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같은 젊은이들이 행복한 나라는 없다
  •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
  • 승인 2012.06.02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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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아이들이 무기력해져가는지 국가 차원에서 짚어봐야

ⓒ 시사저널 박은숙
인천에 사는 욱이는 부모가 이혼한 뒤 이웃집에 맡겨졌다. 아버지는 지방을 떠돌면서 일을 한다. 어머니와는 이혼을 하면서 완전히 소식이 끊어져서 학교에서 나오는 점심 한 끼가 아이의 유일한 음식이다. 아이를 맡아 키우고 있는 어른들은 욱이를 찾지 않는 친부모들을 욕하며 욱이에게 밥 한 끼도 해주지 않는다. 그저 방만 빌려주는 셈이다. 욱이는 정부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 부모가 법적으로 엄연히 살아 있기 때문에 그들의 동의가 없이는 사회복지 혜택도 받을 수 없다. 누군가에게 맞고 돌아와도, 큰 병이 걸려도, 갑자기 사고가 나도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욱이에게 사회는 차갑고 냉혹한 존재일 뿐이지, 자신의 꿈을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공간이 아니다.

다른 나라 아이들에 비해 자존감 떨어져

선이는 영어 자격 시험을 대신 봐주고 돈을 받은 죄로 조사를 받고 있다. 범법 행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에서 돈을 벌기 위해 원조교제도 한 바 있다. 우수한 머리에, 좋은 성적에, 재능도 많은 학생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건 편하게 돈만 벌면 된다는 것이 선이의 인생관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희야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거의 매일 다투는 바람에 주부 아닌 주부 노릇을 하고 있다. 부부 싸움을 하고 나면 아버지는 술을 마시러 나가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고, 어머니는 꼼짝 않고 누워 있기 때문에 혼자 밥 차려 먹고 동생도 돌보는 등 살림에 이력이 나 있다. 희야에게도 부모가 싸우지 않는 것 이외에는 아무 소망이 없다. 욱이도, 선이도, 희야도, 모두 가상의 인물들이 아니라 실제 우리 이웃에 살고 있는 평범해 보이는 아이들이다.   

직업 정신을 놓지 못해 거리를 다니며 마주 하게 되는 청소년기 아이들의 표정을 유심히 보는 편인데, 대부분 나이보다 피곤하고 아주 많이 나이 든 노인들 같아 보일 때가 많다. 살짝 얘기를 걸어보아도 지친 노인들처럼 말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상담하러 오는 아이들만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아이다운 활기가 없어 보여 안타깝다는 것이 교육이나 상담 현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치하는 의견이다. 통계상으로도 한국 아이들은 다른 나라 아이들에 비해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살 충동도 더 많이 나타내고 있으며, 우울 성향도 강하다는 보고가 많다. 인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많은 아이들의 마음이 병들고 늙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저소득층 아이들 중 상당수가 경제적인 어려움과 부모의 방치 때문에 비뚤어져가고, 고소득층 집안의 아이들은 또 그들대로 부모의 지나친 과잉 통제와 기대, 절제의 부재로 무기력해져가고 있다.  

요즘에는 유학 간 한국 학생이 많아, 한국 학생의 특징도 다른 지구촌 인구에 회자된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만난 외국인 교수나 교사들의 한국 학생들에 대한 평가가 거의 비슷해 놀란 바 있다. 한국 학생은 똑똑하지만, 가진 능력에 비해 자발성과 자신감이 부족하고 내적인 도덕심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어려서부터 독립심과 자기 표현, 자발적 태도를 강조하는 서양인들과 달리 외부의 요구에 먼저 순응하도록 교육받는 한국 학생들은 누군가 감시하지 않으면 죄를 지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있어도 특별히 문제 삼지 않는 것 같다고도 한다. 

