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보다 공존의 가치 띄운 오디션에 ‘갈채’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2.06.02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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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감동 주었던 ‘수펄스’, 최근 무대에 다시 올라 ‘눈길’…대결 아닌 공감의 힘을 화음으로 보여줘

의 박지민·백아연·이하이(왼쪽부터). ⓒ SBS 제공
지난 5월23일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2012’에서는 뜻밖의 광경이 연출되었다. 세계 각지의 석학들을 불러 강연을 듣는 이 자리에 난데없는 하모니가 울려퍼졌던 것이다. <K팝스타>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자만큼 인기를 끈 네 소녀들, 바로 4인조 여성 프로젝트 그룹 ‘수펄스(秀PEARLS)’였다. 이미쉘, 박지민, 이정미, 이승주이다. 그들은 연단에 올라 <Fame>을 불렀다. 이미 <K팝스타>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그 하모니이다. 왜 이 ‘서울디지털포럼 2012’라는 낯선 무대에 그들이 서게 된 것일까.

이유는 이 포럼의 올해 주제와 관련이 있다. ‘공존(coexistence)’이다. 눈부시게 발전한 이런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 공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는 시간이다. 수펄스는 이 주제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로 초청되었다. 오디션이라는 경쟁 그 자체보다도 그 절정의 하모니로 공존의 의미를 더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행사에서 울려퍼진 수펄스의 화음은 그동안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들, 즉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리얼리티쇼 같은 서바이벌 콘텐츠의 속살을 살짝 드러냈다. 우리가 이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은 과연 경쟁적인 요소 때문일까, 아니면 그 안에서도 발견하게 되는 공존의 감동적인 광경 때문일까. 즉 다른 말로 하면 서바이벌의 자극일까, 아니면 그것을 뛰어넘는 공감의 감동일까.

<슈퍼스타K>가 제 힘을 발휘했던 시즌2를 들여다보면 얼핏 그 서바이벌이 주는 팽팽함이 대중을 열광하게 한 요인처럼 보인다. 실제로 허각이라는 인물은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살풍경한 경쟁을 우리 사회의 풍경으로 인식시켰다. 환풍기 수리공에다 그럴 듯한 학력도 없고 외모도 출중하지 않은 허각이 오로지 심금을 울리는 그 노래 실력만으로서 ‘슈퍼스타K’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 경쟁이라는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생각해보면 허각이 최종 우승까지 올라오면서 그려낸 스토리에는 존박과의 우정이 있었고, 합숙 생활에서의 맏형 같은 그의 모습이 있었다. 결국 그 이면에 허각이 가진 ‘공존’의 이미지가 있었다는 얘기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그것을 재현하는 듯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거기서마저 경쟁만을 보고 싶은 시청자는 없을 것이다. 경쟁 속에서도 피어나는 하모니, 어쩌면 이것이 음악을 소재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이 아니었을까.

성적 좋지 않은 <나가수2>가 <불후의 명곡2>와 비교되는 지점

<나는 가수다2>가 <나는 가수다1>에 비교해 시청률에서 그다지 성적이 좋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생방송 토너먼트식의 노래 대결이 너무 전면에 부각된 탓이다. <나는 가수다1>에서도 경연의 부담감이 분명 있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가수들끼리 서로를 챙겨주고 칭찬해주고 격려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나는 가수다1>에서 김건모가 이른바 ‘재도전’ 논란을 겪은 것은 그만큼 선후배 사이의 관계가 끈끈했다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다. 김범수와 윤도현 그리고 박정현이 서로의 음악을 상찬하는 분위기도 훈훈했고, 무엇보다 매니저로 자리한 개그맨과 가수 사이의 정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생방송으로 진행되면서 <나는 가수다2>는 그런 훈훈함을 연출할 수 있는 여유를 잃었다. 그저 순차적으로 계획에 따라 경연이 진행되고 있을 뿐, 그들의 속내를 한 번쯤 들여다볼 시간이 없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2>와 <불후의 명곡2>가 가장 극명하게 비교되는 지점은 대기실 풍경이다. <나는 가수다2>는 마치 서로 대결을 위해 마음을 다잡듯이 각자의 방에서 가수들이 긴장된 마음을 추스르는 반면, <불후의 명곡2>에서는 한 대기실에 모여 앉아 빵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 대화 속에는 누가 이기고 지느냐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있지만, 그것에 집착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가수들이 한 대기실에 모여 있기 때문에 무대에 오른 가수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경쟁과 공존이 상반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증명해 보여

의 박제형·이승훈·이미쉘(왼쪽부터). ⓒ SBS 제공
이런 공존의 분위기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해외에서 유입된 형식임에도 그 안에 독특한 한국적인 분위기를 덧붙인다. <정글의 법칙>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프로그램은 어찌 보면 디스커버리 채널의 <인간과 자연의 대결>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의 이지원 PD는 이렇게 말한다. “<정글의 법칙>은 도전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자연 앞에서 도전이란 자칫 무모한 일이 될 수 있다. 자연과 대결을 벌이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것이 ‘정글의 법칙’이다.” 이 지점은 자연에 대한 서구적인 접근 방식과 궤를 달리한다. 제 아무리 정글이라도 그 안에서 최소한의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이 먼저라는 것이다. <정글의 법칙>의 출연진이 일종의 유사 가족을 형성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만일 정글을 정복하고 도전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면 박시은 같은 연약한 여성 멤버의 존재는 불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시은은 이 야생의 분위기 속에 여성 특유의 감성으로 놀라운 화학 작용을 일으킨다. 불 하나를 피우기 위해 무려 8시간을 고생하는 남자에게 박시은은 응원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결이 아닌 공존하는 것. 이것이 <정글의 법칙>이 한국인만의 특징으로 보여지는 지극히 가족적인 분위기를 갖는 이유이다.

<K팝스타> 수펄스의 이미쉘은 인터뷰를 통해 “수펄스는 가족이다. <K팝스타>에서 가장 감사한 것이 수펄스를 만난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서바이벌 그 자체보다 공존하는 그 감성에서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공존이 주는 감동에 대한 대중의 염원은 이미쉘과 함께 이정미, 이승주를 영입한 YG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YG는 이미 JYP행을 결정한 박지민의 빈 자리를 이하이로 메워 프로젝트 그룹이 아닌 진짜 수펄스를 탄생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경쟁과 공존. 어찌 들으면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니다. 스포츠나 일상생활 속에서도 선의의 경쟁은 때로는 서로를 공존하게 하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또 공존의 의지는 경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기도 한다.

<K팝스타>, 그중에서도 수펄스라는 존재는 작금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서바이벌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성패는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공존’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갖고 모인 그들이어서 의미는 더 새로웠을 것이다. 그들이 부르짖은 수많은 생각과 주장들, 그 어느 것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그 자체로 살풍경한 현실을 하나의 음률로 엮어내는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대결이 아닌 공감의 힘. 그것이 수펄스가 그 화음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오디션의 속살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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