른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검찰은 최근 통합진보당 서버 관리 업체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서버를 통째로 압수해 갔고, 거기에는 ‘당의 심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당원 명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당원 명부에는 통합진보당 전·현직 당원 20여 만명의 신상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의 핵심은 당원 명부가 권력기관의 손에 들어간 이상, 앞으로 이를 가지고 통합진보당 당원들에 대한 사실상의 사찰이 있게 될 것이라는 정치적 남용에 대한 우려이다. 검찰은 다른 목적에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경선 부정 수사에 한정해서 쓸 것이고 평당원이 다니는 회사에 넘어가는 등 외부로 나갈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검찰의 공언이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당장 국방부 대변인은 “통합진보당 당원 명단에 현역이 있는 경우 검찰이 이를 넘겨주면 군은 법에 따라 엄중하게 판단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렇게 되면 학생 시절 당원으로 가입했다가 탈당하지 않고 그냥 입대한 사람들은 고스란히 법에 따른 ‘판단’의 대상이 되고 만다. 검찰이 당원 명부를 넘겨줄 것이라는 기대가 어디 국방부에만 있겠는가.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사들이 있는지, 행정안전부는 공무원들이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싶을 것이다.

국방부 대변인이 기대한 상황은 명백히 법 위반이다. 정당법 제24조 4항은 ‘범죄 수사를 위한 당원 명부의 조사에는 법관이 발부하는 영장이 있어야 한다. 이 경우 조사에 관여한 관계 공무원은 당원 명부에 관하여 지득한 사실을 누설하지 못한다’라고 못박고 있다.

이렇게 법도 있고 검찰의 다짐도 있지만,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검찰이 경선 부정 수사에만 사용하고 이를 덮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 분위기이다. 그토록 탐내던 당원 명부를 손에 넣은 검찰은 앞으로 이를 다른 탄압의 용도로 사용할 것이며, 다른 기관으로도 언제 어떤 방식으로 건네질지 알 수 없다는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야당들로부터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불신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의심이다.

경선 부정 논란으로 촉발된 통합진보당 사태는 기본적으로 정당 내부의 문제이다. 그 정당 내부에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가리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서둘러 수사에 착수하며 개입한 것 자체가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당원 명부까지 압수한 것은 헌법이 보장한 정당 활동의 자유, 결사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위축시킬 위험마저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당원 명부 압수는 특정 정당의 문제를 넘어서서 우리 정당 정치의 근간을 훼손할 위험이 있는 과잉 조치였다. 상대가 힘없는 진보 정당이 아니라 힘센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이었다 해도 검찰이 당원 명부를 압수해갔을까.

그렇지 않아도 민간인 불법 사찰로 국민의 비판과 불신을 받고 있는 현 정권이다. 법에서 못 하게 하는 사찰도 불법적으로 해왔는데, 합법적으로 손에 넣은 명부를 가지고 무슨 일인들 못할까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검찰 입장에서 아무리 경선 부정 수사의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다 해도, 20여 만명을 불안에 몰아넣으면서까지 정당 정치의 기본을 흔드는 이런 방식을 선택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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