적지 않은 젊은이가 ‘스펙’을 죽어라 쌓아도 취직도 힘들고, 결혼 비용도 없어 독립하지 못하는 저주받은 세대라고 자조한다. 과거 대학만 나오면 얼추 취직이 되던 기성세대에 비하면 정말 엄청나게 노력해도 결과가 그만큼 쉽게 가시화되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반면에 기술의 발전과 정보의 홍수로 과거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은 훨씬 더 극심하다. 그런데 바닥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씩씩하게 헤쳐가려 하는 배짱과 용기는 확실히 적다. 열악한 환경의 일터에서 장시간 일하고, 단칸방에서부터 시작했던 전후 세대의 헝그리 정신을 요구한다면 무리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우리 청소년들이 훨씬 더 무기력하다는 평가는 확실히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무서운 경고이다.

요즘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공무원이라고 답하는 아이가 많다. 아이들의 설명이 더 걸작이다. ‘안정되잖아요. 잘릴 걱정 안 해도 되요. 연금도 나와요…’ 등 중년의 아저씨·아줌마들이나 할 얘기만 덧붙인다. 물론 노후를 걱정하는 부모들의 말을 따라 하는 것이라 웃어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만큼 패기 없이 늙은 부모 흉내를 내고 있다면, 인구의 노령화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노인화를 먼저 걱정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만약 젊은이들에게 자신들의 인생을 꿈꾸고 설계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고 부모들이 원하는 것이나 주변의 시선부터 먼저 생각하느라 자신의 젊음을 낭비한다면, 반대로 없는 집 아이들은 그들대로 하고 싶어도 뒷받침해줄 사람이 없으면 꿈조차 꾸지 못한다고 믿고 산다면, 과연 우리에게 미래가 있는 것일까.

자라기도 전에 조로증에 빠진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한국은?

워낙 우울하고 아픈 사람들만 보며 사는 직업이기 때문에 세상의 어두운 면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밝고 성실하게 일하는 젊은이들도 있기는 하다.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면서 등록금은 물론 집안 생활비까지 책임지고 있는 소년 가장이나 청년도 많다. 문제는 그런 아이들이 꿈과 자부심을 지니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계층이 고착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열심히 일하면 돈도 모으고 출세도 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워낙 물려 줄 것이 없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라 대다수 젊은이가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부모들에게 의지하는 것조차 염두에 두지 않는다. 반면에 부가 세습되고, 자신만의 노력으로는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도저히 극복해나갈 수 없는 닫힌 사회라면 젊은이들은 그만큼 좌절하고 미리부터 포기해버릴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많은 일본인이나 미국인들이, 한국인이 진취적이라고 부러워한다. 풍요 속에 성장한 현재의 일본인이나 미국인들에게 원폭 투하와 전쟁과 경제 공황을 견딘 전후 세대의 근성이나 근면성을 찾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20~30년 뒤 우리 모습이 어떻게 변할까. 자라기도 전에 이미 조로증에 빠진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과연 한국 경제를 어디로 끌고갈 것인가. 그때도 한국인은 적극적이고 근면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과연 받겠는가. 로마 제국의 번영이 극점에 올랐을 때 대다수 로마 시민은 물론 세네카 같은 철학자들조차, 게르만인들은 야만인이라 문화를 가르쳐줄 필요가 없다고 경멸했다. 로마가 번성했을 때 로마 시민들은 배가 불러 토할 정도로 먹었고, 힘든 일은 모두 노예에게 맡겼다. 술판이 벌어지는 사창가와 파티장은 과도한 허영의 상징이었고, 목욕 문화는 사치와 낭비의 집약이었다. 그러나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로마 제국은 결국 멸망하고 이탈리아에 사는 로마인들은 야만족인 게르만에게 큰 굴욕을 당해야 했다.

어쩌면 역사는 결국 돌고 도는 것이 아닌가. 힘든 이삿짐도 마다하지 않는 다부진 몽골인들, 오지의 농장에서 장시간 일하면서도 불평 않는 중국인 노동자들, 식당과 가정에서 우아한 생활을 즐기는 한국 여성 대신 궂은일을 대신 해주는 조선족 아줌마들, 열악한 중소 공장에서 그 억울한 천대를 받아가면서도 묵묵히 일하는 동남아시아 노동자들. 우리는 과연 20~30년 뒤에도 오만한 태도로 그들을 대할 입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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