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금감원 ‘밥그릇 싸움’ 점입가경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2.06.0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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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소비자원 설립 법안 놓고 신경전 치열 / ‘소비자 입장’ 운운하면서 힘겨루기에 열 올려

한 행사장을 나서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에게 기자들이 질문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 5월18일 점심 시간 무렵 금융감독원(금감원) 노조로부터 심상찮은 보도자료가 금감원 기자실로 날아들었다. 금융위원회(금융위)가 입법 예고한 ‘금융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대해 취소 소송을 제기한다는 내용이었다. 금융위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도 여과 없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불과 30여 분 뒤 해당 보도자료는 모두 수거되었다.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금융위의 지시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았으나 금융위는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기자들에게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금감원 노조가 금융위 법률안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으며,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입법 예고한 ‘금융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는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금융위 “금감원과 별도로 전담 기구 세워야”

이것은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을 놓고 벌이는 금융위와 금감원의 신경전이 치열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보도자료 수거 사건은 이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준다. 두 금융 당국의 이같은 힘겨루기는 ‘금융소비자보호원’이라는 화두가 등장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금융소비자보호원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게된 것은 3년 전인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회 정무위원장이었던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은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안에는 금융위원회의 지도·감독 아래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설립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문제는 금융소비자원이 설립되면 소비자 보호 및 분쟁 조정 업무가 주 업무였던 금감원으로서는 조직과 기능이 축소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당시 이를 놓고 금감원에서는 “금감원 힘 빼기 작업이다”라는 지적이 나왔다.

법안이 나온 후 두 기관은 곧바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에 들어갔다. 금감원은 기존에 있던 ‘금융소비자보호센터’를 ‘소비자서비스본부’로 한 단계 격상하며 소비자 보호 업무를 강화했다. 금융위는 ‘금융 소비자 보호 강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며 응수했다. 금융위는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금융위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연구를 발주했고 KDI는 이후 금융위의 용역을 받아 발표한 보고서에서 ‘금감원 외 금융 소비자 보호 업무를 전담하는 별도의 기구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소비자서비스본부를 신설해 소비자 보호 기능을 확대했는데 별도 기구 설립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당시 금감원 건물 로비에는 ‘금융위를 박살내자’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렸다.

날을 세우던 두 당국의 입장 차는 지난해 11월 좁혀지는 듯했다.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설립하는 데 두 기관이 합의점을 찾은 듯이 보였다. 하지만 착시 현상에 불과했다. 금융위는 금감원 소속으로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신설하는 대신 징계 및 제재 권한을 가져오는 방안을 추진했다. 금감원으로서는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금융위는 금감원과 합의한 사항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원안을 담은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을 추진하게 되었다.

위기를 느낀 금감원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올해 5월부터다. 금감원은 조직을 개편하면서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신설했다. 금감원장 직속의 준(準)독립 기구로 금융감독원장이 인사권과 예산권을 쥐고 운영한다.

금감원, 금융위 겨냥한 독자 안 내놓아 ‘맞불’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시사저널 자료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을 둘러싼 두 조직의 힘겨루기는 지금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는 서로 바둑알을 주고받는 형식의 대국을 벌였다면 이제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게릴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5월11일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 등을 골자로 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입법 예고했다. 이와 관련해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시기를 늦출 수 없다.

 19대 국회에서 법안 통과를 추진해 금융 소비자를 위한 다양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금감원 노조의 반발이 극에 달한 것은 바로 이 때부터다. 금융위가 제시한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중 특히 문제가 된 곳은 ‘금융소비자보호원 원장은 금융위원회가 임명한다’는 부분과 ‘금융소비자보호원장은 금감원과 협의해 예산서를 작성하고 이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해 승인받아야 한다’는 항목이다. 금융위 안은 금융소비자보호원을 금감원과 분리해 인사권과 예산권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해당 안이 통과되면 금감원 조직 3분의 1 정도를 분리해야 한다. 금감원으로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감원 노조는 한국은행 등 10개 금융기관 노조와 손잡고 ‘금융위의 법률안 취소 청구 및 집행 정지 신청’을 냈다.

금감원 노조 추효현 위원장은 “보통 입법 예고 기간은 40일로 두는데 금융위는 10일로 줄이며 서둘러 처리하려 했다. 법률안 자체도 금융소비자보호원의 인사·예산 권한을 금융위에 부여하는 등 금융소비자보호원의 독립성을 보장하지 않았고, 금융회사의 잘못에 대한 입증 책임을 고객이 지도록 하는 등 문제점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금융위 안은 실질적으로 소비자를 보호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금감원 노조측과 금융 소비자 기구 설치를 놓고 입장을 조율 중인 금융소비자협회의 백성진 사무국장은 “금융위의 소비자보호원 설치안은 소비자 보호 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사실상 민원실 확대 개편안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금감원 노조는 최근 이에 대항하기 위해 독자적인 안을 내놓았다. 금융소비자위원회를 만들어 금융위 산하에 두고 금감원을 관리 감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안이다. 여기에는 금융위를 직접 겨냥한 내용도 포함되었다. 금융위원 아홉 명 중 최소 1인 이상을 외부 인사로 영입하고 방송통신위원회와 같이 국회 추천 등을 통해 금융위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세 명 이상은 국회 추천 인사를 넣어 민주성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감원 노조는 최근 금융소비자협회, 한국노총 등이 참여하는 ‘금융소비자원 독립 설치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와 접촉했으며 이들과 입장을 조율해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효현 위원장은 “금융 소비자를 위한 독립 기구 설치에 관심이 많은 미국에서도 증권이나 보험에 대한 감독은 감독 기구가 갖고 있다. 금융위는 이번 법안을 통해 그동안 받아온 비난에서 벗어나고자 꼼수를 부리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백성진 사무국장은 “소비자 입장에서 금융 정책에 참여하고 금융 당국을 감시한다는 것이 소비자원을 만드는 목적인데 금융위와 금감원 모두 소비자보호원 설치를 놓고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다만, 금감원 노조 안에는 동의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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