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 김대승 감독 "지금 우리 시대보다 더 잔인한 시대 있었나"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6.0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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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이면서 현재형의 감성 반영해 주목받는 김감독 / “인간의 이기적인 내면 들여다보고 싶었다”

ⓒ 시사저널 전영기
개봉을 앞둔 <후궁: 제왕의 첩>(이하 <후궁>)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사 전에는 ‘농도 짙은 섹스 장면이 있다’는 소문이 화제를 모았고, 시사회 뒤에는 섹스 장면의 화제성을 뛰어넘는 이야기의 밀도 때문에 입길에 오르고 있다.

고려 말~조선 초를 상정하고 찍은 이 사극에는 셰익스피어의 궁중 비극이나 희랍 비극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바닥에 깔려 있는 탐욕을 끄집어내고 있다. 심지어 마지막 장면에서는 피에타상(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의 모티브도 인용되고 있다. 사극이되 지금 현재형의 감성을 반영한 영화인 것이다. 이 영화의 김대승 감독은 “일부러 그렇게 했다. 피에타상은 구원의 상징이다. 하지만 영화 속 그 장면에서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심지어 살아남은 자마저도. 아무도 구원하지 못하는 피에타를 만든다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절망감이 증폭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론의 여지없이 피에타상으로 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익명 속에 숨어서 폭력 자행하는 현실…”

욕망하는 것에 대한 실현 여부가 확신되지 않을 때 불안이 생긴다. 김감독은 구중궁궐 안에서 벌어지는 사극이라는 틀로 당대의 불안을 보여준다. 그는 “전작 <혈의 누>나 <후궁>도 사극이지만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보다 더 잔인한 시대가 과거에는 없었다. 아이들이 10대 초반에 인생이 결정되고 탈락자가 된다. 최진실의 죽음을 보자. 익명 속에 숨어서 누구 하나가 주먹질을 하면 그를 따라 같이 주먹 뻗고 때렸다.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기계적으로 섹스를 찍어낸 <빨간 마후라>를 봐라. 그런 것에 비하면 내 영화 속의 폭력이나 섹스 신은 잔인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욕망의 원형을 탐구하는 <후궁>에는 고전 희곡의 주제나 표현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많다. 어머니와 아들이 권력을 놓고 대립하고, 형수에 대한 열망 등 가장 가까운 피붙이 간에도 욕망 앞에서 이성으로 제어하지 못하는 갈등을 다룬다. 게다가 몇몇 대목은 연극 무대를 직접적으로 차용한다. 김감독은 “성원군이 왕비와 합방하는 장면이나 편전에서의 대립 장면은 연극 무대를 차용했다. 세트도 그렇게 꾸몄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궁이다. 궁은 수백 년을 버티면서 그때그때 등장인물만 바뀌는 인간의 탐욕 드라마를 지켜본다. 편전의 <일월오악도>도 오래된 느낌을 주기 위해 색을 배제했고 궁궐의 단청도 배제하고 나무 느낌으로만 꾸몄다”라고 말했다. “스태프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 궁에서는 선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새 왕은 선왕의 후궁에 대한 집착을 꺾지 못한다. 왕비나 대비나 환관, 부원군 등 모두가 무언가 결핍된 욕망을 궁이라는 무대에서 경주하듯이 내보인다. 누구도 (욕망으로부터 오는) 형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궁에서 좌절된 욕망(의 소유자)은 대비의 비밀 공간인 밀궁으로 보내진다. 그곳은 밀폐된 공간이고, 공포의 공간이다. 유일하게 객관적인 인물은 궁이라는 장치에 딸린 거세된 내시이다.” 궁에서 욕망을 겨루고 사라져가는 이들의 행태를 무심한 듯 바라보고 짊어지고 가는 것이 바로 영화의 시선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의상과 색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전작 <혈의 누>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미색과 옅은 나무색, 짙은 나무색 등 비슷한 색감의 미니멀한 변주가 상당히 고급스럽게 보인다. <혈의 누>와 <후궁>이 의상감독이나 촬영감독이 다 다르지만 비슷한 감각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이것은 감독의 취향으로밖에 볼 수가 없다. 김감독은 “각기 등장인물에 대표색을 주지는 않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의상의 색도 변하게 했다. 성원군이 대군 시절에 입던 옷과 왕이 되어서 입는 옷의 색이 다르고 내시 권유가 궁 밖에서 입던 옷과 내시가 되어서 입는 옷의 색이 다르다. 색은 감정의 변화와 상황 변화를 표시한다”라고 말했다.

“이 영화를 이 시대의 거울로 보아주었으면 한다”

영화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전통 의상이 텔레비전 사극과 다른 것에 대해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유니폼처럼 동일한 신하복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떤 이는 아내가 지어준 옷을 입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사 입었을 것이다. 처지와 상황에 따라 다 다르게 입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신하들의 옷도 자유롭게 변주했다”라며 기존 관습과 다른 복식을 채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장점은 섹스 장면이 눈요기로 흐르지 않고 이야기 전달의 주요 축으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그는 “배우들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믿고 따라줘서 그저 고마울 뿐이다. 주인공을 맡은 조여정은 전작 <방자전>에서 노출이 있었기에 이번 역을 맡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그래서 캐스팅 제의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흔쾌히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조여정의 조건은 진짜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조여정한테 정말 고마웠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이야기의 주요 고비마다 섹스 장면이 배치되어 있다. “욕망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 섹스이다. 남들에게는 숨기지만, 그러나 누구나 다 하는. 그래서 섹스를 앞으로 끌어냈다. 촬영 전에 배우들에게 약속했다. 신체의 일부를 클로즈업하지 않겠다. (섹스를) 볼거리로 소비하지 않겠다.” 영화 속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연정의 상대(화연)가 형수가 되어버려 욕망이 좌절된 성원대군이 그 대리품으로 화연의 몸종인 금옥이를 취하며 화연에게 분풀이를 한다. 이때 화면은 성원대군의 판타지를 보여준다. 금옥을 취하는 성원대군의 눈앞에 다른 남자와 성행위를 나누는 화연이 보인다.

카메라는 이 두 쌍의 성행위를 교차시키며 보여준다. 어느 순간 성원대군의 상대는 화연으로 바뀐다. 그리고 다시 이는 금옥의 얼굴로 바뀌지만 성원대군은 멈추지 않는다. 현실과 욕망의 불일치에서 오는 불안과 질투를 감독은 이런 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장면에서 동욱씨(성원대군)에게 ‘사정을 목표로 열심히 하세요’라는 디렉션을 주지 않았지만 금옥의 얼굴로 바뀌는 장면에서 동욱씨는 더 격렬하게 허리짓을 연기했다. 내 의도가 어떤 것인지 배우가 완전히 믿고 공감하고 연기해준 것이다.” 마침 인터뷰 자리에 함께 있던 김민준(권유 역)이 거든다. “거세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했더니 감독님이 라텍스로 모양을 만들어 찍자고 하더라. 완성한 뒤에 보니까 감독님 판단이 맞았다.” 김감독이 한마디 덧붙였다. “배우들과 호흡이 좋았다. 내 목표나 심성을 믿어주었다. 서로 믿는다는 것을 눈빛을 통해 교환하면 모든 디렉션과 신호가 원활하게 통한다. 심지어 네 명이 등장하는 성행위 장면에서 그중 한 명만이라도 그 장면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면 찍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의 성정, 모든 이기적인 것을 들여다보자는 생각을 했다. 대비는 아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모든 일을 꾸몄다. 부모가 자식 잘되라고 하는 것은 본능일까, 탐욕의 다른 말일까? 잘되라고 학원 보내고 경쟁에 내몰지만 그게 자식을 위한 것일까, 자신의 탐욕을 위한 것일까, 10대에 행복하지 않은 아이가 커서도 행복할까? 이 영화를 역사상 최고로 잔인한 이 시대의 거울로 보아주었으면 한다.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을 더해서 인간이라 부른다. 관계 사이에서 비로소 인간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 관계를 계산적으로, 상업적으로 욕망을 더해 엮어가는 것 자체가 우리 스스로를 병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어느 선이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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